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ative Works Statement:
I hereby give permission for anyone to translate any of my fanfiction works into other languages, provided they give me credit and provide a link back to my profile or the original work. Thank you for the interest; I’m always honoured when people ask to translate my work. 🙂
* 이 소설은 스팍과 커크가 공수교대를 합니다. 리버스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께는 권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번역은 별로 없고 번역 설명(언어덕질)이 훨씬 깁니다…
9장: 스무 살
짐을 싸는 데는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팍의 아파트는 처음 세를 들었을 때만큼이나 깨끗했고, 우주에서 얼마나 있을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계약 연장도 하지 않았다. 스팍은 지구에 남아 있는 시간 대부분을 일을 하며 보냈다.
스팍이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짐을 본 것은 관측실 유리 너머를 통해서였다. 짐은 고바야시 마루 시험장에 사과를 챙겨 들어왔고 불만을 드러내는 맥코이만큼이나 불량한 태도로 시뮬레이션에 임했다. 도중에 관측실 내 모든 컴퓨터가 충돌을 일으켰고 시뮬레이터의 조명이 깜박이며 꺼졌다. 스팍과 팀원들이 시뮬레이션을 온라인 상태로 복구하자 짐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차분하게 전송기로 인질들을 승선시키고 적선에 발포했다. 자세나 목소리로 보아 컴퓨터 간섭을 잘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프로그램을 해킹한 것이다.
스팍은 짐에게 따지고 싶었다. 살짝 짜증이 스쳤다. 스팍은 짐이 속임수나 쓰도록 키우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여러 의미에서 스팍이 진정으로 짐을 키운 건 아니었다. 스팍은 인내심을 발휘해 맥코이가 짐을 끌고 가도록 내버려 두고는 두 사람이 아직 밖에 남아 있는 걸 눈치 채고 팀원들이 떠난 뒤에도 한참이나 관측실에 머물렀다. 어느새 스팍은 목소리를 들으려 문에 기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있는 동안은 떠날 수가 없었으니까.
사실 스팍은 짐의 목소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엔터프라이즈호에서는 짐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그리울 터였다.
스팍은 이미 짐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스팍은 매일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벌칸이라는 종족에 어울리지 않게 멍하니 돌아다녔다. 스팍의 아버지도 기뻐할 성싶지 않았다. 어머니와 통신을 했지만 그런 상황을 말씀드리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문제였다. 게다가 어머니의 조언도 도움이 될 리가 없었다. 결정을 내린 건 스팍이었고 해결할 방법도 없었다. 스팍은 파이크 제독과 여러 위원회 회의에 참여해 평소라면 관심사였을 임무 범위를 파악했다. 당장 스팍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400명 이상이 오르내리는 선원 기록뿐이었다.
스팍도 가끔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보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 생각은 늘 스팍을 조금 불편하게 했고 어차피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스팍은 경력에만 집중할 계획이었다. 경력에만. 스팍은 미리 부친 짐을 뺀 나머지를 담은 가방 하나를 들쳐 메고 최종 브리핑을 들으러 본부로 향했다.
스팍은 로비에서 파이크 제독을 만나 걸음을 맞춰 걸으며 제독이 만나자마자 꺼낸 대화에 몰입했다. 가방을 던져 버리고 도망치고 싶었다. 후회는 벌칸인이 느낄 감정이 아니었다. 생산적이지도 않고 쓸데도 없었다. 하지만 후회란 감정은 마치 불처럼 스팍을 사로잡고 마음을 빼앗았다.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어떻게 처신해야 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이런 식은 아니었다.
콘솔을 통해 짐을 볼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보는 것과는 다를 터였다. 그런 것을 원한 게 아니었다. 스팍은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것을 바랐다. 스팍은 짐에게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았다. 맥코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스팍의 아파트에 들이닥친다고 해도 스팍은 없을 예정이었다. 엔터프라이즈호에 오르면 통신을 할 생각이었지만 그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스팍은 벌칸인의 수치였다.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파이크 제독이 스팍을 돌아보며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설레나?”
스팍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릎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서 말조심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힘들었다.
결국 스팍은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스팍커크 팬픽 번역도 번역이지만, 모처럼 번역 관련 이야기도 덧붙여 본다. 사실 내 블로그 오시는 분들이 팬픽을 영어로 못 읽어서 오시는 건 아닐 것 같고, 이런 이야기를 보고 싶어서 오시진 않을까. 나도 오랜만이라 신이 나서 얘 분량이 더 많아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
There’s a slight spike of annoyance; Spock didn’t raise him to cheat.
살짝 짜증이 스쳤다. 스팍은 짐이 속임수나 쓰도록 키우지 않았으니까.
