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ative Works Statement:
I hereby give permission for anyone to translate any of my fanfiction works into other languages, provided they give me credit and provide a link back to my profile or the original work. Thank you for the interest; I’m always honoured when people ask to translate my work. 🙂
* 이 소설은 스팍과 커크가 공수교대를 합니다. 리버스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께는 권하지 않습니다.
파이크 제독은 아직 정비가 진행 중인 엔터프라이즈호로 근처 은하를 가볍게 탐사할 생각이었다. 스팍에게도 몇 번이고 연구 장교로 와 달라고 제안했지만, 스팍은 아직 확실히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복도로 나선 둘은 복도가 교차하는 곳까지 이동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했다.
“엔터프라이즈호의 정비가 끝날 때까진 시간 여유가 있으니 생각해 보게, 스팍.”
“그러겠습니다, 제독님. 감사합니다.”
제독은 스팍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몸을 돌려 긴 복도쪽으로 향했다. 스팍이 생각해야 할 일은 많았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분명한 승진 기회였다. 그러나 스팍은 여전히 지상 근무를 계속해야 할 이유를 찾고 있었다.
복도를 걷다 문득 고개를 든 스팍은 떼를 지어 이동하는 학생들 속에서 복도 저 편에 선 익숙한 금발머리를 발견했다. 짐은 비상구 옆 한적한 모퉁이에서 누군가와 바짝 붙어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는 분명 벌칸인이었다. 똑 떨어진 앞머리에 까만 머리카락을 한 남자는 짐과 같은 붉은 생도 제복을 입고 있었다. 분명 짐의 연배일 것이다. 남자가 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짐이 웃었다.
그제야 자신이 걸음을 멈췄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팍은 고개는 똑바로 앞으로 향하고 뒷짐을 진 꼿꼿한 자세로 내키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걸었다. 평소와 다른 일은 조금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두 사람을 막 지나치려고 하는데 짐이 몸을 돌려 스팍을 불렀다.
“스팍.”
어쩔 수 없이 다시 멈춰 선 스팍은 몸을 돌려 짧게 대답했다.
“짐.”
스팍은 그저 걷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짐이 고개를 까닥이며 옆의 남자를 가리켰다.
“소개할 사람이 있어서.”
그쯤 되니 스팍도 어쩔 수가 없었다. 스팍이 두 사람을 향해 몸을 돌려 손을 들어올리는 벌칸식 인사를 하자 남자도 똑같이 따라했다.
“이쪽은 내가 말했던 친구. 그리고 이쪽은 내 남자친구 수발.”
큰 돌덩어리라도 삼킨 것처럼 스팍의 안에서 뭔가가 쿵하고 내려앉았다. 표정은 여전히 아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몸 옆으로 내린 손이 바짝 긴장했다. 스팍도 짐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경향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여성이었고, 남성인 경우에는 공식적으로 소개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수발은… 수발은 벌칸인이었다.
스팍이 짐에게 해 줄 수 없는 건 수발도 할 수 없었다. 스팍은 자신이 짐을 거절했던 걸 떠올렸다. 그러니까 짐은 다른 사람을 만나야 했다고. 그러니까 언젠가 일어났을 일이라고.
그러나 그게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치 모든 게 잘못된 것 같았다. 그건… 지적인 추론은 아니었다. 새로운 상황이 본질적으로 잘못인 경우는 없었다. 스팍은 할말이 없었고,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커크 생도가 대위님 칭찬을 굉장히 많이 하더군요.”
“고맙네, 생도.”
그나마 계급은 스팍이 더 높았다. 스팍이 파이크 제독과 함께한다면 소령으로 승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발을 우주로 파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하면 안 될 생각이었다. 스팍은 수발의 잘 닦인 신발부터 머리끝까지 훑어보았지만, 그는 어딜 봐도 벌칸인이었기 때문에 겉모습으로는 딱히 지적할 만한 게 없었다. 모든 게 단정했다. 짐의 취향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짐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같이 저녁 먹으러 가려고. 같이 갈래? 둘이서… 벌칸인끼리 하는 대화를 나눌 수도 있잖아.”
