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y’d call us star-crossed (If they called us at all)s by HanaSheralHaminail
38479 words
프라임 스팍과의 마인드 멜드로 스팍을 깊이 이해하게 된 커크가 나라다 사건으로 벌칸 행성과, 그곳에서 쌓은 대부분의 인연과, 무엇보다 어머니를 잃고 깊이 상처받은 스팍을 감싸안고, 치유하고, 또 사랑하는 이야기.
원래 소설 추천은 내가 다 읽고, 또 읽을 것 같은 것만 추천하는데 이건 다 읽지도 않고 추천글부터 쓴다. 일단 내가 발췌한 장면이 너무 예뻐 ㅠㅠㅠㅠ 그리고 ‘이만큼 보셨으면 제가 해피엔딩 아닌 글 안 쓰는 거 알잖아요.(But by now you know that I’ll never leave a story without a happy end.)’라는 작가님의 말이면 이거 끝까지 믿고 볼 수 있어!!!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분해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어느 날 저녁에 스팍이 물었다. 둘 주변에 흩어진 부품들은 꼭 전쟁의 사상자 같았고, 그토록 늦은 시간까지 일하던 다른 벌칸인들은 둘의 혼란한 방식을 옮지 않으려는 듯 둘이 사용하는 공용 공간을 피했다.
등을 대고 바닥에 누워 있던 커크가 스팍을 바라보는 표정은 진솔했고, 입술도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럼요. 얼마든지요.”
관용적인 표현도, 어쩐지 가슴을 채우는 낯설고 간지러운 따스함도 조심스레 외면하며 스팍이 조립하던 회로에 시선을 고정하고 천천히 물었다.
“왜 고바야시 마루 테스트에서 편법을 쓴 겁니까?”
커크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스팍이 커크를 쳐다볼 땐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당장이라도 비난할 생각이었지만 뭔가가 그런 스팍을 방해했다. 악의가 전혀 없는 커크의 목소리인지, 흔들림 없는 진실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난 편법을 쓴 게 아니에요.”
웃음의 여운이 남은 대답이었다. 커크가 몸을 돌려 배를 깔고 바닥에 엎드리더니 용케 분해된 컴퓨터가 없는 공간으로 아무 것도 들지 않은 팔을 뻗었다. 커크가 재빠른 동작으로 밑판을 분리하자 컴퓨터 내부에 접근하는 게 더욱 용이해졌다.
커크가 몸을 돌리더니 놀란 표정을 한 스팍을 보고 작게 웃었다.
“말했잖아요. 난 승산 없는 일이란 걸 안 믿는다고.”
설명을 덧붙이며 커크가 스팍이 들고 있던 패드를 가져가서는 전날 밤 두 사람이 고안한 설계안을 검토했다. 스팍은 커크와 함께 일하는 것이 얼마나 동기 부여가 되는지 깨닫고는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후회는 비논리적인 일이지만 커크에게 좀 더 일찍 다가가지 못했던 것이 후회로 남았다. 물론 순수하게 지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토록 완벽하게 스팍을 흔들 수 있는 인물을 자주 볼 수 있는 건 아니었고, 커크의 사고는 무척이나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영감과, 학문적 지식과, 직관과, 논리가 뒤섞여 흐르고 있었다. 그랬다, 논리적이기까지 했다.
스팍도 놀랐더랬다.
“이해할 수가 없군요.”
인정하며 스팍이 선 두 개를 잘라 꼬아 아직 고정되지 않은 선에 방해되지 않도록 한 쪽으로 치워 두었다. 커크는 타 버린 전선을 집으려 스팍의 손목 아래로 오른손을 밀어 넣었다. 분명 커크는 맨살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지만, 스팍은 익숙한 솜씨로 타 버린 전선을 새 전선으로 교체하는 섬세한 손가락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무릎을 대고 몸을 일으킨 스팍이 고개를 돌려 켜지지 않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액정에 뭔가 이상이 생긴 모양이었다. 편광 스크린 두 개가 아직 작동 가능한지 트라이코더로 확인해 본 스팍은 횡 스크린이 거의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냈다.
스팍이 편광자를 찾았다. 부탁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커크가 스팍의 손에 편광자를 쥐어줬다.
“이거 찾아요?”
커크는 하던 일에서 시선을 떼지도 않고 말했다.
스팍이 눈을 깜박였다. 그런 일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물론 제임스 커크는 상당한 지적 능력을 가진 인물이므로 논리에 따라 스팍의 다음 행동을 예상하고 그대로 행동한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집중을 위해 생각을 떨쳐내며 스팍은 방금까지 얘기했던 화제로 돌아가기로 했다.
“승산 없는 일의 존재는 당신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스팍이 편광자를 스크린 앞에서 움직이며 말을 꺼냈다. 작게 삑삑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이길 수 없는 싸움도 있으니까요.”