‘않았으니까’라고 해석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세미콜론(;)이다. 영영 사전을 찾아봤더니 ‘A semicolon is the punctuation mark ; which is used in writing to separate different parts of a sentence or list or to indicate a pause.’ (Collins Dictionary) 라고만 되어 있을 뿐더러 이 설명문 내에서 세미콜론이 쓰이고 있다. 야, 사전이 이래도 되냐. 그래서 학술정보를 검색했더니 마침 한국어에서는 잘 쓰이지 않지만 영어에서는 흔히 쓰여서 한국어 화자들을 곤란하게 하는 문장부호 세 개인 콜론(:), 세미콜론(;), 대시(―)를 다룬 논문을 발견했다. 총 34페이지인데 다 읽기 귀찮은 경우 4페이지만 봐도 된다. 하지만 이 세 문장부호를 이해하기에는 매우 도움이 되는 논문이다. 남의 나라 말 문장부호 이해하자고 논문까지 볼 필요는 없지만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들잖아요? 그리고 진짜 이 논문 괜찮아요. KCI 등재 논문 아니랄까봐 가려운 곳을 싹싹 긁어주는 논문입니다.
2.
Spock holds himself back and lets McCoy tear Jim apart, and he stays in the room long after his team members, aware that McCoy and Jim are lingering outside.
스팍은 인내심을 발휘해 맥코이가 짐을 끌고 가도록 내버려 두고는 두 사람이 아직 밖에 남아 있는 걸 눈치 채고 팀원들이 떠난 뒤에도 한참이나 관측실에 머물렀다.
예전에는 문장이 길면 중간에 뚝뚝 끊어서 옮기기도 했는데, 이제는 문장이 길면 긴 대로 그대로 옮기는 연습을 하고 있다. 《번역의 탄생》(이희재/교양인)에는 ‘한국어 어미로 간결하게 바꿀 수 있는 영어 품사는 뭐니뭐니해도 접속사’라는 말이 나온다. 특히 In Time은 인용한 예문처럼 접속사를 한국어 어미로 바꾸는 연습을 하기 좋은 문장이 많이 나온다. 나도 이번엔 이렇게 옮겼지만 다음엔 또 다른 식으로 옮길지도 모름.
3.
At one point, he leans against the door to listen; he can’t go while they’re still there.
And he misses Jim’s voice.
어느새 스팍은 목소리를 들으려 문에 기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있는 동안은 떠날 수가 없었으니까.
사실 스팍은 짐의 목소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번역을 하다 보면 당연히 안다고 생각했던 단어들을 옮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자주 볼 일도 없는 어려운 단어들은 사전 찾아서 나오는 뜻을 그대로 쓰면 된다. 이런 단어는 외울 필요도 없고 사전을 찾으면 뜻이 많지도 않다. 그런데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는 단어나 표현은 자주 쓰이는 만큼 온갖 미묘한 뉘앙스를 다 담을 수 있어서 사전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다. and도 그렇다. 내 생각에 문장 앞에 등장하는 and는 우리말로 ‘아니, 근데’와 닮았다. ‘아니’로 문장을 시작하는 ‘아니시에이팅’에 뭔가를 부정하려는 의도가 없는 것처럼, 문장 앞 and도 그저 말을 시작하겠다는 의미이지 앞 문장과 연결하겠다는 의도는 거의 없다.
어느새 스팍은 목소리를 들으려 문에 기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있는 동안은 떠날 수가 없었으니까. 아니, 근데 스팍은 짐의 목소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너무 찰떡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만 화자가 스팍이니 아니시에이팅을 할 수 없어서 그 효과를 살려봤다.
4.
And he misses Jim’s voice.
He’ll miss it so much when he’s on the Enterprise.
He misses it already.
사실 스팍은 짐의 목소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엔터프라이즈호에서는 짐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그리울 터였다.
스팍은 이미 짐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쉽지만 옮기기 어려운 문장들 또 나왔다. 일단 짐의 목소리가 그립다는 걸 세 번이나 말하고 있다. 이건 유지해야 하는 요소이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세 번째 문장에 already가 있는 걸 보고 시제를 약간 만져 봤다.
5.
He sends a communication to his mother, but he doesn’t tell her of the situation; this is his burden.
어머니와 통신을 했지만 그런 상황을 말씀드리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문제였다.
이번엔 세미콜론을 또 다르게 옮겨 봤다. 문장 부호를 간과할 때가 많은데 궁리하기 시작하면 이것만큼 꿀잼 콘텐츠가 없다. 세미콜론이 들어간 문장은 짧은 문장일 리가 없는데도 나는 개인적으로 세미콜론 옮기는 거 좋아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6.
He’s made his decision; his hands are tied.
결정을 내린 건 스팍이었고 해결할 방법도 없었다.
가장 간단한 세미콜론 해석은 쉼표나 마침표로 옮기는 거다. 여기에서는 쉼표로 이해하고 옮겼다.
7.