짐은 벌칸인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스팍과 몇 년이고 대화를 나눴으니까. 스팍의 대답은 급했다.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리고 스팍은 수발에게 다시 인사하고, 처음보다 더 빨라진 걸음으로 복도를 벗어났다. 그저 짐이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 – –
어쩌다 보니 스팍은 영화관에 끌려와 있었다. 실제로 거의 물리적으로 끌려온 셈이었다. 갑자기 스팍의 아파트에 나타난 세 사람은 실제로 스팍을 납치했고, 스팍이 짐에게 안 된다고 말하려는데 맥코이가 스팍을 한쪽으로 끌고 가더니, 자신이 두 사람 사이에 껴서 어색하기 짝이 없는 꼽사리를 해야 한다면, 스팍도 와서 자신의 짝이 되어야 한다고 으르렁거렸다. 짐과 수발은 두 사람 앞에서 손을 잡고 거리를 걸었고, 맥코이는 스팍과 함께 뒤처져 걷다가 어째서인지 테네브리아 독감에 대해 논쟁을 벌이게 됐다. 맥코이는 스타플릿 의무관 과정을 밟는 모양이었다. 이야기만 들어 봐도 맥코이의 실력은 상당했다.
의견 차이는 있었지만 맥코이는 괜찮은 상대였고, 영화관까지 가는 것도 대체로는 견딜 만했다. 그러나 좌석을 정하자 짐은 수발의 등받이에 팔까지 걸치고 나란히 앉았다. 정상적인 벌칸인인 수발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맥코이는 스팍이 짐 옆에 앉아야 한다고 우겼다.
“저 커플을 보면 내가 속이 뒤집히거든.”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그 말에 스팍도 비슷한 수준의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
“저기, 둘이서 팝콘 좀 사올래? 이왕이면 음료수도.”
짐이 몸을 돌려 부탁했다.
“하여간 내 마누라보다 돈이 더 들어가는 놈이라니까.”
맥코이는 투덜대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을 껴안고 있는 짐 옆에 있고 싶지 않았던 스팍도 맥코이의 뒤를 따랐다.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인지 극장 로비는 어두웠다. 매점 앞은 사람이 많았고, 둘은 줄을 서야만 했다. 창밖은 어두웠다. 짐은 수업이 다 끝난 저녁에서야 시간이 났다. 다들 생도복이 아닌 편안한 복장을 하고 있었고, 검은 바지에 하얀 셔츠, 어두운 색의 재킷을 입은 맥코이도 상당히 괜찮아 보였다. 스팍은 차라리 짐이 맥코이랑 데이트를 했으면 좋았겠다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가 생각을 철회했다. 스팍은 최대한 아무런 억양 없이 말을 꺼냈다.
“짐이 행복해 보여.”
맥코이가 코웃음 쳤다.
“진심이야, 스팍?”
맥코이는 반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반쯤은 안타깝다는 듯 스팍을 쳐다보았다. 누군가 팝콘을 받았는지 줄이 줄어들었다.
“쟤가 누구더러 질투하라고 저러는 게 빤하잖아.”
누구를 말하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스팍은 정말 그런지 확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괜한 노력이 되는 셈이었다. 다른 사람처럼 짐에게 매력을 느끼고 반해 있는 게 분명할 수발에게도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스팍은 대답하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맥코이가 자신을 놀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맥코이가 한 말은 거기까지였다. 둘은 줄이 전부 줄어들 때까지 기다렸고, 맥코이는 큰 팝콘과 음료수 두 잔을 사더니 스팍에게 물었다.
“당신은 뭐 원하는 거 없어?”
짐을 원해. 본능적으로 떠오른 대답이었지만 한심한 대답이었다.
“없어.”
스팍은 맥코이와 함께 팝콘과 음료를 들고 극장 안으로 돌아왔고, 맥코이는 복도에 들어선 스팍을 지나쳐 안으로 향했다. 스팍은 또 다시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짐이 극장 안에서 수발과 입맞춤을, 아니, 성관계를 하고 있었다. 어둡고, 맨 뒤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구석 자리라 거의 보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공공장소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수발이 그렇게 바람직한 벌칸인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맥코이가 다시 돌아와 스팍을 끌고 자리로 돌아와서는 작게 꾸짖었다.
