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팍/커크 영픽 번역] In Time (9장: 스무 살 -1-)

In Time By ye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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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스팍과 커크가 공수교대를 합니다. 리버스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께는 권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번역은 별로 없고 번역 설명(언어덕질)이 훨씬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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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커크 영픽 번역] In Time (8장: 열아홉 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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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커크 영픽 번역] In Time (8장: 열아홉 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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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커크 영픽 번역] In Time (7장: 열여덟 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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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커크 영픽 번역] In Time (7장: 열여덟 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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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커크 영픽 번역] In Time (7장: 열여덟 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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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커크 영픽 번역] In Time (7장: 열여덟 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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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커크 영픽 번역] In Time (6장: 열일곱 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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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은 두 사람이 캠퍼스에 올 때처럼 돌아갈 때도 함께 돌아갈 수 있도록 짐의 캠퍼스 투어 종료 30분 뒤로 근무 시간을 조정할 수 있었다. 사무실을 떠나려는데 비가 쏟아졌고 동료가 우산을 권했지만 받지 않았다. 고작 비였고 어차피 집에 돌아가면 제복을 세탁할 생각이었으니까. 스팍은 아카데미를 향해 걸었고, 비를 가릴 처마가 없으면 가볍게 뛰었다. 짐과 만나기로 한 동쪽 뜰 앞 복도에 도착했을 때 스팍은 누가 봐도 흠뻑 젖어 있었다.

 

스팍이 뜰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짐이 눈에 들어왔다. 짐은 반대쪽 벽에 몸을 기댄 채 건물 벽을 따라 이어지는 인도를 덮는 차양 아래 서 있었다. 그래도 짐 역시 비를 맞은 뒤였다. 흰 셔츠가 들러붙어 얼핏 살이 비치고 머리카락도 물에 젖어 반짝였다. 웬 남자가 뜰을 등진 채 짐에게 과하게 접근해 있었다. 대머리에 염소 같은 수염이 난 남자는 짐보다 적어도 열 살은 많을 터였다. 남자는 붉은 생도복을 입고 있었다.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깝긴 해도 그저 아카데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거라고, 자신이 가는 동안 짐에게 별일이 있겠느냐며 자신을 달랬다.

 

그러나 스팍이 다가가자 남자는 짐의 어깨 위 벽을 양 손으로 짚으며 짐을 몰아 붙였다. 스팍의 민감한 청력이 저질스러운 말투로 늘어지는 남자의 말꼬리를 잡아챘다.

 

“…그리고 내 책상에 엎드린 널 꼼꼼히 검사…”

 

남자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스팍이 두 사람 근처까지 내달려 남자를 세게 밀쳐내자 남자는 비틀거리다 바닥에 나뒹굴며 오른쪽 어깨를 부딪쳤다. 스팍은 즉시 지키듯 짐과 남자 사이에 서서 사납게 내뱉었다.

 

“당장 꺼지지 않으면 미성년자 추행 행위로 고발하지.”

“넌 뭐야?”

 

남자가 주먹을 쥐고 벌떡 일어나며 짜증을 냈다. 건장하긴 했지만 화가 난 벌칸인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넌 뭔데 이딴 식으로 사람을 쳐?”

“내가 의미도 없는 말을 하는 것 같나?”

 

대답하는 스팍의 목소리는 억양 없이 차분했지만, 눈빛은 서슬이 퍼랬다.

 

“즉시 이 자리를 떠나도록. 또한 앞으로 이 소년에게 말을 걸 경우 난 고발에서 그치지 않고 그 즉시 당신을 장교직에서 물러나게 할 거야.”

 

남자는 화를 감추지 못한 채 입을 떡 벌리고 스팍이 방금 내뱉은 협박을 실제 가능케 할 수 있는지 가늠했다. 그러나 남자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스팍의 팔꿈치를 잡아 끄는 손이 있었다. 스팍이 반쯤 짐을 돌아보았다. 스팍은 자신의 말에 짐이 동의할지의 여부는 미처 생각도 하지 않았다. 분명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으리라. 짐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목소리는 단호했다.

 

“스팍, 괜찮아.”

 

이어서 짐은 남자를 향해 윙크했다.

 

“나중에 보자고, 컵케이크.”

 

그 별명에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 분명 짜증이 난 듯 했다. 짐이 스팍의 팔을 반대쪽으로 가볍게 당겼다. 두 사람은 길을 따라 걸으며 자리를 이동했고, 스팍을 걷게 하느라 짐의 팔은 스팍을 숫제 감싸고 있었다.

 

두 사람이 다시 빗속을 걷기 시작했을 때에야 스팍은 조금 정신을 차렸다. 스팍은 짐이 화가 났을 거라고 반쯤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방금 그 남자의 행동은 결코 옳은 행동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짐은 기분이 조금 좋기라도 한 듯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입을 열었다.

