술에 취해 함장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하기 전에 짐을 숙소에 데려다 주려던 것뿐인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뜨거운 혓바닥이 스팍의 입술을 건드렸다. 버튼이라도 눌린 것처럼 입술이 벌어졌다. 그 혓바닥은 살짝 벌어진 입술을 비틀어 열고 얌전히 놓여 있던 혓바닥을 휘감았다. 스팍이 삼켜야 할 침을 대신 삼키느라 맞닿은 입술이 우물거렸다. 어쩐지 목이 말라 스팍도 똑같이 했다. 그래도 목이 말라 빨아들이듯 삼켰다.
“으응…”
짐의 신음 소리와 함께 미세한 진동이 전기처럼 온 몸을 타고 흘렀다. 짐이 허우적대듯 스팍의 몸을 감아올 때마다 깨끗하게 정돈된 침대 시트가 바스락거렸다.
“으응… 더워.”
방금까지 스팍을 감싸던 짐이 갑자기 스팍을 밀쳐냈다. 뺨이라도 맞은 듯 민망해진 스팍이 입술을 떼고 입을 맞추느라 미처 벗기지 못했던 짐의 겉옷을 마저 벗겨 주었다.
“헤헤, 스파악.”
갑갑함이 사라졌는지 짐이 손을 뻗어 스팍의 얼굴을 더듬으며 웃었다. 쳐낼 수도 있는데 쳐내지 않았다. 얼굴을 더듬는 손길에 스팍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크기에 비하면 섬세한 손길이었다.
“네 귀…”
“읏…!”
짐의 손가락이 닿는 곳이 데일 듯 뜨거웠다. 숨이 가빠졌다. 스팍이 짐의 손목을 잡아챘다.
“함장님.”
급히 내뱉은 목소리가 떨렸다. 이 방에 계속 있으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돌아가지 않는 것이 좋은 선택 같기도 했다.
“…괜찮아.”
짐이 괜찮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스팍의 귀에 닿는 짐의 입술은 괜찮았다. 만지면 부서지기라도 할 것처럼 조심스럽기만 하던 우후라와는 달리 거칠고 낯선 손길에 자꾸만 일어나면 안 될 반응이 일어났다. 덥석 스팍의 것을 덮고 지그시 누르는 짐의 손바닥은 무례하지만 정확했다.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괜찮아, 스팍. 괜찮아.”
잔뜩 갈라진 짐의 목소리가 자꾸만 스팍을 유혹했다. 술에 취한 사람의 괜찮다는 말을 믿을 수 있는 걸까. 입도 맞춘 주제에 이제 와서 연인이 아닌 다른 이와의 육체관계가 거리낄 이유는 없는 게 아닐까. 상관과 부하의 관계이긴 하지만 관계를 주도하는 게 부하인 자신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알코올에 취한 것도 아니면서 판단력이 흐렸다. 머뭇거리는 새 짐의 손이 스팍의 바지 속을 파고들었다.
“함장… 님…!”
“괜찮다고 했잖아. 생각하지 마. 머리 아파.”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리가 아팠다. 생각하기도 싫었다. 스팍이 단정한 손으로 짐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던 짐이 재빨리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스팍은 거칠어진 숨소리를 감추지도 않고 부딪치듯 짐과 입을 맞췄다. 짐이 아야 하며 웃었다. 제대로 된 애무를 하지도 않고 몰아 붙여도 받아내는 짐이 놀랍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했다. 신음을 뱉지 않고 삼키는 짐은 온 몸을 떨었다. 스팍도 함께 떨었다. 스팍의 몸에 답삭 붙어오는 몸이 아름다웠다.
– – –
함장의 깜짝 생일파티에는 엔터프라이즈호 선원 대부분이 참석했다. 수리를 마치고 곧 출항을 앞둔 엔터프라이즈호의 출항 기념 파티이기도 했다. 반가운 얼굴들을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평소보다 큰 선원들의 목소리가 예민한 스팍의 청각을 자극했다. 원치 않아도 들려오는 선원들의 대화를 애써 무시하며 파티를 즐기는 우후라를 바라보았다. 온 몸으로 웃느라 파란 보카야 목걸이가 달랑거렸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스팍을 배려하느라 그 일부를 애써 자제하는 것뿐, 할 줄 아는 언어만큼 표현이 풍부한 우후라였다. 우후라는 분명 좋은 동반자였다. 하지만 스팍도 우후라의 좋은 동반자인지는 의문이 들었다. 선원들과 시선을 맞춰 눈인사를 하고 되도록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섰다. 엔터프라이즈호에 남기로 한 것이 옳은 선택인지 아직도 확신이 없었다. 논리를 떠나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라고 말해 주던 사람이 사라졌을 뿐인데 갑자기 모든 게 막막했다. 다가서는 짐을 흘끔 쳐다보고 다시 창밖에 펼쳐진 요크타운의 인공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지구를 닮은 하늘이 낯익은 듯 낯설었다.
