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이이치로 시리즈는 도서관에서도 빌려서 읽었지만 이번에 리디 셀렉트에 올라와서 기쁜 마음으로 또 읽었다. 다시 읽어도 역시 좋아서 전자책으로 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단편이기 때문인지, 작가가 마술사이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묘사에 낭비가 없어서 곱씹어 읽기 참 좋다. 장편이라면 똑같이 묘사에 낭비가 없어도 곱씹어 읽기엔 기력과 시간이 필요하니까.
1권에 해당하는 아 아이치로의 낭패에서는 비뚤어진 방과 호로보의 신이 좋았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때 호로보 섬이라는 가상의 섬에 출병했다 생환한 나카가미 야스키치라는 인물이 유골 수집단으로 다시 돌아오며 당시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호로보의 신은 도입부가 마음에 들어서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추리물로서는 베스트라고 할 수 없지만, 도입부의 흡인력은 아 아이이치로 시리즈 중에서도 손꼽히게 좋았다.)
그때 문득 ‘뼈가’라느니 ‘뼈는’이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니 남자 너덧 명이 둥글게 모여서서 담소하고 있었다. 유골 수집단은 아니었다. 화려한 셔츠를 입은 장년층 집단인데, 그들의 큰 체구에 나카가미는 가벼운 반감을 느꼈다.
굶주려본 적이 없는 세대다.
–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중 『호로보의 신』
‘굶주려본 적이 없는 세대다’라는 짧은 문장이 충격적이었다. 이 문장이 주는 무거운 분위기를 아 아이이치로 시리즈의 분위기로 환기시키는 솜씨도 정말 절묘했다.
2권인 아 아이이치로의 사고에서는 지푸라기 고양이와 스즈코의 치장이, 3권에서는 적색 찬가가 좋았다.
추리소설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 안에서 취향은 갈리는 법인데, 나는 스릴러가 가미되지 않은 고전적인 추리물이 좋다. “어쨌든 주인공이 해결”한다는 것을 믿고 마음 편하게 폭력이나 살인의 현장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다칠 때의 경험도 듣지 못해 귀를 막고, 영화 속의 부상이나 사망 장면조차 눈을 똑바로 뜨고 보지 못하는 심약한 인간이 제일 좋아하는 소설 장르가 추리소설이라는 게 아이러니지만 원래 다 그런 것 아니겠나. (생각해 보니 BL이랑 막상막하인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