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팍/커크 영픽 번역] So Here We Are (5장: 스팍의 이야기 -1-)

예상대로 캠퍼스에는 소문이 파다했다.

 

짐은 생도들이나 강사들 사이에서 무엇이든 뛰어나고 카리스마 넘치며 사회적인 학생으로 약간 유명했다. 강사들 사이에서는 우수한 학생으로 통했다. 어린 생도들 사이에서는 다가가기 쉬운 상급생으로,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는 모두의 친구이면서 잘생긴 외모 덕에 ‘심장 파괴자’로도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현재 짐과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친구가 친구 이상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어째서 그런 소문이 퍼졌는지 스팍은 알지도 못했고 의아해하지도 않았다. 실제 증거가 있어서라기보다 인간관계 속에서 흥밋거리를 만들어내려는 가벼운 말들이 그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문이 났다고? 무슨 소문? 어쩌다?”

 

짐은 대수롭지 않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내색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스팍은 뒷짐을 지고 짐과 나란히 걸었다.

 

“소문이 난 지는 벌써 몇 달이나 됐어, 짐. 다른 사람은 다 알아. 멍청한 너희 둘만 여태 몰랐지.”

 

짐과 나란히 걷던 또 다른 인물인 맥코이가 눈을 부라렸다. 짐은 스팍에게 둘의 변한 관계를 맥코이가 눈치 챘다고 전달해 두었다. 맥코이의 눈치가 귀신같다는 걸 짐이 간과한 덕분이었다. 어쨌든 짐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맥코이였다. 둘은 이들의 관계가 업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오해를 막기 위해 맥코이 외의 사람에게는 둘의 관계를 알리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스팍이 그런 사적인 문제를 드러내기 꺼린다는 건 두말 하면 잔소리였다.

 

스팍이 짐과의 관계를 공개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맥코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당연히 말 안 했지. 말해서 뭐하게?”

 

맥코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으르렁댔다.

 

“뭘 바란 거야? 맨날 둘이 붙어 다니는데, 그럼 소문이 안 나냐?”

 

스팍도 다른 생도들이 그들 곁에서 소곤거리고 흥미로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등 이상하게 행동하는 것을 느끼긴 했다. 하지만 스팍은 그런 행동들이 그저 스타플릿의 영재인 저 유명한 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를 보고 하는 행동일 거라고 생각해 왔다. 지금 이 순간 신체검사를 위해 체육관으로 향하는 그들을 보고 사람들이 실제로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지 알고 나니 전보다 더욱 편치 않았다.

 

짐은 걷는 내내 물병을 공중에 던지고 받았고, 맥코이는 평소처럼 현 상황이 얼마나 마음에 안 드는지 떠들었다. 짐은 맥코이를 달래기 위해 “음”이나 “어” 등의 단답형 질문으로 대답하며 가끔 스팍을 향해 지친 듯한 미소를 지었고, 스팍은 그저 눈썹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일 단계 신체검사는 세 가지 종목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는 장애물 코스를 최대한 빠르고 효과적으로 통과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10킬로미터 달리기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백병전이었다. 다음 날 진행되는 이 단계 신체검사는 생도 각자가 개인의 성과를 확인하게 되어 있었다.

 

짐은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지만 특히 신체적 능력은 그가 유독 뛰어난 부분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을 더욱 몰아붙이고 경쟁하며 육탄전에서 승리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그 속에 무척이나 인간적이고 어쩌면 인간 본연의 즐거움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고 보았다.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스팍은 일 단계 신체검사가 조금 시시하다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차였다.

 

그래도 참여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생도들과 함께 나란히 서서 그들과 똑같이 운동복으로 지급된 회색 티셔츠와 운동복 바지를 입고 장애물 코스 앞에 섰다. (그런 것을 보면 지구의 군사 훈련이라는 것은 거의 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스팍은 지휘관의 지시를 건성으로 들으며 굳은 자세로 선 다른 생도들을 따라했다.

 

곁에 선 짐에게서 강렬할 정도의 흥분감이 느껴졌다. 출발을 앞둔 그로서는 당연히 예상되는 반응이었다.

 

“그럼 반대쪽에서 봐.”

 

짐은 벌칸인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짐이 장난꾸러기처럼 씩 웃었다. 스팍은 볼에 피어오르는 열기를 감추려 애썼다.

 

무엇이든 경쟁하려고 드는 짐은 매력적인 데가 있다고 생각했다.