“스팍 대사님의 소식은 들었어.”
스팍 대사가 있던 새로운 벌칸이 궁금했다.
“그때 터보리프트에서 하려던 말이 그거였어?”
“대강 비슷합니다.”
애매한 대답을 남기고 다시 시선을 피했다. 확실한 건 아직 새로운 벌칸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패리스 준장님과의 이야기는 잘 끝내셨군요.”
“대강 비슷해.”
묻지는 않았지만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리는 짐도 같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는 정말 저길 또 가고 싶냐?”
한심하다는 듯 묻는 레너드의 말에 짐은 가볍게 웃었고 스팍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언젠가 우리 모두의 항해는 끝날 것이다. 다만 스팍은 아직 항해를 끝내는 법을 알지 못했다.
– – –
“좀 잤어?”
버석거리는 목소리에 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짐을 바라보고 있던 스팍이 정신을 차렸다. 한숨도 못 잤다고 솔직하게 말해도 될지 고민스러웠다. 아직 잠에 취해 눈도 뜨지 못하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몇 년이나 보아 오던 사람인데 생각해 보니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인 것도 처음이었다.
“이런 건 처음이야?”
마치 자기 속을 읽기라도 한 것 같은 질문에 숨을 멈췄다. 짐이 이미 헝클어진 머리를 북북 긁었다.
“다 큰 성인끼리 이런 일도 있는 거지. 오랜만에 했더니 좀 뻐근하긴 한데 개운하고 나른하고 기분 좋네.”
짐이 시원스레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덮고 있던 이불이 흘러내려 맨가슴이 드러났다.
“넌 별로였어?”
“아닙니다.”
“그럼 됐어. 보아하니 넌 이미 씻은 것 같은데 괜한 오해 사기 싫으면 이만 가 봐. 난 천천히 씻고 알아서 움직일 테니까.”
“함장님.”
할 말도 없었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짐을 불렀다. 짐이 스팍을 빤히 쳐다보다 눈꼬리를 접으며 웃었다.
“스팍, 설마 날 성희롱으로 고발할 건 아니지?”
“절대 아닙니다.”
“나도 그럴 마음 없어. 됐지?”
침대를 벗어나며 짐이 손사래를 쳤다. 귀찮다는 듯 뒤돌아서는 짐의 허리춤에 점점이 새겨진 멍이 보였다. 스팍이 제 손을 내려다보다 하릴없이 일어섰다.
– – –
스팍은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잠시 명상을 했다. 좀처럼 안정을 찾을 수 없어 차라리 걷기로 했다. 뒷짐을 지고 스타플릿 지부 뒤에 있는 공원의 트랙을 천천히 걸었다. 인공 태양이 완전히 뜨지 않은 요크타운은 아직 어스름했다. 야행성이라 해가 진 뒤에야 활동하는 종족들이 피곤한 발을 터벅터벅 디뎠다. 일찍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사박사박했다. 바람이 앞머리를 가볍게 스쳤다.
“일찍 일어났네요? 좀 잤어요?”
‘좀 잤어?’
목소리처럼 그의 모습도 겹치는 것 같아 눈을 깜박였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신체 밀착형 운동복을 입은 우후라가 눈앞에 서 있었다.
“아니오. 한숨도 못 잤군요.”
아까는 할 수 없었던 말이 쉽게도 나왔다.
“저런.”
우후라가 스팍의 얼굴을 감싸며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익히 알고 있는 입술이 닿자 조금은 긴장이 풀어졌다.
“아, 하긴. 짐 때문에 긴장을 놓을 수도 없었겠네요. 안 봐도 훤해요. 레너드도 스콧도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니 짐을 누가 말렸겠어요. 술루는 일찌감치 벤이랑 사라졌을 거고, 보니까 제일라도 주량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렇더군요.”
“하여간 당신 책임감은 알아 줘야 해요.”
스팍은 가만히 팔을 잡아오는 우후라와 속도를 맞춰 걸었다.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사실을 말할 수도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스팍의 상황을 좋게만 해석하는 우후라의 말에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나도 어제 오랜만에 동료들을 만나니까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당신이랑 내가 헤어졌다는 소문이 언제 돌았는지 만나 보지 않겠냐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화해했다는 소문은 안 돌았나? 당신이랑 연애한 뒤로 대시 받은 건 오랜만이라 적당히 장단을 맞춰 줬는데, 괜찮죠?”