어머니가 죽음을 향해 추락하는 모습이 떠오른 순간 스팍은 그 비극적인 사건을 떠올리지 않은 지 16시간이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 하던 연구와 짐 커크라는 신비함에 푹 빠져 있었던 것이다.
커크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상황에 따라 다르죠.”
“무슨 상황 말입니까?”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다른 거예요.”
커크가 준비한 듯 대답했다. 커크가 몸을 벌떡 일으켜 앉더니 옷에서 보이지도 않는 먼지를 털어내고 스팍을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대가와 보상의 균형이 중요한 거니까요.”
짧은 문장에 더 큰 의미가 숨겨진 건 알았지만 커크를 더 추궁하고 싶지는 않아서 원론적인 이야기만 덧붙였다.
“얻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희생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네, 하지만 그건 주관적인 선택이니까요.”
스팍이 눈썹을 들어올리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함장이라면 주관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스팍이 말하는 동안 커크는 망가진 전선 뭉치를 풀더니 본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잘 정리해 꽂았다.
“함장은 선원들과 항해 중 만나는 사람들의 생명을 책임져야 합니다.”
“맞는 말이에요.”
커크는 목을 꺾으며 하품을 하더니 셀랏처럼 고개를 흔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커크가 구석에 놓인 복제기로 걸어가 코드를 입력했다. 커크가 복제기까지 갔다 오는 동안 모든 벌칸인들이 고개를 돌려 커크를 흘끔거리는 걸 본 스팍은 즐거움에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커크는 스팍의 얼굴에 스친 표정을 보기라도 한 듯 웃으며 스팍의 옆에 정좌를 하고 앉았다. 스팍은 커크가 건네는 따끈한 티를 감사히 받았다.
스팍은 커크가 자발적으로 보이는 호의에는 이미 익숙해졌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고바야시 마루 테스트의 목적은 어떤 죽음이나 패배 앞에서 생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평가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잖아요. 하지만 그래봤자 시뮬레이션이에요. 실패 말고 두려워 할 게 뭐 얼마나 있겠어요.”
커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죠.”
“사관학교의 시뮬레이터에 앉아서 최선을 다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고작 시험을 위해 생도들을 위험에 빠뜨릴 순 없습니다.”
스팍이 날카롭게 반론했다.
“생도들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진짜 비극을 계획할 순 없습니다.”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혹시 고바야시 마루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커크가 고개를 저었다.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는 예상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두 사람이 만난 뒤 처음으로 커크가 눈을 떨구고 시선을 피했다. 마치 언제나 진솔했던 그 눈동자가 커크 자신의 깊은 생각까지 드러낼까봐 두렵기라도 한 듯이. 신기해하며 스팍이 몸을 굽히자, 여전히 그 날카로운 푸른 눈동자를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커크가 한숨을 쉬었다.
“진짜 위기 상황이 닥쳐야만 사람들이 기대 이상을 해낼지, 실패할지 알 수 있어요.”
커크의 목소리는 낮았고, 말의 높낮이도 크지 않게 노력하고 있었다.
“실패란 걸 알았을 땐, 평가를 하기에도 이미 늦은 거고요.”
문득 커크가 원하기만 하면 완벽한 벌칸인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스쳤다.
“나도 압니다. 고바야시 마루 시험의 목적은 함장이 모든 지식을 활용해 사상자와 피해를 최소화하는 능력을 보는 겁니다.”
스팍이 인정한 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을 골랐다.
“선원과 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자들과 교류하는 방식도 평가하고요.”
커크가 동의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빈 커피잔을 바닥에 내려놓고 천천히 설명했다.
“고바야시 마루 시험이 반드시 통과할 수 있는 시험이어야 한다는 게 아니에요. 절대 통과할 수 없는 시험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어쩐지 두 개의 차이를 알 것 같았다. 죽음과 생존, 행성 전체의 파괴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재건, 상처와 회복의 차이를. 하지만 스타플릿은 파괴됐고 네로 때문에 잃어버린 생명과 문화, 도시와 역사는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들은 승산 없는 싸움을 마주했고, 패배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시험하는 게 논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짐 커크의 미소에서는 정말 시선을 떼기가 힘들었다.
“함장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건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희망이요?”
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했다. 커크의 눈에는 부드러운 열정이 가득했다. 스팍이 시선을 피했다.
“네. 희망이 있으니까 우리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바닥에 두 손을 짚은 채 설득이라도 하듯 스팍을 향해 몸을 기울이는 커크의 말은 단호했다.
“애초에 우리를 저 별들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것도 희망이고요.”
갑작스런 열정에 스팍이 눈을 깜박이자 속눈썹이 떨렸다.
“그건… 생각해 보겠습니다. 희망이란 것에 대해.”
커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커크가 밝은 목소리로 감사를 표하더니 스팍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 접촉 또한 스팍의 피부에 새겨졌다. 따뜻했다.
고작 발췌인데 옮기다 보니 A4 5페이지 나온 거 실화냐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