 

“이건 그냥 말하는 건데, 어쨌든 난 그 사람이랑 뭘 하진 않았을 거야. 전혀 내 취향이 아니거든. 그리고 내가 강한 남자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해도 네가 있는데 뭘.”

 

짐의 웃음소리에 짐이 닿아 있던 스팍의 팔 어딘가에 갑자기 열이 올랐다.

 

스팍이 뻣뻣하게 물었다.

 

“넌 괜찮아?”

“다 젖어서 그렇지 괜찮아.”

 

스팍은 짐을 돌아보지 않았다. 보지 못할 이유가 차고 넘쳤다. 두 사람은 흠뻑 젖은 채 말 없이 전송기로 돌아왔다.

 


 

짐을 데리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서기 오 분 전, 방에서 스팍의 개인 통신기가 울렸다. 스팍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할 사람은 짐밖에 없기에 스팍은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가 통신기를 받았다. 당연하게도 짐이었다.

 

“난데, 오늘은 늦게까지 일하니까 아직 데리러 오지 마. 알았지?”

“그럼 집에는 언제 올 거야?”

 

스팍은 못마땅했다.

 

“내가 연락할게.”

“그래. 조심해.”

 

평소 통신 종료시에 하는 말은 아니지만 짐이 언제까지 외부에 있을지 알 수 없기에 적절한 말처럼 들렸다.

 

통신기 너머로 짐이 웃었다.

 

“그래. 나도 사랑해.”

 

통신기의 삐 소리가 통신이 끝났음을 알렸다. 스팍이 통신기를 닫고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가 만약을 대비해 다시 뒷주머니에 넣었다. 스팍이 아래층으로 내려가 저녁을 치웠다. 샐러드는 냉장고에 넣고 사모사는 다시 데워야 했다. 정리를 마치고 가장 최근에 개발한 프로그램을 위한 계산에 몰두했다.

 

한 시간이 지나자 스팍은 슬슬 걱정이 됐다.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아래층으로 향했다. 짐에게 연락이 오면 즉시 출발할 수 있도록 차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지나친 것도 같았다. 그래서 스팍은 거실로 걸어가 짐이 주중에 흐트러뜨리고 마는 물건들을 정리했다. 이를 테면 소파 위에 걸린 그림이나 소파 뒷벽 선반에 놓인 책 같은 것들을. 소파를 원래 자리로 돌려놓고 있는데 밖에서 엔진 소리가 들려 왔다. 멀어지는 엔진 소리가 아니라는 게 특이했다. 엔진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이어서 현관문이 열리고 짐이 큰 소리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스팍!”

 

스팍이 거실에서 나와 현관으로 향하니 가방을 바닥에 던지며 손짓하는 짐이 보였다.

 

“나와!”

 

못마땅하지만 조금은 궁금해진 스팍은 짐의 말대로 짐을 따라 문 밖을 나섰다.

 

계단 앞에 호버크루저가 세워져 있었다. 스팍이 혼란해하며 짐을 바라보자 짐이 신이 나서 설명했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샀어. 멋있지? 내가 여기까지 운전해서 왔어. 죽이지. 좋아 미치겠어.”

 

말을 마친 짐은 스팍이 볼 때 여자 앞에서나 보여주던 ‘강아지 눈’을 하고 호버크루저를 바라보았다.

 

스팍이 얼핏 봐도 괜찮은 호버크루저는 아니었다. 분명 구형 모델이었고 사용감도 있는 데다 드문드문 수리한 흔적도 보였다. 하지만 자동차에 비하면 매끈하고 반짝이는 데다 초현대적이었다. 게다가 짐은 늘 탈것에 관심을 보였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불안하기도 했다. 그 성능에 상관없이 탈것은 위험하고 짐이 조금 난폭하게 운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럴 만한 나이도 됐고 면허증도 있으니 원칙적으로 스팍이 말릴 수도 없었다. 어차피 말리기에는 짐이 너무 행복해하기도 했다.

 

“내가 시내까지 태워다 줘도 돼? 제발.”

“왜?”

 

짐의 말에 스팍이 되물었다. 스팍은 시내에 갈 일이 없었다.

 

“이유가 뭐든. 그냥 운전하고 싶어.”

“집까지 운전해서 왔잖아.” “ 태운 채로 운전하고 싶다고.”

 

스팍이 그 기분을 이해한 건 아니지만 짐의 표정을 통해 짐에게는 참 중요하다는 게 전해졌다. 그래서 스팍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호버크루저가 1인승으로 보이긴 했다.

 

짐이 활짝 웃더니 즉시 호버크루저에 올라탔다. 짐이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다.

 

“뒤에 타서 날 잡아.”

“다른 사람을 태워도 되는 거야?”

“응. 2인승이야. 타.”

