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ative Works Statement:
I hereby give permission for anyone to translate any of my fanfiction works into other languages, provided they give me credit and provide a link back to my profile or the original work. Thank you for the interest; I’m always honoured when people ask to translate my work. 🙂
* 이 소설은 스팍과 커크가 공수교대를 합니다. 리버스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께는 권하지 않습니다.
스팍의 아파트는 어느덧 익숙해진 공간보다 눈에 띄게 깨끗했다. 스팍은 사용한 물건을 즉시 제자리에 두었기 때문에 어질러질 일이 없었다. 합성기에 플로믹 수프 레시피를 집어넣은 스팍은 아파트 현관 근처의 작은 식탁에 그릇을 놓고 앉아 먹었다. 작은 아파트였다. 현관 옆에는 작은 주방이 있었고, 그 옆에 거실이 있고, 그 너머로 침대와 욕실이 있었다. 스팍은 대부분 사관학교에서 근무를 하거나 침실의 콘솔을 들여다보며 보냈기 때문에 그걸로도 충분했다.
수프는 만족스러웠다. 스팍은 먹는 동안 특별히 어디에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벽은 온통 감청색이었다. 처음 이곳을 계약할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개인 물품은 별로 없었다. 부정확한 설명이지만, 아파트는 비유적으로 말하면 서늘했고 어울리지 않게 텅 비어 있었다. 매번 너무 고요했다.
스팍은 짐이 그리웠다.
아주 많이.
먹는 동안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두 명분의 음식을 만들려던 본능도 참아야 했다. 스팍은 계속 식탁 너머를, 심하게는 현관문을 돌아보며 함께 할 누군가를 기대했다. 기대할 일이 있는 게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사람과 대화할 기분은 들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설거지를 하고 방구석에 놓인 책상으로 향했다. 스팍은 책상에 앉아 콘솔을 켰다. 파일을 정리하는 시간에 수당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런 헌신이 개인적인 성장에 득이 되리라 여겼다. 어차피 남는 시간에 할 수 있는 더 생산적인 일도 없었다.
스팍은 눈꺼풀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질 때까지 몇 시간이고 일했다. 그 뒤에 옷을 벗고 침대에 올라 소등 명령을 내렸다. 처음도 아니었고 누군가 뭐라고 하기 전까지는 마지막도 아니겠지만, 스팍은 더 작은 침대를 샀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침대도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스팍이 텅 비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벌칸 류트는 협탁에 놓인 채 창문 너머의 달빛을 받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스팍이 떠올릴 수 있는 곡이라고는 밝지 않은 곡뿐이었다. 언젠가 다시 벌칸을 방문할 날이 올 것이다.
스팍이 원하는 모든 것은 지구에 있었다.
스팍은 눈을 감고 잠들기 위해 노력했다.
– – –
둘의 친구 관계가 끝날 이유는 차고 넘쳤다. 짐은 이제 스팍에게 볼일이 없는데도 자주 스팍을 불러냈다. 적어도 짐이 처음 적응하는 동안에는 소식을 못 들을 줄 알았는데, 짐은 스팍에게 질문을 쏟아냈고 스팍은 짐이 이사하는 걸 도왔다. 아이오와의 집에는 짐의 물건이 많았고, 그렇지 않아도 원래 스팍보다 물건이 많았기 때문에 기숙사는 빠르게 채워졌다. 짐의 기숙사는 한쪽에 작은 주방이 딸린 좁은 거실과 침대 두 개가 놓인 방이었다. 짐은 스팍이 아닌 룸메이트와 함께할 예정이었다. 스팍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룸메이트와 함께 지낼 것이다. 콘솔이 울렸고, 스팍은 욕실에서 나와 늦지 않게 응답했다. 반대편에서는 짐이 웃고 있었다.
“있잖아, 오늘 밤에 놀러와. 겨우 과제를 다 끝냈거든. 그래도 월요일엔 또 과제가 쏟아질 거야. 와서 내 룸메이트도 만나 봐.”
학기가 시작된 뒤 짐은 쉬지도 않고 열심히 했다.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도 얼마 없었다. 스팍은 그런 기회가 그리웠다. 그래서는 안 될 텐데도 스팍은 고개를 끄덕였다. 짐이 웃었다.
“좋아. 언제든 와. 음식은 우리가 준비해 둘게.”
