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e Like the Sun

아이돌 그룹 여자친구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 중 최근에 들은 “해야”는 kyliselle님의 스팍커크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도 좋고 노래도 좋으니 다들 감상해 보셨으면 좋겠다!!!

 

 

 

Shine Like the Sun

= = =

커크도 곧 도착하겠지만 지금 스팍은 혼자였다. 혼자라서 염치없이 비밀스러운 사랑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스팍은 태양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눈을 감았다. 온몸으로 햇살을 받았다. 몸을 데우고 오랫동안 지속되던 함선 생활의 냉기를 날려 버렸다. 사막의 빛나는 태양에 젖어 그 열기에 몸을 쬐며 내심 만족이 차올랐다. 수 년 만에 진정으로 따뜻함을 느끼며 손바닥을 들어 올려 열기로 민감한 손바닥을 녹였다. 얼음 같던 시간은 잊었다. 할 수만 있었다면 가르랑거렸을 것이다.

“Las’hark.”

스팍은 뒤에서 들려온 조용한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태양을 흠모하는 데 푹 빠져서 커크가 물질화되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지금처럼 은밀하고 감정적인 순간을 들켰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자제력도 아직 온전치 못한 스팍이 몸을 돌렸다.

“벌칸어로 태양이란 단어를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그게 중요해?”

스팍의 질문에 커크가 지친 듯 되물었다.

스팍이 깊게 숨을 쉬며 몸을 돌렸다.

“아닙니다.”

스팍이 자제하며 대답했지만 끝도 없이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다.

“중요하지 않지요.”

커크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커크가 다시 조용히 말을 걸었다.

“너…”

커크가 마른 침을 삼켰다.

“너는 태양이 좋아?”

스팍은 본드를 통해 커크에게서 며칠 만에 처음으로 희미한 희망의 흔적이 떨리듯 밀려오는 걸 차갑게 받아들였다. 여전히 민망함을 감추지 못한 스팍은 이를 무시했다. 스팍은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쌀쌀맞고 감정 없는 목소리로, 한때 자신의 어머니를 울리기도 했던 바로 그 목소리로 커크에게 쏘아붙였다.

“물론 저는 태양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주장은 지극히 우습기만 하군요. 태양이란 원소가 타오르는 형체일 뿐입니다. 그저 존재하는 것이죠. 저는 태양에 아무런 감정이 없습니다.”

본드를 통해 상심의 큰 고통이 밀려왔고, 스팍은 그 강력함에 한 발짝 물러나야 할 정도였다. 깜짝 놀란 스팍이 커크의 눈을 바라보았고…

익숙하지 않은 좌절감과 함께 문득 스팍은 자신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험에 실패했음을 알게 되었다.

커크의 아름다운 눈을 통해 무언가가 거칠게 닫히는 것을 보았다. 마치 셔터가 닫히듯, 성의 쇠창살이 내려오듯…

그리고 커크의 눈은 텅 비어 버렸다.

둘의 본드와 함께.

= = =

파블로 네루다 100편의 사랑 소네트 중 92번

스페인어를 공부하라는 뜻인지 내 서피스 언어 설정이 자꾸 스페인어로 변경되고 있다. 핑계 김에 오랜만에 뇌세포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스페인어 관련 지식을 꺼내 써 봤다. 사실은 뒤적거리다 본 시의 시어가 어쩐지 스팍커크를 떠올리게 하더라고.

사랑하는 이여, 내가 죽고 당신은 살거든,
고통에 너무 많은 자리를 내 주지 말아.
사랑하는 이여, 당신이 죽고 내가 살거든,
우리가 함께 살아 있던 그런 공간은 없는 거야.

밀가루가, 모래알이
시간이, 정처 없이 흐르는 물이, 떠도는 바람이
항해하는 먼지처럼 우리를 이끌었어.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만날 수가 없었어.