“너희 둘, 떨어져.”
짐이 몸을 떼며 민망한 듯 우물거렸다.
“미안, 고마워.”
짐은 받아든 음료수를 수발과의 사이에 놓인 컵 홀더에 두었다. 팝콘은 맥코이가 들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짐은 상당한 양을 가져다 먹었다.
스팍은 스크린 속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멍하니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생각했다. 중간에 맥코이가 몸을 기울여 귀에 대고 소곤댔다.
“그냥 빌어먹을 영화에나 집중해.”
그래서 스팍은… 의사의 말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적어도 마지막 20분은 그 말이 도움이 됐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돌아온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 – –
스팍이 파이크 제독과 또 다시 미팅을 한 후 돌아와 보니 컴퓨터에 커크 제독의 통신 기록이 남아 있었다. 아이오와에서 저녁을 먹자고 또 초대하려는 모양이었다. 짐도 불렀겠지만. 주머니 속 개인 통신기가 울리는 소리에 스팍은 보지도 않고 꺼내 받았다.
“네.”
“아, 엄마 초대 받았어?”
짐의 질문에 스팍이 멍하니 대답했다.
“응.”
“그럼 내가 본부로 갈게. 어디서 볼까?”
스팍의 의견을 묻는 게 아니었다. 짐은 당연히 스팍도 간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누가 봐도 당연히 가야 했다. 제독님을 다시 보면 반가울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다시 짐과 함께 그 집에서, 짐이 제독님께 새 남자친구 얘기를 하는 걸 들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건… 스팍이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가끔 두 사람이 착각하는 것 같아도, 스팍은 커크 일가가 아니었다. 가족끼리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빠져도 괜찮았다.
“스팍? 듣고 있어?”
“나는… 여기서 할 일이 있어.”
당장 급한 일은 없어도 항상 할 일은 있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못 갈 것 같아.”
어쨌든 현재 스팍을 힘들게 하는 일들을 떠올리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짐이 풀죽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정말… 정말 안 돼? 한두 시간도 안 되는 거야? 엄마가 실망할 텐데…”
“나중에 정중하게 사과할게.”
짐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럼 본즈라도 데려가야겠네. 엄마는 분명 세 사람 몫을 준비했을 테니까. 그럼… 그럼 끊을게, 스팍.”
“장수와 번영을, 짐.”
“그거 하지 마.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기분이 어떤지 알면서. 완전히 헤어지는 것 같단 말이야.”
“미안해.”
짐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괜찮아. 나중에 봐.”
짐이 통신을 끝냈고, 스팍은 작은 아파트에 홀로 남았다.
– – –
클링온이 무기를 발사하자 짐이 소리쳤다.
“본즈, 본즈, 본즈!”
그 목소리에 스팍은 아이오와에서 소파에 앉아 짐과 함께 비디오 게임을 했던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렸다.
“모든 페이저가 동작하지 않습니다, 함장님!”
맥코이가 당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두 사람이 시나리오에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어뢰를 맞자 가상 함교의 모든 조명이 꺼졌고, 캄캄한 어둠 속에 잠긴 선원들을 비추는 건 천장의 조명 하나뿐이었다. 창 반대편에서 스팍은 짐이 끙 하는 소리를 내며 모형 함장 의자에 털썩 앉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훈련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짐은 상당히 편안해 보였다.
짐이 선원 역할을 하던 다른 사람들을 남겨두고 슬그머니 문으로 향하자 맥코이가 짐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고바야시 마루 훈련이잖아, 짐. 원래 다들 실패하는 훈련이야.”
이미 옆문을 통해 나와 있었던 스팍이 두 사람을 복도에서 불러 세웠다.
“그 말은 맞아, 짐.”
“당신이 내 말에 동의하니까 정말 이상한데.”
스팍이 조용히 할 말이 있다는 뜻을 전하려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놀랍게도 맥코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짐의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했다.
“나중에 보자, 인마.”
그러고는 손을 흔들며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짐이 여전히 풀이 죽은 모습으로 스팍에게 어깨를 으쓱했다. 짐의 밝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표정을 보는 건 어색했다. 짐이 웅얼거렸다.