그리고는 먼저 통신을 끊었다.
우리. 스팍이 없는 ‘우리’에 짐이 있다니 이상했다. 짐이 말하는 음식이 뭘까 막연히 궁금해졌다. 아마 감자칩이나 그 정도의 부적절한 무언가겠지. 하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짐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짐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여야 할지도 모른다. 짐은 괜찮아 보였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 스팍이 그렇게… 과보호를 할 일은 아니었다. 스팍도 알고 있었다.
스팍은 빈손으로 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아파트의 문단속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로비로 내려갔다. 사관학교까지는 도로 몇 개만 건너면 되기 때문에, 스팍은 공원을 통과하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었다. 짐의 방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고 있었다. 밖은 어둑어둑했지만 아직 시간이 있었다. 빨리 자리를 뜰 결심을 했다. 짐은 제대로 쉴 필요가 있었고, 특히 정규 과정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스팍이 짐의 방에 도착해 노크를 했다.
젊지만 스팍보다는 나이가 많은 남자가 별로 웃음기도 없는 얼굴로 문을 열었다. 붉은 생도 제복을 입고 있는 남자는 갈색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겼고, 볼에는 약간 수염 자국이 있었다. 짐이 아니었다. 남자는 고개만 돌려 돌아보고는 툴툴거렸다.
“짐! 이 사람이 옛날 네 룸메이트야?”
“본즈!”
짐이 남자 뒤에서 서둘러 모습을 보이며 화를 냈다.
“뭐하는 거야. 얼른 안으로 들여야지, 이 바보야!”
“난 몰랐거든?”
이 ‘본즈’라는 사람은 방어적으로 양손을 들어 올리며 대꾸했다.
“강도일지도 모르잖아.”
“기숙사 근처에 강도가 어딨냐?”
짐이 코웃음 치며 남자를 밀어내고 벽의 패널을 눌러 문을 열었다. 짐이 스팍의 손을 잡고 안으로 끌었다. 스팍은 이미 약간 불편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미 등 뒤의 문은 닫혀 있었다.
“이쪽은 스팍이야.”
짐이 스팍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소개했다.
“우리는… 친구였어. 같이 자랐지.”
“레너드 맥코이입니다.”
다른 남자가 스팍을 대놓고 평가하며 대답했다.
“신경 쓰지 마.”
짐이 맥코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는 얼굴로 스팍을 쳐다보았다.
“얜 항상 불만이 많거든. 너 때문이 아니야. 친해지면 좋은 사람이야. 진짜야.”
맥코이가 짐을 보는 시선은 그렇지 않았지만, 입술에는 작게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장난스럽게 노려보는 건지도 모른다. 그걸 구별할 수 있을 만큼 맥코이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솔직히 맥코이가 짐과 가까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스팍은 맥코이에 대해 알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무례한 감정이라, 흔히 말하는 식으로 떨쳐버리기 위해 노력했다. 맥코이는 스팍에게 아무 잘못도 한 적이 없고 그저 짐을 안다는 이유만으로 미움받을 이유가 없었다. 짐에게는 친구가 필요했다. 짐이 맥코이에게 설명했다.
“스팍은 아이오와에 있는 우리 집에서 오랫동안 같이 살았어. 나중에 너도 놀러와.”
맥코이가 눈에 띄게 몸을 떨었다.
“또 트랜스포터를 타라고? 됐거든.”
“에이, 왜 그래. 엄청나게 안전하다고!”
짐이 징징거렸다.
“전혀 안전하지 않아. 내 분자를 분해해서 좁은 통로로 세상 끝까지 쏘는 게 무슨…”
맥코이가 투덜대기 시작했지만, 스팍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아이오와는 세상 끝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맥코이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튼, 무슨 소린지 알잖아요. 트랜스포터는 내 취향이 아닙니다.”
스팍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주장했다.
“제가 보장하죠. 연방의 텔레포터는 아주 안전합니다, 맥코이 씨.”
“아무튼 난 싫어요, 스팍 씨. 그리고 녹색 피가 흐르는 연방 사람이 뭐라고 하든 제가 들을 필요는 없잖습니까.”