우리가 만났던 그 목장을
아, 그 작은 무한을! 함께 되돌리자.
하지만 이 사랑은, 이 사랑만큼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이 사랑은 태어나지도 않아서
긴 강처럼 죽지도 않고
땅을, 입술을 바꿀 뿐이니까.


Amor mío, si muero y tú no mueres,
no demos al dolor más territorio:
amor mío, si mueres y no muero,
no hay extensión como la que vivimos.
 
Polvo en el trigo, arena en las arenas
el tiempo, el agua errante, el viento vago
nos llevó como grano navegante.
Pudimos no encontrarnos en el tiempo.
 
Esta pradera en que nos encontramos,
oh, pequeño infinito! Devolvemos.
Pero este amor, amor, no ha terminado,
 
y así como no tuvo nacimiento
no tiene muerte, es como un largo río,
sólo cambia de tierras y de labios.

– 파블로 네루다 「100편의 사랑 소네트 중 92번」

 

문학동네에서 나온 정현종 시인의 번역본도 있긴 한데 내 기준으로 별로 멋도 없고 원문이랑 비교했을 때 음? 싶은 부분도 있어서 부족한 스페인어 지식을 박박 긁어서 옮겨 보았다. 스페인어 언어 지식 부족으로 결과물에 자신은 없지만;;; 오랜만에 머리 많이 썼네.

아, 사용된 원문은 Losada 출판사에서 출판된 Cien Sonetos de amor 1999년 초판본이다.

[스팍/커크] Make Me Wonder -1-

스팍은 합리적인 결정을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주요 구성원이 벌칸인으로 구성된 팀인 VSA(Vulcan Speed-racing Association ; 벌칸 스피드레이싱 협회)는 세컨드 드라이버인 스팍에게 팀 오더를 자주 내리곤 했다. 팀 오더를 통해 퍼스트 드라이버인 스톤에게 더 좋은 순위를 양보한 결과가 기대 이하일 때도 많았다. VSA가 팀 오더를 내릴 때마다 자신의 팬들이 분통을 터뜨리더라도 스팍은 그저 퍼스트 드라이버와 세컨드 드라이버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는 게 팀 차원에서는 합리적인 모양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물론 스팍도 순위를 경쟁하는 레이싱 팀이 더 좋은 순위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일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VSA는 그 이름부터 벌칸인임을 당당히 드러내는 팀이었다. 지구의 Formula 1에서 착안해 은하 연방의 다양한 종족이 한 자리에 모여 레이싱이라는 형태로 경쟁하는 자리인 Formation 1 대회, 줄여서 F1은 본래 다양한 종족이 건전하게 경쟁하며 우주 탐사를 위한 기술력을 시험하는 자리이자, 서로 다른 종족이 직접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회였다. 그런 F1에 참가하는 팀 이름에 당당히 종족을 표시하는 일은 타 종족을 배척하거나 종족주의를 강화하는 뜻으로 비춰지기 십상이기 때문에 오해를 감수하고서도 종족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는 VSA같은 팀은 드물었다. 인간과 벌칸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신이 5년이나 그런 VSA의 세컨드 드라이버로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실력이 혈통의 불리함을 극복할 정도는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스팍은 세컨드 드라이버임에도 예산을 이유로 퍼스트 드라이버보다 낮은 사양의 차를 타거나 업그레이드가 늦어지는 일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 제 아버지 사렉의 경제력 덕을 보긴 했겠지만, 적어도 그 점에서 VSA는 공평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줄 아는 팀이라고 생각했다.