For now, all he can see are the crew logs—a fluctuating list of over four hundred people that Spock doesn’t know and has no desire to know.
당장 스팍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400명 이상이 오르내리는 선원 기록뿐이었다.
이번엔 줄표(대시) 등장!!! 그런데 세미콜론과 달리 줄표는 한국어의 쉼표로 대체가 가능한 용법이 대부분이라 영 재미가 없다. 한국어 어문 규범의 쉼표 설명을 보면 실제로 줄표로 대체할 수 있는(반대로 말해 줄표를 쉼표로 대체할 수 있는) 예시가 나온다. 영어에서는 쉼표가 워낙 자주 쓰이기 때문에 줄표를 써서 극적인 효과를 내지만, 한국어는 영어만큼 쉼표를 쓰지 않기 때문에 줄표 대신 쉼표 써도 된다. 그래서 나는 줄표를 거의 안 살리고 없애버리는 편이다. 영어에 쉼표 있다고 쉼표 그대로 살리는 것도 싫어하는데 한국어의 쉼표로 대체 가능한 줄표를 살릴 리가 없잖아.
8.
Sometimes he thinks he should move on. Call someone else. Attempt to form a… relationship.
스팍도 가끔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보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고.
should에 move, call, attempt가 다 걸리는데 작가가 의도적으로 문장을 짧게 끊어냈으니 나도 똑같이 끊어냈다. 사실 여기서 까다로울 뻔했던 건 말줄임표였다. 영어와 한국어는 어순이 달라서 말줄임표가 의도하는 효과를 내면서 옮기는 게 어렵거나, 효과커녕 의미만 간신히 살릴 수 있는 경우도 많다. 다행히 이 문장은 아니었지만 말줄임표를 보는 순간 덜컥했다. 이런 거 못 살리면 너무 속상하단 말이야.
9.
He’ll focus on career. On career.
스팍은 경력에만 집중할 계획이었다. 경력에만.
흔히 will은 미래 시제를 나타내는 조동사로만 기억하지만 앞으로 어떠한 행동을 하겠다는 계획, 의지, 의도를 나타낸다는 것을 기억하면 훨씬 자연스럽게 옮길 수 있다.
10.
He never told Jim. He never told McCoy.
스팍은 짐에게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았다. 맥코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어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동일한 짧은 문장 두 개가 반복되었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를 고민해 봤다. 만약 He never told Jim neither McCoy였다면 어땠을까? 그 차이가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He never told Jim neither McCoy였다면 ‘스팍은 짐에게도, 맥코이에게도 언질을 주지 않았다’ 정도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스팍이 말을 전하지 않은 사람이 짐과 맥코이라는 것 외에는 주목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문장을 두 개로 나누면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더욱 강조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작가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건 말을 안 하다 못해 심지어 짐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는 게 아닐까? 그래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짐이 있는 앞 문장에 쏟아내고 맥코이가 나오는 부분을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처리해서 느낌을 살려보았다. 이 번역문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 반영된 것이고 얼마든지 다르게 옮길 수 있다.
11.
They’ll just show up at his apartment one day and he won’t be there.
어느 날 두 사람이 스팍의 아파트에 들이닥친다고 해도 스팍은 없을 예정이었다.
and와 will이 주목 포인트. 설명은 이미 앞에서 다 해서 더 할 게 없다. 《번역의 탄생》(이희재/교양인) 10장에 굉장히 잘 설명되어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책을 봐 주세요. 번역 이론서인데 읽는 재미도 갖추고 있는 정말 좋은 책이에요.
12.
He’s made a terrible mistake.
결국 스팍은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내가 과거형으로 옮기고 있긴 하지만 In Time은 서술에 현재형을 사용한다. 그런 글에서 현재 완료가 쓰였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현재 완료의 여러 의미에 주목했다. 영어를 공부하려고 노력해 본 사람이라면 아마 누구나 알고 있을 ‘Grammar In Use’에서는 현재 완료가 1) (현재 시점에서)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거나, 2)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과거의 사건이거나, 3) 현재까지의 경험을 나타낼 때 쓰이는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셋 다 현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이 설명만으로는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완료는 말 그대로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완료된‘ 일들을 설명한다. 그래서 ‘~해 버렸다(이미 끝나서 되돌릴 수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래서 이 문장은 ‘스팍이 끔찍한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고 옮길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조금 심심하다. 이 문장은 스팍이 엔터프라이즈호 승선을 앞두고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는 모습이 이어지다가 장면이 전환되기 전에 결론처럼 등장한다. 그래서 결국을 넣었고, 결과에 만족한다.
문장마다 설명할 셈이냐. 아니, 근데 오랜만에 하니까 너무 재밌네 ㅠㅠㅠㅠ
그리고 포스팅 오랜만에 하니까 왜 이렇게 힘들어… 워드프레스 편집기 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