“그게… 꼭 그래서 우울한 건 아니야.”
스팍이 눈썹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래?”
“수발이랑 헤어졌거든.”
그러더니 짐이 스팍을 조심스럽게 쳐다보았고, 스팍은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렇다니 마음이 아프네.”
“마음이 아프다고?”
스팍이 입을 앙다물었다.
“인간들이 위로할 때 하는 표현이잖아.”
사실 오랜만에 만족스럽다고 해야 할 정도였지만,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짐은 입구의 열린 문으로 햇살이 비추고 생도들이 스쳐가는 복도에서 한동안 스팍을 쳐다보았다. 짐은 청회색 임시 제복을 입고 있었고, 스팍은 회색 교관복을 입고 있었다.
짐의 말은 갑작스러웠다.
“나랑 사귀자.”
스팍이 얼굴을 찌푸렸다. 다시 속이 욱신거렸다. 어쩌면 수발과의 소식을 들어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게 행복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짐이 고개를 저으며 실망한 듯 한숨을 쉬더니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짐이 사람들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스팍은 짐의 등을 쳐다보았다. 지금쯤이면 스팍에 대한 관심을 끊을 때도 됐는데, 아직 아닌 모양이었다. 짐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시간이 더 있었다고 해도 스팍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 – –
스팍이 합성기에 칩을 집어넣으려는데 콘솔이 울렸다. 칩을 카운터에 내려놓고 방으로 향하니, 짐의 웃는 얼굴 사진이 깜박이고 있었다.
“나 드디어 오늘 저녁에 시간 비어! 나 보고 싶지 않았어?”
둘이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것도 벌써 몇 주 전의 일이었다. 그래서 스팍의 대답도 쉬웠다.
“응.”
짐이 웃었다.
“나도. 본즈랑 같이 술 한 잔 하러 갈 건데, 올래?”
스팍 기준에 술집은 즐거운 저녁 식사를 하기 좋은 장소가 아니었지만 기회를 거절하기에는 너무 오랜만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배도 고팠다. 그래서 스팍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잠시 후 그쪽 건물 로비에서 만나. 알았지?”
그리고 화면이 꺼졌다.
스팍이 자세를 바로했다. 두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의 거리를 감안했을 때, 뭘 해 볼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음식을 먹으러 외출하는데 음식을 만드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기다리는 짧은 시간을 다른 식으로 활용해야 했다.
슬쩍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본 스팍은 좀 더 보기 좋은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했다. 맥코이 앞에서 짐을 민망하게 할 순 없었다. 스팍은 옷장에서 옷을 고르다 짐이 마지막으로 자고 갔을 때 두고 간 인조 가죽 재킷이 걸려 있는 걸 발견했다. 돌려 줘야 할 옷이었다.
그러나 스팍은 지난 번 짐과 함께 쇼핑하러 나갔을 때 짐이 사줬던 하얀 긴소매 버튼 업 셔츠를 꺼냈다. 스팍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디자인이었지만, 짐은 스팍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스팍은 버튼을 목 끝까지 잠그고, 소매도 단정히 말아 내리고 욕실 거울로 한번 모습을 확인한 다음 계단을 내려갔다. 로비에서 소파를 찾아 앉아서 약 7분 정도 기다리니 짐과 맥코이가 스팍은 이해할 수 없는 농담 끝에 킬킬거리며 나타났다. 두 사람이 도착하자마자 스팍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어색하게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짐의 수염은 또 자라서, 금빛 솜털이 부슬부슬할 정도였다. 짐이 눈까지 활짝 접으며 웃었다.
“보기 좋다.”
“고마워.”
“너 시력 검사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맥코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짐이 웃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미 한 말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셋은 건물 밖으로 나섰고 스팍은 얼른 짐을 칭찬하지 못한 자신을 내심 꾸짖었다. 하지만 큰 상관은 없을 터였다. 짐은 항상 멋지니까. 짐도 아마 알 것이다.