 

4년 간 자신의 레이서였던 리처드가 은퇴를 결심했을 때에도 그의 나이나 나이에 따른 기량 저하를 생각하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겠거니 여겼던 스팍이다. 리처드 발더는 자신과 짝을 이루기 전에도 뛰어난 레이서였지만, 자신과 짝을 이룬 4년간은 감히 최고의 레이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눈부신 성적을 거둔 선수였다. 4년 연속 드라이버 챔피언십과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을 이룬 것은 물론이요, 4년간 수많은 기록을 새로 썼는데 특히 2시즌 동안 리타이어 없이 전 경기 완주 및 포인트 득점은 수많은 사람이 인정할 정도로 쉽게 깨기 힘든 기록이었다. 앞으로도 몇 시즌은 리처드가 계속 지배하리라는 예상이 팽배하던 가운데 그가 은퇴를 결심했을 때, 엔터프라이즈 팀에서 유일하게 그 결정을 반대하지 않은 게 바로 그의 레이스 엔지니어였던 스팍이었다.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는 말이 그런대로 합리적이었던 까닭이다.

 

리처드 이후 자신과 짝을 이룰 레이서가 F1을 시작한 지 고작 일 년도 채 안 된 햇병아리 루키인 것은 그런대로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이 아까우니 잘 키워보라는 파이크 감독의 말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들보다 늦게 카트를 시작한 것 치고 F1 데뷔는 빨리 했지만 제임스 커크의 재능은 거기까지였다. 제임스 커크는 스타팅 그리드와 상관없이 경기 초반이면 하위권으로 순위가 떨어지곤 했다. 규정에 따라 만들어진 차량의 성능은 대동소이(大同小異)했다. 이미 정해진 트랙 위를 달리는 동안 날씨라는 변수가 없다면 숙련된 드라이버의 움직임은 대부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니 초반 순위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좋은 순위를 거두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도 좋았다. 게다가 제임스 커크는 차량 조작도 미숙해 보였다. 비도 오지 않는 날씨에 브레이크의 제동력을 감당 못하고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그러다 사고라도 낸다면 전체 레이스를 예측하기가 까다로워지기 때문이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더 빨리 분석하는 스팍이라도 경기 중 사고는 까다로운 변수였다. 우승후보인 리처드에게 백 마커를 도맡아하는 제임스 커크의 존재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다행히 운전 미숙으로 사고를 낸 적도 없고 경기 후반에는 어떻게든 순위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의 아버지인 조지 커크가 F1 데뷔 첫 해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졌다는 걸 감안하면 제임스 커크는 소박한 데뷔 시즌을 보낸 평범한 선수에 불과했다.

 

“대답이 없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석상처럼 무표정한 스팍을 보며 파이크는 사람 좋은 미소를 보냈다. 스팍은 파이크의 그런 미소를 볼 때마다 바보가 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처음 스팍이 파이크와 대화를 나눴을 때도 파이크는 대답 없이 저런 표정만 지었다. VSA 소속 드라이버였던 스팍이 파이크를 만난 건 세컨드 드라이버로서는 나름대로 인정을 받지만, 한편으로 그 이상을 꿈꿀 수 없음에 고민하던 5년 전이었다. 시상식을 겸한 연말 파티에서 우연히 그 해의 감독상을 받은 엔터프라이즈 팀의 크리스토퍼 파이크 감독과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축하의 말과 함께 가볍게 근황을 나누던 중 파이크 감독이 더 오래, 더 깊게 레이싱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있냐고 물었다. 처음엔 이적과 은퇴를 놓고 저울질하던 제 마음을 읽기라도 했나 싶어 놀라던 스팍은 곧 그 뒤에 숨은 ‘드라이버보다’라는 말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랐다. 현역으로 활동하며 기량이 떨어지지 않은 선수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파이크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웃고 자리를 떠났었다. 실제로 스팍은 지금 파이크 밑에서 선수 시절보다 더 즐겁게 레이싱을 하고 있었다. 리처드의 은퇴 이후 수많은 러브콜이 있었지만 스팍은 파이크 밑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제임스 커크라니.

 

“자네, 짐의 경기를 제대로 본 적은 있나?”

 

이제 원로 취급을 받을 정도로 오랫동안 F1에 몸담고 있는 파이크의 목소리는 어쩐지 자신을 놀리는 듯 했다.

