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팍/커크 영픽 추천] Vulcan Keeping and Other Problems

Vulcan Keeping and Other Problems by t_3po
7412 words

언니의 부탁으로 벌칸인 조카를 잠시 맡게 된 멜 그레이슨은 사춘기가 온 조카의 첫사랑 상대가 동네에서도 유명한 불량소년인 것을 알게 되는데…

스팍도 커크도 아닌 제3자의 시선으로 사춘기를 맞이한 스팍의 첫사랑을 관찰하는데 간질간질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화자와 함께 추임새를 넣어가며 정말 즐거운 기분으로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독특하고 멋진 스팍커크 소설이었다. 강추!!


 

“도대체 우리 애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멜은 스팍과 함께 보낸 몇 주 동안 조카가 했던 말과 행동들을 떠올려 보고는 뻔한 대답을 돌려 주었다.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물론, 거짓말이었다.

– – –

그날 문 앞에 선 스팍을 보고 멜이 제일 먼저 떠올린 생각은 스팍의 키가 참 크다는 것이었다. 성장기 청소년 아니랄까봐 멀대 같이 키만 컸다.

스팍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왼손으로 옮겨 들고 멜의 기억에 탈ta’al이라고 했던 특유의 인사를 했다.

“멜 이모.”

얼핏 보기에 스팍은 좀 젊고 마른 버전의 사렉과 흡사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언니와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동그스름한 볼, 입술의 모양, 갈색 눈동자를 한 둥근 눈까지 전부 아만다를 쏙 빼다 박은 모습이었다. 순수한 벌칸인의 눈보다 감정이 드러나는 스팍의 눈에서 불안함을 발견한 멜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만다는 사렉과 함께 최근 연방에 합류하여 벌칸의 원조를 받고 있는 행성에 가 봐야 한다고 했다. 멜도 스팍이 함께 가지 못하는 이유까지는 납득했지만, 굳이 자신과 함께 지내야 할 이유는 알지 못했다. 누나로서 동생들을 보호하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법을 알려 주곤 했던 사람이 아니고서야 쉽게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게 긴장한 스팍을 보기 전까지는. 스팍을 찬찬히 살피던 멜은 조카의 오른쪽 눈 밑에서 거의 사라진 멍 자국을 볼 수 있었다. 긴장한 데다 멍까지 달고 있을 만한 사연은 이미 멜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래도 아만다가 무슨 생각으로 이모인 자신에게 자기 아들을 맡겼는지 분명해진 건 집에 들어선 스팍의 첫 마디 때문이었다.

“이모의 일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제가 있어도 불편하지 않으실 거예요.”
“넌 청소년이잖아. 그 나이엔 거슬리게 행동하는 게 정상이야. 편하게 있어.”

하지만 스팍은 그저 당황하며 멜을 바라볼 뿐이었다.

“방도 좀 더럽히고, 늦게까지 나다니고,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멜의 말에도 스팍은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멜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걘 너무 범생이야.”

통신을 통해 아만다가 버럭 화를 내는 소리가 들렸다. 제대로 된 홀로비전 통신을 할 수 있을 만큼 수신 상태가 좋지도 않았고 아만다의 목소리도 뚝뚝 끊겼지만 아만다가 얼마나 화난 얼굴을 하고 있을지 상상이 갔다. 아만다의 화난 얼굴이라면 얼마나 많이 봤는지 손바닥 보듯 훤했다.

“멜! 내 아들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진심으로 화가 난 목소리가 아닌 것을 보니 아만다도 자기 아들이 어떤지는 안다는 뜻이었다. 두 사람이 어린 시절 덩치 큰 남자애들이 나타나면 옷장이나 사물함에 숨기 바빴던 남자애들과 한 번 이상 비교도 해 봤다는 뜻이었다. 연방에서도 가장 모범생 집단인 벌칸인들과 어울려 사는 벌칸인인데도 스팍이 그런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한 끝에 스팍이 혼혈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받고 있다는 잔인한 현실을 깨닫고 말았다.

“평범한 십대 같지가 않잖아.”
“걘 벌칸인이라고.”
“반은 인간이지. 스팍은 벌칸인이라서 그러는 게 아냐. 나도 형부를 봐서 벌칸인이 어떤지는 알아. 자신감이 철철 넘치는 거만한 족속들이잖아. 언니, 솔직히 형부도 좀 재수 없다는 건 알지? 스팍은 그렇지 않아. 꼭… 사람들에게 거슬릴까봐 두려워하는 애 같다고.”

아만다에게서 아무 말이 없자 멜은 자신이 이겼다는 것을 알았다.

“나한테는 말을 안 해. 스팍은 자기의 인간적인 면이 부끄러운가 봐. 매일 친구들에게 그걸로 놀림을 당하면서 컸거든. 이젠 걔한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도 모르겠어.”
“어우, 언니. 그래서 나한테 보낸 거잖아. 안 그래? 내가 얘기해 볼게.”

멜이 웃었다

– – –

“그래, 누군데?”

스팍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무슨 뜻이세요?”

멜이 눈을 흘겼다.

“야, 나도 남동생이 있거든. 너희 삼촌들이 열세 살이 됐을 때 충고해 줬던 것도 나고 너희 엄마가 너희 아빠랑 데이트를 한다고 제일 먼저 고백했던 것도 나야. 내가 이런 말을 할 땐 네가 이미 누군가에게 푹 빠진 걸 알고 있단 소리고, 여긴 작은 동네라 척하면 척이야. 스팍, 난 네가 도대체 누구 때문에 전화기를 보고 웃으며, 이 오밤중에 내 옛날 코스모폴리탄 잡지를 읽는 건지 알아야겠어.”

