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사 둔 것 중 골라 읽는 거라는 김영하 작가의 말대로 이번 연휴에는 사 둔 책을 열심히 읽으려고 했다. 연휴 첫 날은 정말 열심히 읽었다. 다만 그 중에 1920년대를 배경으로 화려한 여탐정이 활약하는 ‘프라이니 피셔 미스터리’ 시리즈가 있었고, 읽다 보니 원작이 몇 권까지 나왔는지 궁금해져서 구글링을 했다가 드라마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드라마가 있다 해도 보기 힘들면 안 봤겠지만(이 대목을 적다가 한나 스웬슨 시리즈도 영화가 있다는 걸 알고 외국 사이트까지 뒤져가며 자막도 없는 걸 부득부득 봤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한 달은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를 하는 바람에…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매력적이긴 했지만 몰입해서 읽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차 세계대전이 시작하기 전의 서양은 내가 상당히 좋아하는 배경이고 주인공인 프라이니 피셔가 돈이 남아 도는 (벼락) 귀족 영애라서 모피, 벨벳, 실크 중 하나는 걸치고 나와 줄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성인인증까지 받아가며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이고, 예쁘다. 새까만 보브 단발에 빨간 입술의 대비가 안 그래도 화려한데 의상도 지지않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작비 때문인지 1시간 남짓한 극 중에서 패션쇼를 하진 않는다.)
탐정일이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답게 성격도 보통이 아니라서 여성은 그저 결혼해서 조신하게 살림이나 하는 게 미덕이라는 시대에 ‘차는 스포츠카지’를 외치며 끌고 다니고, 위험하다면 총 있다며 앞장서고, 수사 도중 멋있는 남자만 보면 유혹해댄다. 이렇게 시대 전복적인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며 당시 시대상(으로 치환된 현대의 문제점)을 대사로, 행동으로 비판하는데 그걸 감상하며 오는 카타르시스도 상당하다.
그런데 이 극의 또 다른 재미는 바로 이런 주인공의 매력에 흔들리면서도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며 자꾸 선을 그으려고 노력하는 로빈슨 형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가 봐도 프라이니에게 기가 눌리게 생겼지만 시즌1 7화에서 범인 체포를 위해 프라이니와 대기하던 도중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긴장하며 자꾸 뒤를 돌아 보다 범인에게 얼굴을 노출 시킬 뻔한 프라이니를 지키기막기 위해 강제 키스를 감행하시는데…

넷플릭스가 캡처 허용을 안 해줘서 유툽을 캡처해 만든 저화질 움짤 (넷플릭스에 가입하면 고화질로 볼 수 있음)
그 전에도 프라이니한테 자꾸 약해지고 휘둘리고 은근히 걱정하는 부분이 보였는데 이 일 이후로 프라이니를 강하게 의식하며 부끄러워 하질 않나, 은근히 질투하질 않나ㅋㅋㅋㅋㅋㅋㅋㅋ 생각해 보면 잭에게 프라이니는 동료도 친구도 아니고 그냥 일하면서 이상하게 자주 만나는 사립탐정이니 수사에 자꾸 끼어들지 말라고 막아야 하는데 걱정되고 부끄럽고 질투나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와중에 프라이니는 대놓고 나 좋아하냐고 유혹하는데 원래 스테디따위 만들지 않는 여자니 좋아한다고 인정해봤자 나만 손해고ㅋㅋㅋㅋㅋㅋㅋㅋ 로빈슨 형사님의 내적갈등을 응원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섹슈얼 텐션 넘치는 연애가 있는가하면 풋풋해서 귀여운 연애도 나온다. 독실한 신자들답게 에로에로는 감히 꿈도 못꾸고 움찔움찔하면서 손이나 겨우 잡고, 큰 맘 먹으면 뽀뽀나 하며 연애하는 도로시와 휴를 보면 아이고 이뻐라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작품은 로빈슨 형사가 조사하는 사건 1과 프라이니가 개인적으로 조사하게 되는 사건 2가 얽혀 있음이 밝혀지면서 두 사건을 다 다룬 덕분에 정보력이 앞서는 프라이니가 사건을 해결하는 패턴이다. 덕분에 범인이 뻔하더라도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이 지루하지만은 않다.
또 하나의 패턴이라면 프라이니가 수사 과정에서 만나 유혹해 잠자리를 가진 남자는 아무리 수상해도 어쨌든 사건 1의 범인이 아님(…)
사둔 책을 소화하기는 커녕 (나만 몰랐던) 새로운 덕질거리를 또 발견하고 만 본투비덕후는 오늘도 즐겁구나. 그러니까 이번 추석 연휴는 넷플릭스와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