“없습니다.”

“일단 짐의 경기를 보고, 그러고도 도저히 납득이 안 되면 그때 거절해도 늦지 않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말에 스팍은 파이크가 건넨 자료가 담긴 마이크로 칩을 받아들고 조용히 사무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 * *

 

제임스 커크는 엔터프라이즈의 세컨드 팀인 패러것에서 데뷔한 루키였다. 데뷔라고는 하지만 시즌 초부터 합류한 선수는 아니었다. 패러것의 선수였던 올슨이 시즌 중 사고를 당해 대신 출전한 선수가 제임스 커크였다. 올슨은 부진한 성적임에도 경기에 임하는 태도가 좋지 않아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올슨이 은퇴하는 계기가 된 그 사고 역시도 시즌 중 한 달여의 휴가 기간 동안 다음 경기가 열리던 근처 휴양 행성에 놀러갔다 당한 사고였다. 팀 운영 측면에서도 발전 없는 선수보다야 화려한 배경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실력이 검증 안 된 루키 쪽이 훨씬 나은 탓에 선수 교체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파이크가 건넨 건 제임스 커크의 데뷔전인 2251년 델타 베가 레이스의 자료였다. 델타 베가 프로즌 서킷에서 치러지는 경기는 수시로 눈보라가 이는 행성의 날씨 탓에 거의 빙상전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충분한 차량 세팅 변경 시간이 필요하다는 각 팀의 요구에 따라 델타 베가 레이스는 언제나 여름휴가 다음이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사고가 속출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로 유명한 델타 베가 레이스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그 유명한 조지 커크의 아들이 데뷔전을 치른다고 하니 그 관심은 더욱 치솟았다. 수많은 언론 관계자들이 참석했고, 커크 가와 친분이 있던 파이크 감독은 경기 전부터 인터뷰를 하느라 바빴다.

 

제임스 커크가 데뷔하던 해인 2251년에는 유독 엄청난 눈보라로 퀄리파잉이 몇 시간이고 미뤄졌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치러진 퀄리파잉은 예상대로 난장판이었다. 24명의 선수 중 6명이 사고로 퀄리파잉 기록을 세우는데 실패했고, 패러것의 게일라 선수는 차량 이상으로 퀄리파잉에 실패했다. 같은 팀 선수였던 제임스 커크는 루키답게 초반 몇 바퀴 동안은 휘청거리며 위험한 주행을 했지만 몇 바퀴를 돌면서 감을 잡은 모양인지 무려 9번 그리드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퀄리파잉을 마친 제임스 커크는 볼이 상기된 채 아직 소년의 얼굴을 하고 활짝 웃었다. 인터뷰 내내 빙하처럼 푸른 제임스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고작 9번 그리드에도 만족할 수 있는 건 아직 어린 선수이기 때문일까. 열여덟 살. 10년 전 스팍이 데뷔할 때와 같은 나이였다. 스팍은 자신의 선수 시절을 떠올렸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스팍은 웃음커녕 미소 한 번 지은 기억이 없었다. 한 번도 자신의 주행에 만족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선수였던 리처드는 첫 번째 코스가 좌측 커브인 델타 베가 프로즌 서킷에서는 폴포지션보다 유리할 수도 있는 위치인 2번 그리드였다.

 

다행히 본 경기 때는 눈보라가 내리지 않았다. 날씨의 영향이 사라지자 선수들은 제 실력을 뽐냈다. 9번 그리드에서 출발한 제임스 커크는 출발부터 순위를 잃더니 서킷을 몇 바퀴 돌지도 않았는데 벌써 백 마커가 되어 있었다. 부모의 후광을 입고 제 실력 이상의 평가를 받는 선수라면 스톤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실망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스팍은 자신이 무엇에 실망했는지 알지 못했다. 당시 리처드의 순위 싸움이 치열해 제임스 커크의 레이싱에 관심을 줄 여유는 없었지만, 경기 종료 후 최종 순위를 확인하고 다시 한 번 놀랐던 기억이 났다. 제임스 커크가 백 마커였던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위를 회복해 비록 출발 그리드보다 한 계단 떨어지긴 했어도, 포인트 득점이 가능한 10위로 경주를 마쳤기 때문이다.