 

짐이 몸을 숙여 높게 솟은 뒷자리에 더 넓게 공간을 만들었다. 자신이 아닌 짐의 안전을 염려하며 스팍이 짐의 말대로 높이 솟은 뒷자리에 앉았다. 등받이가 없어 어색해 하는데 짐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날 안 잡으면 굴러 떨어질걸.”

 

스팍이 조심스레 짐의 어깨에 손을 얹자 짐이 웃었다.

 

“아니, 허리를 감으라고. 꽉 잡아. 놓치지 않게.”

 

그래서 스팍은 짐의 팔 밑으로 팔을 넣어 짐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짐의 어깨에 뺨을 대자 가슴팍에 닿는 짐의 검은 인조 가죽 재킷이 따뜻했다. 허벅지 안쪽에 짐의 다리가 닿고, 사타구니가 짐의 궁둥이에 닿았다. 보호자의 자리로 적합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짐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짐이 호버크루저의 시동을 걸자 바람이 바스락거리며 먼지를 일으키고 스팍의 셔츠 밑단이 펄럭였다. 두 사람은 땅에서 몇 센티미터쯤 떠올랐다. 짐이 빠른 속도로 급히 출발하자 스팍이 짐을 꼭 껴안았다.

 


 

“일어나. 일어나, 스팍.”

 

스팍이 몽롱한 정신으로 꿈에서 깨어나며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몸을 굳혔다. 자신이 소파 위라는 것을 깨닫는 데 잠깐 시간이 걸렸다. 스팍은 짐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짐은 현재 청바지에 꼭 끼는 셔츠를 입은 채 어둠 속에서 자신을 향해 몸을 굽히고 있었다.

 

단순히 굽힌 게 아니었다.

 

짐은 스팍 위로 올라와 엉덩이로 스팍의 허리부터 사타구니를 깔고 앉아 있었다. 스팍이 상황을 보려 몸을 옆으로 틀어 누우며 팔꿈치를 세워 몸을 일으켰다.

 

“짐…”

 

스팍의 말은 짐의 단호하지만 망설이는 입술에 가로막혔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스팍은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짐의 입술은 부드럽고 따스했다. 스팍의 열린 입술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짐의 혀에서는 술 맛이 났다. 짐이 고개를 꺾자 둘의 코가 부딪쳤다. 짐의 입술이 스팍의 입술을 문대고, 짐의 혀가 스팍의 혀를 지긋이 눌렀다. 촉촉하고 술맛이 나는 혀였다. 스팍은 자신을 누르는 짐의 구석구석을 선명하게 느꼈다.

 

.

 

스팍이 갑작스레 짐을 밀쳐냈지만 짐은 여전히 스팍 위에 올라탄 채로 고개만 몇 센티미터 들어 올렸다. 스팍의 손이 짐의 가슴팍에 닿아 있었다. 짐의 거친 호흡을 느낄 수 있었다. 스팍 자신의 맥박도 너무 빨랐다. 짐의 동공은 활짝 열려 있었고 입술은 붉었다. 짐이 술에 취해 웅얼거렸다.

 

“넌 너무 섹시해.”

 

스팍은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모든 말이 폐에서, 뇌에서 빨려 나갔다. 몸 안에서 폭탄이 터진 것처럼 내장이 뒤틀리고 심장이 조이고 뇌는 과부하로 합선을 일으켰다. 스팍이 짐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스팍은 미치도록 짐을 원한다는 끔찍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잘못된 감정인지 알고 있었다. 스스로가 역겨웠다. 짐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낮고 작은 목소리였다.

 

“처음부터 널 선택한 건 그래서였나 봐. 본부에 갔을 때 엄마가 나한테 어떤 보호자를 원하느냐고 묻는데 네가 그 층을 가로지르는 걸 보고 널 가리켰어. 널 곁에 둬야 한다는 건 알았다… 고 해야 하나.”

 

아침이면 짐은 이 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기억할 리가 없다. 당황스럽고 이상하긴 하지만 짐은 착각하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모든 게 망가질 것이다. 스팍은 자신의 세상 전부가 뒤집혀 버린 뒤에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해야 할 것이다. 이건 너무했다. 스팍이 입을 열었다.

 

“착각이야.”

 

“아니”

 

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 여자애랑 데이트를 했는데… 나도 모르겠어. 그냥 여기로 와야 했어.”

 

짐이 또 다시 입을 맞추려 했다. 스팍이 팔꿈치로 막자 짐이 칭얼댔다.

 

“제발. 널 원해… 너도 날 원하는 거 알아…”

 

“이건 부적절한 행동이야.”

 

스팍의 목소리에 화가 실리려 했다.

 

“넌 아직 나이도 어리고 난 네 보호자야.”