맥코이가 반박했다. 스팍이 미간을 찌푸렸다. 연방이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는 맥코이로서는 너무나도 비이성적인 태도였지만, 싫다는 것을 표현하는 건 이 둘에게 별로 모욕이 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스팍은 맥코이가 자신의 피 색깔을 안다는 사실에 약간 놀라면서도 그게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약간은 혼란스러웠다. 맥코이는 우주 생물학을 공부하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짐은 이 불편한 대화가 그저 귀엽다는 듯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하고 싶은 거 있어? 나갈까? 영화 볼까? 카드 할래?”
“술이나 마셔.”
맥코이의 말에 짐은 웃었지만 스팍은 얼굴을 찌푸렸다. 맥코이는 신경 쓰지 않고 스팍을 지나쳐 주방으로 향했다.
“난 버번 마실 건데, 다들 뭐 갖다줘?”
“난 됐어.”
짐의 말에 맥코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짐이 웃으며 설명했다.
“스팍은 술을 안 마시는데 혼자만 멀쩡하게 둘 수 없잖아.”
“나도 실제로는 멀쩡할 거거든. 몇 잔 마셔봤자 네가 눈치도 못 챌걸.”
“알지 왜 몰라. 술만 취하면 화내지 않고 징징대면서 나한테 영원한 사랑을 고백하잖아.”
큰 병을 들고 잔에 술을 따르며 맥코이가 눈을 부라렸다.
“그딴 농담 하지도 마.”
하지만 짐은 스팍을 쳐다보며 말했다.
“쟨 나 사랑해.”
그런 얘기를 들으니 어쩐지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두 사람이 공유하는 사랑과는 다른 종류의 사랑인 게 분명했다. 짐은 맥코이를 안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둘은 서로를 놀리는 중이었다. 스팍은 짐이 말한 맥코이의 취한 모습도 농담일 거라고 생각했다. 맥코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짐은 스팍의 손을 잡고 소파로 끌며 물었다.
“이제 우리 뭐할까?”
“네 선택에 맡길게.”
스팍은 특별히 선호하는 게 없었다.
맥코이는 침실에서 카드를 가지고 나와 의자를 빼고 앉았고, 셋이서 복잡한 카드 게임을 했는데 단지 ‘무표정’ 덕분에 스팍이 제일 잘한다는 걸 알게 됐다. 몇 판을 해 본 맥코이가 사기니 뭐니 말을 했지만, 짐은 항상 웃어버리며 계속 카드 게임을 했다. 맥코이는 굉장히 투덜대는 성격이었지만, 밤이 깊어질수록 이러니저러니 해도 맥코이가 짐을 좋아한다는 게 훤히 보였다. 맥코이에게 전부인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좀 더 호감이 생기기도 했다. 짐은 농담도 할 정도였다.
“꼬셔보려고도 했는데 쟤는 여자 것밖에 모른다니까.”
“네가 매력적이긴 하지.”
맥코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지만, 표정은 정반대였다.
“…근데 꿈도 꾸지 마라.”
“흥. 어차피 나도 너 싫거든.”
맥코이가 크게 웃었다. 술 덕분이었다. 맥코이는 다리를 떡 벌린 채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았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 다들 본즈는 뼈만 남기고 벗겨먹으려고 드니까.”
본즈는 자기 농담에 웃음을 터트렸고, 짐은 미친 듯이 웃었다. 스팍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기분이었다. 무엇이 진지한 말인지, 무엇이 농담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스팍은 함께 웃을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설령 이해한다고 해도, 아마 웃지 않을 것이다.
게임을 계속할 이유가 없었다. 짐은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크게 지고 있었고 맥코이는 흥미를 잃은 상태였다. 결국 카드를 치운 뒤 짐이 말했다.
“우리 영화 보자.”
하지만 스팍은 시계를 흘끔 쳐다보고 대답했다.
“너무 늦었어. 저학년 생도니까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유지해야지.”
그 말에 짐이 코웃음 쳤다.
“스팍, 여긴 스타플릿 사관학교야. 아무도 안 잔다고.”
“나도 와이프한테 차이면서 잘 때 더 많이 잤어.”