 

제임스 커크가 초반에 순위를 상실한 건 놀랍게도 제대로 가속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제임스가 본격적으로 가속을 시작한 타이밍은 백 마커가 되어 선두권이 자신을 앞지르기 시작할 때였다. 레이스 페이스를 높이기 위해 순위가 앞서는 차량을 뒤따라가는 전략은 흔한 전략이지만, 그것을 자신의 주요 전략으로 사용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었다. 게다가 차량마다 성능과 특성이 다른 만큼 남을 따라가기만 해서는 제대로 된 레이스를 할 수 없었다. 제임스의 전략은 비논리적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 제임스 커크의 퀄리파잉 기록을 살피던 스팍이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커브가 이어지다 직선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코너를 빠져나오면서 가속 시 제임스의 차량은 기어 변속 딜레이를 일으켰다. 기어 변속에 딜레이가 생기면 코너를 빠져나오는 속도가 부족해 코너에서 순위 싸움에 휘말릴 경우 반드시 지고 만다. 다수의 차량과 자리싸움을 벌이는 경우 후속 차량과 충돌 위험도 있었다. 제임스 커크는 퀄리파잉 초반에 이를 인지한 듯 퀄리파잉 내내 커브 진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보통 커브 진입 시 속도를 줄이고 커브 탈출 시 속도를 높이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제임스는 커브 진입 시 속도를 높이고 커브 탈출 이후 서서히 속도를 높이는 이상한 방식의 주행으로 안정적인 랩타임을 내고 있었다. 당시 서킷에 쌓인 눈 때문에 대부분의 선수는 코너 진입 시 스핀을 줄이려 과도하게 속도를 줄이는 경향이 있었고, 상대적으로 코너 진입 속도가 높은 제임스는 최고 속도가 높지 않음에도 비교적 괜찮은 랩타임을 낼 수 있었다. 짚이는 게 있어 제임스의 팀원인 게일라의 퀄리파잉 기록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게일라의 리타이어 원인은 기어박스 이상이었다. 기어 변속 딜레이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변속을 하다 기어가 고정되어 버렸던 것이다. 올슨은 차량을 험하게 다루는 편이었고, 제임스가 투입된 시즌 하반기에는 이미 기어박스 교체 횟수 초과로 차량의 기어박스를 교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경우 최하위 그리드가 되는 것을 감수하고 정상적인 차량으로 주행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제임스 커크는 퀄리파잉을 통해 익힌 자신의 레이스 전략을 믿고 이상이 있는 기어박스를 교체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 레이스 초반에 가속을 하지 않은 이유도 초반부터 순위싸움으로 치열하게 몸싸움을 하다 충돌이 발생할 위험을 인지하고 이를 피했다고 보는 게 적절했다. 차량 상태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주행을 하다 리타이어를 당하느니 안전하게 포인트를 획득하는 편을 택한 것이다. 순위 회복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서야 선택할 수 없는 전략이었다.

 

“흥미롭군.”

 


오랜만에 읽으니 재미있어서 예전에 썼던 F1 AU의 뒤를 조금 이어 보았다. F1은 잘 모르지만 어차피 가상의 경주니 대충 그럴싸하게만 쓰자는 생각이다. 이제 보니 스팍과 커크가 10살 차이였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 그래도 클리셰 범벅인데, 나이차도 흐뭇하구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했다, 과거의 나. 완결만 내면 참 좋은데 ㅋㅋㅋㅋㅋㅋㅋ

[스팍/커크] D-Day (1)

술에 취해 함장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하기 전에 짐을 숙소에 데려다 주려던 것뿐인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뜨거운 혓바닥이 스팍의 입술을 건드렸다. 버튼이라도 눌린 것처럼 입술이 벌어졌다. 그 혓바닥은 살짝 벌어진 입술을 비틀어 열고 얌전히 놓여 있던 혓바닥을 휘감았다. 스팍이 삼켜야 할 침을 대신 삼키느라 맞닿은 입술이 우물거렸다. 어쩐지 목이 말라 스팍도 똑같이 했다. 그래도 목이 말라 빨아들이듯 삼켰다.