“상관없어. 상관없다고. 난 술에 취했고 흥분했으니까…”

 

끔찍한 이유였다. 그게 사실이었다. 스팍의 심장이 뚝 떨어졌다. 아니, 이미 심장은 진작 저 아래 있었는지도 모른다. 스팍은 이런 게 질색이었다. 질색이라는 표현은 스팍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아니었다. 짐이 또 다시 입을 맞추려 하자 스팍이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짐. 안 돼.”

 

짐이 멈췄다. 그 사실에 스팍은 놀랐다. 헤아릴 수 없이 고맙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한 감정이 동시에 몰려왔다. 짐이 스팍의 위로 쓰러지며 스팍을 온전히 덮었다. 얼굴은 스팍의 뒤통수에, 가슴은 스팍의 어깨에, 그리고 곧 축 처졌다.

 

일순 스팍은 몸을 굳혔다. 곧 짐이 부드럽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취한 채 잠들면 짐은 코를 골곤 했다. 왜 짐이 취하기만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짐은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스팍은 그런 게 질색이었다. 이런 게 너무 싫었다. 스팍은 짐을 사랑했다. 이제… 이제 적어도 스팍의 어떤 부분이 그런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스팍은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스팍은 자리에 앉아 두 팔로 짐을 들어 침대로 옮겼다.

 

자고 있는 짐은 아름다웠다. 순수해 보이기도 했다.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 깨어 있을 때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스팍은 짐을 침대에 잘 뉘이고 신발을 벗긴 뒤 이불을 덮어 주었다. 스팍은 한참을 문가에서 서성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날 밤 스팍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 = =

본격 삽질 시작!!!!! 아아아 ㅠㅠㅠㅠ 백 번 읽어도 좋아 ㅠㅠㅠㅠ 보호 본능이 지나쳐서 자기 자신에게서도 짐을 지키려고 하는 스팍… ㅠㅠㅠㅠㅠㅠ 이 두 캐릭터 진짜 너무 좋은 거 아니니? ㅠㅠㅠㅠ

[스팍/커크 영픽 번역] So Here We Are (5장: 스팍의 이야기 -1-)

예상대로 캠퍼스에는 소문이 파다했다.

 

짐은 생도들이나 강사들 사이에서 무엇이든 뛰어나고 카리스마 넘치며 사회적인 학생으로 약간 유명했다. 강사들 사이에서는 우수한 학생으로 통했다. 어린 생도들 사이에서는 다가가기 쉬운 상급생으로,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는 모두의 친구이면서 잘생긴 외모 덕에 ‘심장 파괴자’로도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현재 짐과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친구가 친구 이상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어째서 그런 소문이 퍼졌는지 스팍은 알지도 못했고 의아해하지도 않았다. 실제 증거가 있어서라기보다 인간관계 속에서 흥밋거리를 만들어내려는 가벼운 말들이 그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문이 났다고? 무슨 소문? 어쩌다?”

 

짐은 대수롭지 않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내색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스팍은 뒷짐을 지고 짐과 나란히 걸었다.

 

“소문이 난 지는 벌써 몇 달이나 됐어, 짐. 다른 사람은 다 알아. 멍청한 너희 둘만 여태 몰랐지.”

 

짐과 나란히 걷던 또 다른 인물인 맥코이가 눈을 부라렸다. 짐은 스팍에게 둘의 변한 관계를 맥코이가 눈치 챘다고 전달해 두었다. 맥코이의 눈치가 귀신같다는 걸 짐이 간과한 덕분이었다. 어쨌든 짐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맥코이였다. 둘은 이들의 관계가 업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오해를 막기 위해 맥코이 외의 사람에게는 둘의 관계를 알리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스팍이 그런 사적인 문제를 드러내기 꺼린다는 건 두말 하면 잔소리였다.

 

스팍이 짐과의 관계를 공개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맥코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당연히 말 안 했지. 말해서 뭐하게?”

 

맥코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으르렁댔다.

 

“뭘 바란 거야? 맨날 둘이 붙어 다니는데, 그럼 소문이 안 나냐?”

 

스팍도 다른 생도들이 그들 곁에서 소곤거리고 흥미로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등 이상하게 행동하는 것을 느끼긴 했다. 하지만 스팍은 그런 행동들이 그저 스타플릿의 영재인 저 유명한 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를 보고 하는 행동일 거라고 생각해 왔다. 지금 이 순간 신체검사를 위해 체육관으로 향하는 그들을 보고 사람들이 실제로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지 알고 나니 전보다 더욱 편치 않았다.

 

짐은 걷는 내내 물병을 공중에 던지고 받았고, 맥코이는 평소처럼 현 상황이 얼마나 마음에 안 드는지 떠들었다. 짐은 맥코이를 달래기 위해 “음”이나 “어” 등의 단답형 질문으로 대답하며 가끔 스팍을 향해 지친 듯한 미소를 지었고, 스팍은 그저 눈썹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일 단계 신체검사는 세 가지 종목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는 장애물 코스를 최대한 빠르고 효과적으로 통과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10킬로미터 달리기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백병전이었다. 다음 날 진행되는 이 단계 신체검사는 생도 각자가 개인의 성과를 확인하게 되어 있었다.