맥코이가 끼어들며 하는 소리는 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인 것 같았다. 하지만 스팍은 단호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갈 의사를 밝혔다. 짐이 내키지 않은 듯 한숨을 쉬더니 문까지 배웅했다. 작별 인사를 하다가, 스팍은 모든 상황을 받아들였다. 짐이 다른 장소에서, 너무나 완벽하게 적응해 붉은 생도복을 입고 있는 이 상황을. 잘 맞는 생도복을 입은 짐은 언제나처럼 근사했다. 이제 짐은 혼자서 생활하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과 데이트도 하고, 다른 친구도 사귀었다. 이제 짐에게는 다른… ‘일항사’가 있었다.
스팍도 다른 곳에 살고 있긴 했지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데이트에도 관심이 없었다. 스팍이 밤공기 속으로 향하려는데 짐이 나직이 말했다.
“빨리 돌아와.”
“공부 열심히 해.”
스팍의 말에 짐이 고개를 끄덕였다. 웃고는 있었지만 조금 억지스럽게 보였다. 짐이 손을 흔들었고 스팍은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멀어졌다.
– – –
현관벨이 울리는 소리에 스팍은 벗었던 셔츠를 다시 꿰입었다. 막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스팍은 천천히 현관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짐이 또 붉은 생도복을 입고, 패드를 손에 든 채 서 있었다.
“안녕.”
“그래, 안녕.”
“미안해, 늦은 시간인 건 아는데 전략 분석 과제 때문에 네 도움 좀 받으려고.”
스팍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
“전략 분석이면 네가 제일 잘하는 과목이잖아.”
“이젠 아니야.”
짐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젠 생존 전략을 제일 잘해. 어쨌든 이것도 잘 해볼 수는 있을 것 같아. 이미 레포트는 썼는데 그냥 한번 봐 줬으면 해서. 이해하지?”
“난 사관학교의 교원이라 적절하다고 하기는 어렵겠는걸.”
“내 과목 교수님은 아니잖아.”
그 말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짐은 상황을 더 곤란하게 만들었다. 잔뜩 바라는 표정으로 스팍에게 기대 애원했으니까.
“스팍, 부탁이야, 응?”
정말 이상하게도 스팍은 목이 탔다. 얼굴도 조금 홧홧했다.
“알았어.”
그렇게 말한 스팍은 활짝 웃는 짐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한쪽으로 비켜섰다. 문이 닫히자 스팍도 몸을 돌려 짐을 따라 주방으로 향했다. 짐은 거실을 그대로 지나쳐 바로 침실로 향하더니 신발을 벗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하얀 침구로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 위에서 짐의 생도 제복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스팍의 굳은 표정을 보았는지 짐이 올려다보며 스팍을 안심시켰다.
“한두 시간만 있으면 본즈도 일이 끝나니까 같이 저녁 먹으러 나갈 거야. 본즈한테 여기 있겠다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밤새도록 널 괴롭힐 생각 없어.”
스팍은 짐이 괴롭히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심 벌칸인으로서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자신의 침대 위에 누운 짐을 보는 일은… 힘들었다.
짐은 사심 없이 침대 헤드에 기대 패드를 이곳저곳 클릭했고, 스팍은 그런 짐의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이 충분히 떨어져 앉을 만큼 침대가 넓은 건 아니었지만, 스팍은 티 나지 않게 거리를 두려고 최선을 다했다. 둘의 무릎이 닿았다. 다른 곳도 닿았다면 스팍은 자신을 통제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짐의 패드를 보려면 스팍도 몸을 살짝 기울여야 했다.
“내용을 보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곳은 비워뒀고, 바꿔야 할 곳에는 밑줄을 쳐 놨어.”
“우리 둘의 입장 상 너한테 답을 알려주면 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아.”
스팍은 교수 노릇을 할 수 없었다. 짐이 스팍의 수업을 듣는 학생이라면 객관성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편애를 할 수는 없었다. 편애라니. 짐은 그의 애정이 향하는… 모든 것이었다.
어째서였을까, 스팍은 두 사람이 따로 살며 덜 만나면 둘의 관계가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 스팍이 한 주 내내, 심지어 한 달 내내 짐을 안 보고 지내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면 스팍은 더 추위를 느꼈고, 더욱 공허해졌다. 그러다 짐이 과제가 쌓였다고 징징거리며 연락해 오면, 스팍은 자부심과 표현하지 않았던 그리움을 털어놓을 것이다. 가끔은 최대한 거리를 둘 수 있도록 자신이 우주로 떠나야 하진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다가도 그런 생각에 스팍은 무너져내렸다.