“으응…”

짐의 신음 소리와 함께 미세한 진동이 전기처럼 온 몸을 타고 흘렀다. 짐이 허우적대듯 스팍의 몸을 감아올 때마다 깨끗하게 정돈된 침대 시트가 바스락거렸다.

“으응… 더워.”

방금까지 스팍을 감싸던 짐이 갑자기 스팍을 밀쳐냈다. 뺨이라도 맞은 듯 민망해진 스팍이 입술을 떼고 입을 맞추느라 미처 벗기지 못했던 짐의 겉옷을 마저 벗겨 주었다.

“헤헤, 스파악.”

갑갑함이 사라졌는지 짐이 손을 뻗어 스팍의 얼굴을 더듬으며 웃었다. 쳐낼 수도 있는데 쳐내지 않았다. 얼굴을 더듬는 손길에 스팍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크기에 비하면 섬세한 손길이었다.

“네 귀…”
“읏…!”

짐의 손가락이 닿는 곳이 데일 듯 뜨거웠다. 숨이 가빠졌다. 스팍이 짐의 손목을 잡아챘다.

“함장님.”

급히 내뱉은 목소리가 떨렸다. 이 방에 계속 있으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돌아가지 않는 것이 좋은 선택 같기도 했다.

“…괜찮아.”

짐이 괜찮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스팍의 귀에 닿는 짐의 입술은 괜찮았다. 만지면 부서지기라도 할 것처럼 조심스럽기만 하던 우후라와는 달리 거칠고 낯선 손길에 자꾸만 일어나면 안 될 반응이 일어났다. 덥석 스팍의 것을 덮고 지그시 누르는 짐의 손바닥은 무례하지만 정확했다.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괜찮아, 스팍. 괜찮아.”

잔뜩 갈라진 짐의 목소리가 자꾸만 스팍을 유혹했다. 술에 취한 사람의 괜찮다는 말을 믿을 수 있는 걸까. 입도 맞춘 주제에 이제 와서 연인이 아닌 다른 이와의 육체관계가 거리낄 이유는 없는 게 아닐까. 상관과 부하의 관계이긴 하지만 관계를 주도하는 게 부하인 자신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알코올에 취한 것도 아니면서 판단력이 흐렸다. 머뭇거리는 새 짐의 손이 스팍의 바지 속을 파고들었다.

“함장… 님…!”
“괜찮다고 했잖아. 생각하지 마. 머리 아파.”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리가 아팠다. 생각하기도 싫었다. 스팍이 단정한 손으로 짐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던 짐이 재빨리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스팍은 거칠어진 숨소리를 감추지도 않고 부딪치듯 짐과 입을 맞췄다. 짐이 아야 하며 웃었다. 제대로 된 애무를 하지도 않고 몰아 붙여도 받아내는 짐이 놀랍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했다. 신음을 뱉지 않고 삼키는 짐은 온 몸을 떨었다. 스팍도 함께 떨었다. 스팍의 몸에 답삭 붙어오는 몸이 아름다웠다.