 

짐은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지만 특히 신체적 능력은 그가 유독 뛰어난 부분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을 더욱 몰아붙이고 경쟁하며 육탄전에서 승리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그 속에 무척이나 인간적이고 어쩌면 인간 본연의 즐거움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고 보았다.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스팍은 일 단계 신체검사가 조금 시시하다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차였다.

 

그래도 참여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생도들과 함께 나란히 서서 그들과 똑같이 운동복으로 지급된 회색 티셔츠와 운동복 바지를 입고 장애물 코스 앞에 섰다. (그런 것을 보면 지구의 군사 훈련이라는 것은 거의 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스팍은 지휘관의 지시를 건성으로 들으며 굳은 자세로 선 다른 생도들을 따라했다.

 

곁에 선 짐에게서 강렬할 정도의 흥분감이 느껴졌다. 출발을 앞둔 그로서는 당연히 예상되는 반응이었다.

 

“그럼 반대쪽에서 봐.”

 

짐은 벌칸인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짐이 장난꾸러기처럼 씩 웃었다. 스팍은 볼에 피어오르는 열기를 감추려 애썼다.

 

무엇이든 경쟁하려고 드는 짐은 매력적인 데가 있다고 생각했다.

 

출발 명령이 떨어지자 스팍도 신체검사에 온전히 집중했다. 해야 할 일을 앞둔 그는 늘 그랬다. 스팍은 주변은 신경 쓰지 않고 눈앞에 나타나는 장애물을 통과해 나갔다. 벽도 손쉽게 넘었고 (당연히 코스 진행을 방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이 찬 커다란 해자도 마치 가젤과 같은 스피드로 남들보다 우아하게 뛰어넘었다.

 

(하지만 맥코이는 뒤에 처져 있었다. 진흙탕에 빠진 신발은 발에서 벗겨져 나갔다. “빌어먹을, 내가 이러려고 들어온 게 아니라고.”)

 

예상대로 결승점에 제일 먼저 도착한 것은 진흙을 뒤집어쓰긴 했어도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스팍이었다.

 

아니,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에 흠뻑 젖고 진흙 범벅이 된 짐이 승기에 찬 얼굴로 스팍을 향해 씩 웃었다. 하얀 이빨과 파란 눈동자는 얼굴을 뒤덮은 시커먼 진흙과 대비되었다. 짐은 가쁜 숨을 쉬며 가슴팍에 팔짱을 꼈다.

 

스팍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스팍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짐이 웃었다.

 

“조금 늦은 것 같다, 스팍?”

“너보다는 조금 늦은 것 같군.”

 

스팍이 고개를 돌려 거의 도착한 생도들을 쳐다보았다.

 

“다음 코스로 가 볼까. 거기서도 내가 이겨줄게.”

 

짐이 웃더니 다음 코스로 흥겹게 폴짝거리며 뛰어갔다.

 

스팍은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낯선 감각에 사로잡혔지만 가까스로 미소를 참아냈다.

 

“그건 두고 봐야지.”

 

짐이 강렬한 푸른 눈을 반짝이며 스팍을 쳐다보더니 짓궂게 웃었다. 스팍에게 자각이 있었더라면 둘이 서로 애정 놀음을 하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짐은 마지못해 끙끙대며 벽을 넘는 맥코이를 쳐다보았다. 짐이 웃다가 기운이 빠지는 듯 고개를 뒤로 제꼈다.

 

“기다려줘야 할 거야. 쟤를 저러고 진흙탕에 둔 채로 먼저 가면 죽이려고 들 걸.”

 

말을 마치며 짐은 운동 능력이 부족한 맥코이가 재미있는 듯 또 다시 아이처럼 웃었다.

 

스팍은 맥코이가 짐의 건강에 보이는 관심과 현재 진흙에 뒤덮인 짐의 상태를 고려해 봤다. 맥코이는 이런 상황에서 결론을 속단하는 경향이 있었다. 저렇게 진흙에 뒤덮인 짐을 보면 파상풍에 걸릴 거라고 고래고래 화를 낼 것이 빤했다. 맥코이를 기다리는 게 논리적인 선택이 아닐 수 있었다.

 

“짐, 지적할 필요는 없겠지만 넌 정말 놀라울 정도로 더러워.”

 

짐은 눈에 익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짐이 스팍을 보더니 눈썹을 씰룩거렸다.

 

“어, 아마 상상 이상일 거야, 스팍.”

 

스팍이 그 말에 눈썹을 들어 올렸다.

 

“오해한 것 같은데…”

 

짐이 입술을 깨물더니 다음 코스로 뛰어갔다.