 

출발 명령이 떨어지자 스팍도 신체검사에 온전히 집중했다. 해야 할 일을 앞둔 그는 늘 그랬다. 스팍은 주변은 신경 쓰지 않고 눈앞에 나타나는 장애물을 통과해 나갔다. 벽도 손쉽게 넘었고 (당연히 코스 진행을 방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이 찬 커다란 해자도 마치 가젤과 같은 스피드로 남들보다 우아하게 뛰어넘었다.

 

(하지만 맥코이는 뒤에 처져 있었다. 진흙탕에 빠진 신발은 발에서 벗겨져 나갔다. “빌어먹을, 내가 이러려고 들어온 게 아니라고.”)

 

예상대로 결승점에 제일 먼저 도착한 것은 진흙을 뒤집어쓰긴 했어도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스팍이었다.

 

아니,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에 흠뻑 젖고 진흙 범벅이 된 짐이 승기에 찬 얼굴로 스팍을 향해 씩 웃었다. 하얀 이빨과 파란 눈동자는 얼굴을 뒤덮은 시커먼 진흙과 대비되었다. 짐은 가쁜 숨을 쉬며 가슴팍에 팔짱을 꼈다.

 

스팍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스팍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짐이 웃었다.

 

“조금 늦은 것 같다, 스팍?”

“너보다는 조금 늦은 것 같군.”

 

스팍이 고개를 돌려 거의 도착한 생도들을 쳐다보았다.

 

“다음 코스로 가 볼까. 거기서도 내가 이겨줄게.”

 

짐이 웃더니 다음 코스로 흥겹게 폴짝거리며 뛰어갔다.

 

스팍은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낯선 감각에 사로잡혔지만 가까스로 미소를 참아냈다.

 

“그건 두고 봐야지.”

 

짐이 강렬한 푸른 눈을 반짝이며 스팍을 쳐다보더니 짓궂게 웃었다. 스팍에게 자각이 있었더라면 둘이 서로 애정 놀음을 하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짐은 마지못해 끙끙대며 벽을 넘는 맥코이를 쳐다보았다. 짐이 웃다가 기운이 빠지는 듯 고개를 뒤로 제꼈다.

 

“기다려줘야 할 거야. 쟤를 저러고 진흙탕에 둔 채로 먼저 가면 죽이려고 들 걸.”

 

말을 마치며 짐은 운동 능력이 부족한 맥코이가 재미있는 듯 또 다시 아이처럼 웃었다.

 

스팍은 맥코이가 짐의 건강에 보이는 관심과 현재 진흙에 뒤덮인 짐의 상태를 고려해 봤다. 맥코이는 이런 상황에서 결론을 속단하는 경향이 있었다. 저렇게 진흙에 뒤덮인 짐을 보면 파상풍에 걸릴 거라고 고래고래 화를 낼 것이 빤했다. 맥코이를 기다리는 게 논리적인 선택이 아닐 수 있었다.

 

“짐, 지적할 필요는 없겠지만 넌 정말 놀라울 정도로 더러워.”

 

짐은 눈에 익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짐이 스팍을 보더니 눈썹을 씰룩거렸다.

 

“어, 아마 상상 이상일 거야, 스팍.”

 

스팍이 그 말에 눈썹을 들어 올렸다.

 

“오해한 것 같은데…”

 

짐이 입술을 깨물더니 다음 코스로 뛰어갔다.

 

“나도 알아, 스팍. 안다고.”

 

어쩔 수 없이 스팍도 짐의 뒤를 쫓았다.

 

두 번째 코스에서 둘은 자연스레 남들을 훨씬 앞질러 달렸다. 스팍은 더 빨리 달릴 수 있으면서도 짐과 나란히 달렸다. 둘은 벌칸인인 스팍으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찬바람이 부는 해변을 나란히 달렸다.

 

해변에는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거의 아무도 없었다.

 

“굳이 나한테 발맞출 필요 없어.”

 

짐은 중간 중간 숨을 내쉬며 말했다. 짐이 뛰는 속도와 거센 바람에 모래 빛깔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나도 알아. 하지만 지구력 테스트에선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논리적이잖아.”

 

짐이 꾸준히 달리고 있다는 모욕적 언사에 씩 웃었다. 스팍은 그런 말이 짐을 더욱 몰아붙일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짐의 볼이 달아올랐다. 스팍은 짐이 지금처럼 얼굴을 붉힌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이 짐에게 입을 맞추고 짐의 긴장이 풀렸을 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짐은 항상 스팍을 놀라게 하는 방법을 아는 듯 했다. 마치 스팍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듯 짐이 헐떡이며 말했다.