– – –

함장의 깜짝 생일파티에는 엔터프라이즈호 선원 대부분이 참석했다. 수리를 마치고 곧 출항을 앞둔 엔터프라이즈호의 출항 기념 파티이기도 했다. 반가운 얼굴들을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평소보다 큰 선원들의 목소리가 예민한 스팍의 청각을 자극했다. 원치 않아도 들려오는 선원들의 대화를 애써 무시하며 파티를 즐기는 우후라를 바라보았다. 온 몸으로 웃느라 파란 보카야 목걸이가 달랑거렸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스팍을 배려하느라 그 일부를 애써 자제하는 것뿐, 할 줄 아는 언어만큼 표현이 풍부한 우후라였다. 우후라는 분명 좋은 동반자였다. 하지만 스팍도 우후라의 좋은 동반자인지는 의문이 들었다. 선원들과 시선을 맞춰 눈인사를 하고 되도록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섰다. 엔터프라이즈호에 남기로 한 것이 옳은 선택인지 아직도 확신이 없었다. 논리를 떠나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라고 말해 주던 사람이 사라졌을 뿐인데 갑자기 모든 게 막막했다. 다가서는 짐을 흘끔 쳐다보고 다시 창밖에 펼쳐진 요크타운의 인공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지구를 닮은 하늘이 낯익은 듯 낯설었다.

“스팍 대사님의 소식은 들었어.”

스팍 대사가 있던 새로운 벌칸이 궁금했다.

“그때 터보리프트에서 하려던 말이 그거였어?”
“대강 비슷합니다.”

애매한 대답을 남기고 다시 시선을 피했다. 확실한 건 아직 새로운 벌칸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패리스 준장님과의 이야기는 잘 끝내셨군요.”
“대강 비슷해.”

묻지는 않았지만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리는 짐도 같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는 정말 저길 또 가고 싶냐?”

한심하다는 듯 묻는 레너드의 말에 짐은 가볍게 웃었고 스팍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언젠가 우리 모두의 항해는 끝날 것이다. 다만 스팍은 아직 항해를 끝내는 법을 알지 못했다.

– – –

“좀 잤어?”

버석거리는 목소리에 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짐을 바라보고 있던 스팍이 정신을 차렸다. 한숨도 못 잤다고 솔직하게 말해도 될지 고민스러웠다. 아직 잠에 취해 눈도 뜨지 못하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몇 년이나 보아 오던 사람인데 생각해 보니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인 것도 처음이었다.

“이런 건 처음이야?”

마치 자기 속을 읽기라도 한 것 같은 질문에 숨을 멈췄다. 짐이 이미 헝클어진 머리를 북북 긁었다.

“다 큰 성인끼리 이런 일도 있는 거지. 오랜만에 했더니 좀 뻐근하긴 한데 개운하고 나른하고 기분 좋네.”

짐이 시원스레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덮고 있던 이불이 흘러내려 맨가슴이 드러났다.

“넌 별로였어?”
“아닙니다.”
“그럼 됐어. 보아하니 넌 이미 씻은 것 같은데 괜한 오해 사기 싫으면 이만 가 봐. 난 천천히 씻고 알아서 움직일 테니까.”
“함장님.”

할 말도 없었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짐을 불렀다. 짐이 스팍을 빤히 쳐다보다 눈꼬리를 접으며 웃었다.

“스팍, 설마 날 성희롱으로 고발할 건 아니지?”
“절대 아닙니다.”
“나도 그럴 마음 없어. 됐지?”

침대를 벗어나며 짐이 손사래를 쳤다. 귀찮다는 듯 뒤돌아서는 짐의 허리춤에 점점이 새겨진 멍이 보였다. 스팍이 제 손을 내려다보다 하릴없이 일어섰다.

– – –

스팍은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잠시 명상을 했다. 좀처럼 안정을 찾을 수 없어 차라리 걷기로 했다. 뒷짐을 지고 스타플릿 지부 뒤에 있는 공원의 트랙을 천천히 걸었다. 인공 태양이 완전히 뜨지 않은 요크타운은 아직 어스름했다. 야행성이라 해가 진 뒤에야 활동하는 종족들이 피곤한 발을 터벅터벅 디뎠다. 일찍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사박사박했다. 바람이 앞머리를 가볍게 스쳤다.