 

“나도 알아, 스팍. 안다고.”

 

어쩔 수 없이 스팍도 짐의 뒤를 쫓았다.

 

두 번째 코스에서 둘은 자연스레 남들을 훨씬 앞질러 달렸다. 스팍은 더 빨리 달릴 수 있으면서도 짐과 나란히 달렸다. 둘은 벌칸인인 스팍으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찬바람이 부는 해변을 나란히 달렸다.

 

해변에는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거의 아무도 없었다.

 

“굳이 나한테 발맞출 필요 없어.”

 

짐은 중간 중간 숨을 내쉬며 말했다. 짐이 뛰는 속도와 거센 바람에 모래 빛깔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나도 알아. 하지만 지구력 테스트에선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논리적이잖아.”

 

짐이 꾸준히 달리고 있다는 모욕적 언사에 씩 웃었다. 스팍은 그런 말이 짐을 더욱 몰아붙일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짐의 볼이 달아올랐다. 스팍은 짐이 지금처럼 얼굴을 붉힌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이 짐에게 입을 맞추고 짐의 긴장이 풀렸을 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짐은 항상 스팍을 놀라게 하는 방법을 아는 듯 했다. 마치 스팍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듯 짐이 헐떡이며 말했다.

 

“너 얼굴이 녹색빛을 띠는 걸.”

“내 피는 녹색이야, 짐.”

“알아. 그냥 보기 좋다고.”

 

짐이 일부러 속도를 높인 스팍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더 빨리 달리며 대답했다.

 

“네가 녹색빛을 띠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 우린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지만.”

 

스팍은 갑자기 짐이 자신의 손에 입을 맞췄던 그날 밤 기억이 떠올라 헉하고 숨을 내쉬었다. 스팍은 마치 지쳐가기라도 하는 듯 거친 숨을 몇 번 더 내쉬며 자신의 행동을 감추었다.

 

짐은 그 접촉이 얼마나 은밀한 행위인지 모를 것이다.

 

짐이 미소 지었다.

 

“지쳤어?”

“아니.”

 

스팍은 짐의 경쟁심을 자극할 것을 알면서도 솔직히 대답했다.

 

“그럼 마지막 1킬로미터도 힘내자고.”

 

짐이 헉헉거리면서 급격히 속도를 높였다. 인간치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실력을 보여줘.”

 

하지만 스팍은 벌칸 혼혈이었다. 스팍이 빠르게 튀어나갔다. 둘은 단거리 달리기를 하듯 내달렸다. 짐은 간격을 벌리는 스팍을 보며 활짝 웃었다.

 

“자랑하는 거야?”

 

짐이 소리쳤다.

 

스팍이 속도를 늦추고 정말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짐을 돌아보았다.

 

“보여 달라고 했잖아.”

 

짐이 헉헉대며 웃었다. 티셔츠는 땀과 바닷물에 젖어 버렸고 가슴은 빠르게 오르락내리락 했다.

 

“넌 항상 뽐내는 경향이 있어.”

“그럴 의도는 없었어.”

 

스팍도 이제는 호흡이 조금 가빴다. 짐의 곁을 떠나지 않아도 충분히 운동에 힘쓸 수 있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

 

교관이 전력질주를 하며 들어오는 둘의 시간을 쟀다. 스팍은 쉽게 속도를 줄이며 걸었지만 짐은 모래밭에 벌러덩 드러누워 헐떡였다.

 

“장시간 운동한 뒤에도 계속 움직여 주는 게 좋아.”

 

스팍은 천사 모양을 만들 듯 팔을 휘적거리는 짐을 내려다보았다. 숨이 가빠 말하기 힘든 짐은 손사래로 대답을 대신했다.

 

짐이 겨우 몸을 일으켰다. 다른 생도들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스팍은 형체를 키우며 결승선으로 다가오는 생도들을 바라보았다. 스팍이 짐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당연히 곁에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짐은 이미 바다를 향해 이동한 상태였다. 짐은 이미 바닷물로 축축해진 운동복을 무의미하게 걷어 올린 채였다. 짐은 마치 도시와 바다를 품에 안 듯 고개를 재끼고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아직도 가쁜 숨을 내쉬느라 어깨가 들썩거렸다. 짐의 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짐은 열기를 식히려 몸을 굽혀 바닷물을 떠 얼굴에 끼얹었다.