셋은 시내에서 작고 사람 많은 술집을 찾았고, 서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많아 이리저리 틈새를 찾아 이동했다. 시끄럽고 조명도 어두운 실내에서 짐은 카운터로 향했고, 셋은 높다란 스툴에 자리를 잡았다. 빠르게 둘러보니 벌칸은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고, 스팍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겨우 자리에 앉았는데, 짐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스팍은 이 자리가 불편했다. 모든 게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맥코이가 익숙한 소리를 하려는지 짐의 빈자리 쪽으로 몸을 기울이기에 스팍도 몸을 기울였다.
맥코이의 표정은 상당히 진지했다.
“관둬.”
스팍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이지?”
“알아들었잖아. 알고 지낸 지 오래된 건 아니지만 짐은 정말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을 정도고, 그만큼 소중해. 쟤가 힘들어하는 건 안 보고 싶어.”
스팍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대답했다.
“나도 그래.”
“그러면 쟤 좀 그만 괴롭혀.”
이런 상황은… 사람 많고, 공기마저 끈적거리는 어두운 열린 공간의 바 스툴에 앉아서 해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상황이었다. 스팍이 더욱 미간을 찌푸렸다.
맥코이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쟤가 당신이 없으면 우울해한다는 건 알잖아. 그래, 애가 좀 다른 사람들하고 놀아나기야 하지. 그래도 말이야, 쟤는 그러고 나면 꼭 당신 얘기를 하면서 징징대. 쟤가 당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 그리고 당신도 그래. 당장이라도 애를 벽에 밀어붙일 것 같은 표정을 하면서 왜 사귀지는 않는 건지 나는 평생 가도 모르겠어.”
스팍이 대답하려는데 맥코이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당신이 쟤를 돌봤네 뭐네 하는 소리는 하지도 말아. 짐한테 다 들었는데, 당신이 쟤 아빠도 아니고 지금은 빌어먹을 우주 시대잖아, 젠장. 안도리아인이랑 텔러인이 결혼해서 돼지 같은 얼굴에 반은 시퍼런 애도 낳는 세상이라고. 사랑하면 사랑하는 거지. 애야?”
비유라고 할 수도 없는 비유였다. 하지만 스팍은 뺨을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또 다시 숨을 쉬기 힘들었다. 자신이 없으면 짐이 우울해한다는 말에 죄책감과 황홀함을 동시에 느꼈다. 끔찍한 모순이었다. 이곳에 오지 않아야 했다. 최대한 굳은 표정으로 맥코이를 쳐다봤지만, 모든 껍데기가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마치 투명해진 것 같았다.
절망스러웠다. 도망칠 방법이 없었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짐은 아무 것도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둘 사이에 앉아 프렌치프라이를 주문했다. 세 사람은 온갖 주제로 대화를 나눴고, 맥코이는 종종 아무렇지도 않게 스팍을 쳐다보다가도 태양처럼 뜨거운 시선을 보냈다. 스팍은 과할 정도로 짐을 바라보았다.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었다.
– – –
대단하고 복잡한 절차를 상상했는데 그저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한 게 다였다.
그러자 파이크 제독이 웃으며 스팍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 생각했어. 자네는 훌륭한 일항사가 될 거야.”
“일등 항해사라고 하셨습니까?”
스팍이 되물었다. 그렇게 높은 자리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그 자리를 채울 사람이 필요했는데, 자네의 이력이 제일 좋아. 다른 함선에서 사람을 데려올 수도 있지만, 이미 잘 굴러가는 함선을 방해할 필요는 없잖아? 게다가 자네라면 충분히 신뢰하고 있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제독님.”
자부심, 내지는 성취감을 느꼈다. 유난히 초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모두에게.
이제 됐다.
“다음 달 말이면 엔터프라이즈호도 출항할 수 있을 거야. 그럼 발령을 내지.”
“감사합니다.”
스팍이 또 다시 인사하자 제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만 나가보라는 뜻을 전했다.
몸을 돌려 유리 사무실을 빠져나온 스팍은 조금 빠르다 싶은 걸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이제 됐다.
돌아가 전부 취소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만 남기고 스팍은 계속 걸었다.
– – –
모든 게 클리셰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챕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제 결말에 해당하는 20살과, 에필로그 같은 25세 챕터만 남았다 ㅠㅠㅠㅠㅠ
나도 2014년 11월에 시작한 이걸 2020년까지 하고 있을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