잠깐 고집스러운 눈으로 멜을 쳐다보던 스팍이 입을 열었다.

“이름은 짐이에요.”

동네에 짐이라는 아이는 많았지만 스팍이 말하는 짐이 누구인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금발 머리에 파란 눈, 자신만만한 미소. 환장하겠네. 자신의 조카인 스팍은 하필이면 하고 많은 사람 중에서도 동네의 불량소년에게 푹 빠지고 만 것이다.

– – –
“걔 눈동자는… 걔 눈동자는 정말 파래요.”

스팍이 손을 움직이자 술이 흘러넘칠 기세로 흔들렸다.

“머리카락도 아름다운 금색이에요. 그렇게 아름다운 금발머리는 본 적이 없어요.”
“백인 남성 아무나 검색해 봐. 쌔고 쌘 게 금발머리야.”

멜은 시큰둥했다.

“벌칸에서는 보기 힘들어요.”

스팍이 건방지게 멜을 쳐다보려 했지만 이미 눈은 초점을 잃은 채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설마 야한 사진도 보내고 그러는 건 아니지?”
“야한 사진이 정확하게 어떤 거예요?”

스팍이 술을 네 잔이나 먹고 소파에서 잠이 들자 멜이 스팍의 전화기를 훔쳐보았다. 커크라면 멜도 좀 아는 애였다. 동네 십대들 사이에서 유명한 아이였으니 잔뜩 허세를 부리며 찍은 셀카나 구역질나는 이모티콘으로 가득한 문자를 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야한 사진도. 보나마나 빤했다.

그러나 멜이 발견한 건 시였다. 게다가 대부분은 커크가 보낸 거였다.

멜이 놀라 눈을 깜박였다. 이런 걸 상상한 건 아니었다. 멜은 항상 커크를 멍청한 애라고 생각했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사고나 치고, 마약이나 하고, 평생 책이라고는 들여다 보지 않는 그런 멍청한 아이.

그런데 생각해 보니 스팍이 그렇게 멍청한 아이에게 끌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외모가 훌륭하다 해도 말이다.

멜이 시 중 하나를 열어 읽다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네 입에, 네 목소리에, 네 머리카락에 굶주려 있어
입을 다물고 굶주린 채, 그 거리들을 걸어
빵으로도 허기가 차지 않고, 새벽빛에는 화가 나
하루 종일 네 유려한 발걸음 소리를 찾아

야한 사진은 아니네.
야한 시지.
짐 커크는 멜의 모범생 조카에게 야한 시를 보내고 있었다.
멜은 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확실히 새롭긴 했다.

– – –

“부모님이 그거 누구 재킷이냐고 물을 거라는 거 알지?”
“알아요.”
“그럼 말 할 거야?”
“네.”
“너희 아빠 심장 마비 걸린다.”

스팍이 피식 웃었다.

“그야 놀라시겠죠.”

멜이 웃었다. 싫다고 하는데도 개의치 않고 한 손으로 스팍의 머리를 헤집었다.

“너 여기서 진짜 많이 컸다. 어쩜. 나쁜 남자랑 연애도 하고 아버지한테 반항도 하고. 너가 아이오와에서 몇 개월 보내는 동안 이렇게 클 줄 누가 알았겠니?”
“저 역시 상상도 못했어요.”

스팍이 웃었다. 활짝, 인간의 미소로. 마음속으로 카메라를 준비하고 있던 멜은 셔터를 눌러 마음속에 그 미소를 저장했다.

“감사합니다.”
“에이, 왜 그래. 언제든 놀러 와.”


마음의 상처를 입고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내 주지 않던 사춘기 벌칸 소년 스팍이 짐을 만나서 풋풋하게 사랑하는 모습이 왜 이렇게 귀엽고 훈훈한 거니 ㅠㅠㅠㅠ 게다가 스팍에게 야한 사진이 아니라 야한 시를 보내는 짐은 또 왜 이렇게 섹시한 거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클래식한 면이 참 좋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엇보다 그런 두 사람의 연애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직 결혼하지 않은 “이모”라서 그런가, 감정 이입은 왜 이렇게 잘 되는 거니 ㅠㅠㅠㅠ

 

짐이 스팍에게 보낸 야한 시는  파블로 네루다가 쓴 100편의 사랑 소네트 중 11번째 소네트라고 한다. 예전에 Among the Clouds를 옮기면서 파블로 네루다를 언급한 적 있는데, 또 팬픽을 계기로 뵙게 됐으니 이것도 신기한 인연이라면 신기한 인연. 옮기다 보니 짐이 보낸 시의 마지막 줄이 잘 이해가 안 돼서 원문을 찾아 보았다.

Tengo hambre de tu boca, de tu voz, de tu pelo
y por las calles voy sin nutrirme, callado,
no me sostiene el pan, el alba me desquicia,
busco el sonido líquido de tus pies en el día
(Losada, S.A., 1999)

이걸 바탕으로 다시 고쳐 보면 이렇다.

I crave your mouth, your voice, your hair
Silent and starving, I prowl through the streets
Bread does not nourish me, dawn disrupts me, all day
I Hunt for the liquid sound of your steps

첫 줄이 아주 그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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