 

스팍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

 


 

If Spock knew better, he’d say they were flirting.
스팍에게 자각이 있었더라면 둘이 서로 애정 놀음을 하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처음에 짐이 스팍에게 추파를 던진다고 해 놨는데 옮겨놓은 걸 읽다가 스팍이 자각하는 것과 짐이 추파를 던지는 게 무슨 관계인가 싶어서 원문을 보니 주어가 they였다. 역시… 번역문이 논리적으로 이상하면 오역이라니까;;

내 감각으로 flirt는 우리말의 ‘추파를 던지다’보다 일상적인 느낌인데 ‘추파를 던지다’보다 일상적인 표현을 잘 모르겠다. ‘꽁냥거리다’라는 표현이 떠올랐지만, 이런 표현은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말이기도 하지만 스팍이 쓸 리도 없는 표현이고, ‘연애질’이라는 표현 역시 본즈라면 모를까 스팍이 쓸 법한 표현은 아니다. 고민하며 여러 사전을 뒤지다 옥스포드 사전의 어원 설명에 ‘원래는 까불거리는 행동을 나타냈지만 나중에는 애정을 담은 장난기 섞인 행위를 가리킴’이라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애정 놀음’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제일 좋아하는 챕터라 중간에 끊고 싶진 않았지만, 다 옮기길 기다리다간 언제 올릴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끊었다. 일단 음양사를 끊어야…;;;

 

(이전편 링크)

 

[스팍/커크 영픽 번역] There is a Reason (1장 느릿한 시작)

 

화가 안 난다니 어떤 기분이야? 마음이 안 아프다니 어떤 기분이냐고. 널 낳아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복수하고 싶지도 않아?

 

씁쓸한 말이었다. 뭔가 반응해주길 바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스팍에게 악을 쓰긴 했지만 그 악다구니는 스스로에게 고통스럽게 되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엔터프라이즈호의 함장이 된 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이 청명한 날에 남자는 그 이유를 내려다보았다.

 

위노나 M. 커크

사랑스런 아내이자 어머니

USS 파라거트 일등 항해사

임무 중 사망

 

“엄마”

 

이 순간 남자가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남자는 알았다. 워프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남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음을 알았다.

 

“나는 네 아버지 뒤를 따를 거야, 지미. 우주에서 죽으면 네 아버지랑 늘 함께 있겠지. 막을 생각은 하지도 마.”

 

어머니가 늘 하던 말이었다. 어머니는 소원을 이뤘다. 블랙홀이 한 때 벌칸이었던 행성 근처를 전부 삼켜버렸고, 시신은 한 구도 찾지 못했다. 내세가 있다면 그게 어디든 위노나 커크와 조지 커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남자의 부모님은 순직했다. 우주가 이제 남자의 차례라고 하는 날이 온다면, 남자도 그러길 바랐다.

 

남자는 유리로 된 묘비를 바라보았다. 수백 개는 되는 묘비가 있었다. 스타플릿 사관학교 사령부 건물을 둘러싼 작은 공원은 묘지로 변했다. 수개월 전에 전혀 다른 목적으로 벌칸 채석장에서 가져온 돌로 만든 검붉은 기둥은 작은 언덕 위에 의연히 서 있었다. 한 면에는 벌칸어로 된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북반구에는 봄이 완연했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해가 내리쬐는 묘지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몇몇 아가씨는 나무 옆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다. 남자는 그 모습에 마음이 쓰였다. 지나가다 아무 묘비에 있는 이름을 읽어도 거의 다 남자가 아는 사람일 터였다. 세 줄 너머 다른 급우 두 명 곁에 안치된 명랑한 오리온 아가씨인 게일라와는 몇 번 잠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남자는 경사진 공원을 내려다보았다. 이때까지 남자의 삶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정말 아무런 의미도. 이 모든 사람들 때문에, 벌칸에서 죽은 모든 사람들 때문에 답지 않게도 남자는 우울했다. 이제 현실이 된 사실이 남자를 덮쳤고 조금 두렵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만두지 못했다.

 

“커크?”

 

남자가 돌아보았다. 밝은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우후라가 손으로 해를 가리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우후라”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몸을 돌렸다. 우후라와 달리 남자는 여전히 붉은 교복을 입은 채였다. 우후라의 왼편에는 검은 정복을 입은 스팍 중령이 섰다. 스팍은 뭐라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어두운 눈동자로 커크를 바라보았다. 나라다를 파괴한 뒤로 커크는 스팍의 태도가 변했으면 했지만 굳은 스팍의 어깨를 보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커크가 한 말 때문에 여전히 커크를 목 졸라 죽이려 해도 스팍이 커크 탓을 하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커크는 다시 우후라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목이 메었다.

 

“게일라 때문에 많이 힘들겠다.”

 

우후라는 어두운 표정으로 친구의 이름이 새겨진 반짝거리는 유리 묘비가 있는 언덕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너도 게일라랑 친했잖아. 사실 나 조문 온 거야.”

“나도 그래.”

 

우후라가 다가와 커크 바로 앞에 놓인 묘비를 바라보았다. 묘비를 읽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우후라는 눈을 크게 뜨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어떡해, 힘내.”

 

커크는 엄마의 묘비를 돌아보았다.

 

“그래, 고맙다.”