짐이 조심스레 말했다.
“괜찮아. 그냥 내가 쓴 걸 훑어보는 건 괜찮지? 그냥 네 생각을 말해주는 건 괜찮잖아?”
짐이 패드를 건넸다. 패드를 건네받던 스팍의 손가락이 짐의 손가락 근처에서 움찔거렸다. 짐의 손은 아주 오래 전 스팍이 자주 잡을 때보다 훨씬 자라 있었다. 스팍은 가끔 더 어릴 때의 짐을 모르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짐의 레포트는 논지가 분명했다. 분량은 긴 편이었지만, 사관학교라서 괜찮았다. 스팍이 읽는 동안 짐은 조용히 앉아 있었고, 단 한 번 화장실에 가느라 자리를 떴다가 금세 돌아왔다. 짐이 스팍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팔짱을 꼈을 때, 긴장하며 몸을 굳혀야 하는 스팍은 그러지 않았다. 스팍이 짐을 내려다보더니 패드를 내려놓았다.
“짐…”
“보고 싶었어.”
짐이 속삭이며 스팍의 팔을 껴안았다. 자신이 해야 할 말이 뭔지 알면서도 스팍의 혓바닥은 뻣뻣했고, 입술은 딱 붙어서 벌어질 줄 몰랐다. 스팍이 속으로 잠깐이라고 다짐하며 짐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아주 잠깐이라고. 스팍은 그저 조용히 대답했다.
“나도 보고 싶었어.”
현관벨이 울렸다. 스팍이 화들짝 자세를 바로했다. 패드를 짐에게 건네고 침대에서 내려와, 고개를 저으며 현관을 향해 걸으면서도 곤란한 상황에서 해방된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문이 열리자 맥코이가 들어오며 한 마디 했다.
“황량하게 해 놓고 사는구나, 뾰족 귀.”
짐이 패드를 들고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짐의 시선에 스팍이 대답했다.
“훌륭한 통찰력이 담긴 보고서였어. 교수님도 상당히 인상 깊게 생각하실 거야.”
짐이 활짝 웃었다.
“고마워 스팍.”
짐이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하고 맥코이와 함께 아파트를 나섰다. 맥코이가 스팍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바람에, 이상하게도 맥코이에게 짐을 잘 부탁한다고 말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맥코이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이상하게 들릴 터였다. 게다가 짐은 이제 누가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짐 곁에는 항상 누군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스팍은 가끔 자신을 돌봐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그러다 딱 한 번, 스팍이 아팠을 때 아직 청소년이던 짐이 누우라고 하더니 의사가 치료하러 올 때까지 수프를 먹여 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다른 일들도 있었지만 그때의 일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 정도로 거의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누군가가 필요한 건 스팍이었다.
스팍의 곁에 항상 있어준 건 짐이었다. 스팍은 만약 자신이 문을 열고 당장이라도 부른다면, 짐이 달려와 줄 거라고 생각했다.
스팍은 방으로 돌아가 셔츠를 벗고 잘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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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 In time을 옮길 때는 원문을 아주 있는 그대로 직역하고 있다.
McCoy brings cards out of the bedroom and pulls up a chair, and the three of them play some complicated game that Spock proves to be best at solely due to his ‘straight face.’
맥코이는 침실에서 카드를 가지고 나와 의자를 빼고 앉았고, 셋이서 복잡한 카드 게임을 했는데 단지 ‘무표정’ 덕분에 스팍이 제일 잘한다는 걸 알게 됐다.
보통 이 정도까지 축자역을 하지는 않는데, 이 정도까지 해 보면 나와 다른 호흡의 문장을 만들어내는 재미가 있다. 내 생각에는 이쯤에서 끊어야 할 것 같은데 굳이 문장을 이어가고, 이건 붙이는 게 나은 것 같은데 굳이 분리한다. 나한테는 너무 낯선 호흡이지만, 그러니 일부러 더 해 본다. 문체를 닮기 위해 필사를 한다는데, 필사를 해 보진 않았지만 아마 비슷한 효과일 것 같다. 나의 경우 이 픽의 문체가 좋아서 이렇게 하는 건 아니고, 원문이 직역하기 좋은 형태라서 하는 거지만………..
아아, 이제 고지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