우후라가 풋 하고 웃었다.
“나 너무 부었죠?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봐요.”
“아니오. 평소와 똑같습니다.”
“거짓말.”
얼굴을 만지작거리는 우후라의 손을 잡아 가만히 내렸다. 아무리 봐도 부족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사람을 앞에 두고 귀찮은 듯 손사래를 치던 짐의 뒷모습만 떠오르는 걸까.
“다들 별 일은 없습니까?”
“그렇죠. 아, 사라만 빼고요. 파견 임무 중에 부상을 당해서 최소 3주는 쉬어야 한대요.”
“안됐군요.”
“그래서 프랭크가 위로할 겸 행성 피렌체 여행을 준비했대요. 멋지지 않아요?”
“그렇네요.”
우후라가 스팍을 새치름하게 쳐다보았다. 우후라가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라서 스팍이 얼른 정신을 차렸다.
“아, 당신도 행성 피렌체에 가고 싶어요?”
“그런 말은 안 했는데요. 그냥 요즘은 같이 보내는 시간이 적잖아요.”
“어제도 함께 함장님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잖아요.”
“그런 거 말고 커플끼리만 보내는 시간이 적다고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우후라를 만나면서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한 기억이 없었다. 분별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공적인 자리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 어쩌다 시간이 맞아 함께 식사할 때를 제외하면 둘만의 시간이랄 것이 거의 없어서였다. 특히 엔터프라이즈호 승선 이후에 오롯이 두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은 잠자리를 할 때 외에는 전무하다고 봐도 좋았다. 새삼스러운 비난에 며칠 정도는 수면을 취하지 않아도 거뜬한 스팍조차 피곤함을 느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우후라 앞에서 스팍은 늘 미안했다. 애정을 담아 선물한 보카야 목걸이의 푸른색이 보기만 해도 서늘한 델타 베가의 빙하처럼 시렸다.
‘다 큰 성인끼리 이런 일도 있는 거지.’
그래. 꼭 그 말처럼 시리고 추웠다.
“결혼이란 걸 하면… 달라질까요?”
나도. 당신도. 바라건대 그 사람도.
“그야 달라지겠죠. 당장 부부 선실을 쓰니까 아무래도 둘이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잠깐만. 지금 그거 청혼한 거예요?”
우후라가 소리 내어 웃으며 스팍을 끌어안았다.
“와, 사실 당신이 청혼하리라고는 기대도 못했는데, 막상 청혼을 받으니까 기분이 좋긴 하네요. 내가 먼저 얘기해야 마지못해 끌려오는 것 같더니, 웬일이죠? 무슨 심경의 변화예요?”
무엇부터 반박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스팍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오해를 풀 시간은 아직 많았다. 그렇게 자신을 설득했다. 스팍은 우후라를 마주 안으며 짐의 몸에 자신의 흔적이 남은 것처럼 자신의 몸에도 짐의 흔적이 남아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스팍커크로 쓰고 싶다고 했던 유럽 로맨틱 코미디 영화(정확하게는 프랑스 영화)를 이야기로 풀어 보았다. 썰은 푼 적이 있는데 다시 봐도 스팍커크랑 찰떡 같아서 ‘무엇이든 쓰게 된다’의 효력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 끼적여 보았다.
겸사겸사 오랜만에 그동안 쓰다 덮어 둔 팬픽을 들여다 보았다. 오랜만에 읽으니 내가 이런 것도 썼었나 싶고 무척 재미있었다. 전부 미완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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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 지원 임무 나갔다가 스팍의 아내와 스팍의 아이를 태우게 된 엔터프라이즈호. 모두가 이 가족을 흥미있게 지켜보는 가운데 함장인 제임스 커크만은 이 가족을 대수롭지 않게 대한다. 과연 이 가족에겐 무슨 사연이? 이런 상황에 스팍커크는 어떤 연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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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위반으로 캐롤 마커스와 결혼한 제임스 커크. 이들을 지켜보는 스팍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그걸 지켜보는 제임스 커크! 과연 이 스팍커크는 연애를 할 수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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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AU로 레이엔 스팍과 신인 드라이버 커크. 안전 지향 레이싱을 추구하는 스팍과 도박 같은 모험도 불사하는 커크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인정하며 우승을 향해 달려가는 스포츠 로맨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팀 엔터프라이즈의 우승 도전기!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니 삼각관계가 취향이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배배 꼬인 것이 전부 흥미진진해. 게다가 전부 단편으로는 소화가 안 될 스케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디서 본 건 많아서 꿈은 크다. 사람이 주제를 알아야 하는데… 이게 다 나 같은 애도 팬픽을 써 볼까 생각하게 만드는 스팍커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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