 

어깨 너머로 본 스팍의 얼굴에 이해했다는 표정이 스쳤다. 미미한 변화였지만 연민이나 어쩌면 공감을 표하기에는 충분했다.

 

“Tushah nash-veh k’du.”

 

커크는 약간 인상을 구겼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당신과 함께 슬퍼하겠습니다.”

 

스팍이 번역해 주었다.

 

“아”

 

커크가 헛기침을 했다. 과하게 정중한 듯 했지만 벌칸인은 감정적인 문제를 그런 식으로 정리하는 모양이었다.

 

“고마워.”

 

스팍이 안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게일라에게도 내 얘기 해 줘.”

 

우후라를 바라보던 커크가 침묵을 깼다. 우후라는 엷게 웃었다.

 

“그럼 중령, 자네도 이만.”

“네, 함장님.”

 

커크는 두 사람과 헤어졌다. 언덕을 내려가는 커크의 구두에 젖은 잔디가 들러붙었다.

 

 

화가 안 난다니 어떤 기분이야? 마음이 안 아프다니 어떤 기분이냐고. 널 낳아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복수하고 싶지도 않아?

 

스팍이 어렸을 때 많은 아이들이 스팍을 괴롭혔다. 그들은 스팍이 가진 약한 인간성을 결점이라고 했다. 스팍이 가진 모든 유전적, 환경적 문제의 원인이 그의 어머니라고 생각했다. 커크, 그러니까 제임스 티베리우스 커크는 그 반대였다. 커크는 스팍이 가진 반쪽짜리 벌칸인을 싫어하는 인간이었다.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벌칸 아이들에게 익숙해져 있던 스팍으로선 만난 지 채 하루도 안 된 커크가 그 짧은 순간에 불러일으킨 반응이 그들을 대할 때와 참으로 비슷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시신도 없는 어머니 무덤 옆에 선 커크를 보면서 스팍은 현재 커크에게 가졌던 적개심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 말들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였을 뿐 스팍을 상처주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나이 든 자신은 말했다. 이제 스팍은 우후라와 언덕을 오르며 그 말들은 커크 자신이 느끼던 고통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씁쓸함이나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깊은 분노를 느끼기는커녕 스팍은 어렴풋이 커크에게 공감하고 있었다.

 

“스팍? 괜찮아요?”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던 스팍은 우후라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물론입니다.”

 

스팍은 잠시 생각했다.

 

“커크 함장님에 대해 얼마나 압니까?”

“잘은 몰라요.”

 

두 사람은 평평하게 다져진 언덕 꼭대기에 도착했다. 벌칸에 나라다가 나타난 뒤 일련의 사건이 일어났던 날짜가 수많은 묘비 한 가운데 새겨졌고 작은 분수가 그 위에 흩뿌려졌다.

 

“내가 알았던 함장님은 그냥 내가 만들어 낸 사람이었나 봐요. 함장님만 관련되면 굉장히 비판적이었거든요.”

 

우후라를 바라보았다. 당당한 여자였다. 우후라는 자신감도 있고 자기 확신에 차 있었다. 우후라도 스팍만큼이나 성공한 사람이었다. 스팍은 우후라가 덮어놓고 비판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우후라가 천천히 멈춰 서자 스팍은 생각을 떨쳐내며 두 사람 앞에 놓인 묘비를 내려다보았다. 스팍은 게일라를 한 번 밖에 만난 적이 없었다.

 

스팍이 알기로 커크의 부정을 도운 이가 게일라였다. 게일라는 학적부에는 기재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그 생도… 함장의 범죄를 증언했다. 다른 생도들이 괴롭히는 와중에도 게일라는 놀랄 만큼 차분했던 오리온 여성이었다. 스팍과 마찬가지로 우후라의 룸메이트인 게일라도 편협하고 비열한 인물들에게 종족을 이유로 괴롭힘 당해서 힘들어 한다고 우후라가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어쩌면, 하고 스팍은 드레스에 풀물이 드는 것도 개의치 않고 잔디에 무릎을 꿇는 우후라를 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어쩌면 최근 일어난 일들은 ‘인생은 짧다’는 인간의 표현을 설명해 줄지도 모르겠다고, 어쩌면 커크 함장은 첫인상이 전부인 사람은 아닐지 모르겠다고, 자신이 했던 일을 돌아보니 어쩌면 두 사람 다… 용서 받을 여지가 있는 것 같다고 스팍은 생각했다.

 

오늘 밤 스팍은 명상을 할 생각이었다. 그때까지는, 스팍은 친구를 생각하며 숨죽여 우는 우후라 곁에서 아무 말 없이 지키듯 서 있었다.

 

 


수정해 보니 오역이 상당했다. 어쨌든 예전보다 나아졌으면 다행이다. 그만큼 했는데 안 늘어도 문제긴 하지. I’m sorry는 지금도 옮기기 힘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