 

“너 얼굴이 녹색빛을 띠는 걸.”

“내 피는 녹색이야, 짐.”

“알아. 그냥 보기 좋다고.”

 

짐이 일부러 속도를 높인 스팍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더 빨리 달리며 대답했다.

 

“네가 녹색빛을 띠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 우린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지만.”

 

스팍은 갑자기 짐이 자신의 손에 입을 맞췄던 그날 밤 기억이 떠올라 헉하고 숨을 내쉬었다. 스팍은 마치 지쳐가기라도 하는 듯 거친 숨을 몇 번 더 내쉬며 자신의 행동을 감추었다.

 

짐은 그 접촉이 얼마나 은밀한 행위인지 모를 것이다.

 

짐이 미소 지었다.

 

“지쳤어?”

“아니.”

 

스팍은 짐의 경쟁심을 자극할 것을 알면서도 솔직히 대답했다.

 

“그럼 마지막 1킬로미터도 힘내자고.”

 

짐이 헉헉거리면서 급격히 속도를 높였다. 인간치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실력을 보여줘.”

 

하지만 스팍은 벌칸 혼혈이었다. 스팍이 빠르게 튀어나갔다. 둘은 단거리 달리기를 하듯 내달렸다. 짐은 간격을 벌리는 스팍을 보며 활짝 웃었다.

 

“자랑하는 거야?”

 

짐이 소리쳤다.

 

스팍이 속도를 늦추고 정말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짐을 돌아보았다.

 

“보여 달라고 했잖아.”

 

짐이 헉헉대며 웃었다. 티셔츠는 땀과 바닷물에 젖어 버렸고 가슴은 빠르게 오르락내리락 했다.

 

“넌 항상 뽐내는 경향이 있어.”

“그럴 의도는 없었어.”

 

스팍도 이제는 호흡이 조금 가빴다. 짐의 곁을 떠나지 않아도 충분히 운동에 힘쓸 수 있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

 

교관이 전력질주를 하며 들어오는 둘의 시간을 쟀다. 스팍은 쉽게 속도를 줄이며 걸었지만 짐은 모래밭에 벌러덩 드러누워 헐떡였다.

 

“장시간 운동한 뒤에도 계속 움직여 주는 게 좋아.”

 

스팍은 천사 모양을 만들 듯 팔을 휘적거리는 짐을 내려다보았다. 숨이 가빠 말하기 힘든 짐은 손사래로 대답을 대신했다.

 

짐이 겨우 몸을 일으켰다. 다른 생도들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스팍은 형체를 키우며 결승선으로 다가오는 생도들을 바라보았다. 스팍이 짐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당연히 곁에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짐은 이미 바다를 향해 이동한 상태였다. 짐은 이미 바닷물로 축축해진 운동복을 무의미하게 걷어 올린 채였다. 짐은 마치 도시와 바다를 품에 안 듯 고개를 재끼고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아직도 가쁜 숨을 내쉬느라 어깨가 들썩거렸다. 짐의 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짐은 열기를 식히려 몸을 굽혀 바닷물을 떠 얼굴에 끼얹었다.

 

스팍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

 


 

If Spock knew better, he’d say they were flirting.
스팍에게 자각이 있었더라면 둘이 서로 애정 놀음을 하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처음에 짐이 스팍에게 추파를 던진다고 해 놨는데 옮겨놓은 걸 읽다가 스팍이 자각하는 것과 짐이 추파를 던지는 게 무슨 관계인가 싶어서 원문을 보니 주어가 they였다. 역시… 번역문이 논리적으로 이상하면 오역이라니까;;

내 감각으로 flirt는 우리말의 ‘추파를 던지다’보다 일상적인 느낌인데 ‘추파를 던지다’보다 일상적인 표현을 잘 모르겠다. ‘꽁냥거리다’라는 표현이 떠올랐지만, 이런 표현은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말이기도 하지만 스팍이 쓸 리도 없는 표현이고, ‘연애질’이라는 표현 역시 본즈라면 모를까 스팍이 쓸 법한 표현은 아니다. 고민하며 여러 사전을 뒤지다 옥스포드 사전의 어원 설명에 ‘원래는 까불거리는 행동을 나타냈지만 나중에는 애정을 담은 장난기 섞인 행위를 가리킴’이라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애정 놀음’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제일 좋아하는 챕터라 중간에 끊고 싶진 않았지만, 다 옮기길 기다리다간 언제 올릴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끊었다. 일단 음양사를 끊어야…;;;

 

(이전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