“일찍 일어났네요? 좀 잤어요?”
‘좀 잤어?’

목소리처럼 그의 모습도 겹치는 것 같아 눈을 깜박였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신체 밀착형 운동복을 입은 우후라가 눈앞에 서 있었다.

“아니오. 한숨도 못 잤군요.”

아까는 할 수 없었던 말이 쉽게도 나왔다.

“저런.”

우후라가 스팍의 얼굴을 감싸며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익히 알고 있는 입술이 닿자 조금은 긴장이 풀어졌다.

“아, 하긴. 짐 때문에 긴장을 놓을 수도 없었겠네요. 안 봐도 훤해요. 레너드도 스콧도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니 짐을 누가 말렸겠어요. 술루는 일찌감치 벤이랑 사라졌을 거고, 보니까 제일라도 주량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렇더군요.”
“하여간 당신 책임감은 알아 줘야 해요.”

스팍은 가만히 팔을 잡아오는 우후라와 속도를 맞춰 걸었다.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사실을 말할 수도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스팍의 상황을 좋게만 해석하는 우후라의 말에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나도 어제 오랜만에 동료들을 만나니까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당신이랑 내가 헤어졌다는 소문이 언제 돌았는지 만나 보지 않겠냐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화해했다는 소문은 안 돌았나? 당신이랑 연애한 뒤로 대시 받은 건 오랜만이라 적당히 장단을 맞춰 줬는데, 괜찮죠?”

우후라가 풋 하고 웃었다.

“나 너무 부었죠?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봐요.”
“아니오. 평소와 똑같습니다.”
“거짓말.”

얼굴을 만지작거리는 우후라의 손을 잡아 가만히 내렸다. 아무리 봐도 부족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사람을 앞에 두고 귀찮은 듯 손사래를 치던 짐의 뒷모습만 떠오르는 걸까.

“다들 별 일은 없습니까?”
“그렇죠. 아, 사라만 빼고요. 파견 임무 중에 부상을 당해서 최소 3주는 쉬어야 한대요.”
“안됐군요.”
“그래서 프랭크가 위로할 겸 행성 피렌체 여행을 준비했대요. 멋지지 않아요?”
“그렇네요.”

우후라가 스팍을 새치름하게 쳐다보았다. 우후라가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라서 스팍이 얼른 정신을 차렸다.

“아, 당신도 행성 피렌체에 가고 싶어요?”
“그런 말은 안 했는데요. 그냥 요즘은 같이 보내는 시간이 적잖아요.”
“어제도 함께 함장님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잖아요.”
“그런 거 말고 커플끼리만 보내는 시간이 적다고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우후라를 만나면서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한 기억이 없었다. 분별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공적인 자리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 어쩌다 시간이 맞아 함께 식사할 때를 제외하면 둘만의 시간이랄 것이 거의 없어서였다. 특히 엔터프라이즈호 승선 이후에 오롯이 두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은 잠자리를 할 때 외에는 전무하다고 봐도 좋았다. 새삼스러운 비난에 며칠 정도는 수면을 취하지 않아도 거뜬한 스팍조차 피곤함을 느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우후라 앞에서 스팍은 늘 미안했다. 애정을 담아 선물한 보카야 목걸이의 푸른색이 보기만 해도 서늘한 델타 베가의 빙하처럼 시렸다.

‘다 큰 성인끼리 이런 일도 있는 거지.’

그래. 꼭 그 말처럼 시리고 추웠다.

“결혼이란 걸 하면… 달라질까요?”

나도. 당신도. 바라건대 그 사람도.

“그야 달라지겠죠. 당장 부부 선실을 쓰니까 아무래도 둘이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잠깐만. 지금 그거 청혼한 거예요?”

우후라가 소리 내어 웃으며 스팍을 끌어안았다.

“와, 사실 당신이 청혼하리라고는 기대도 못했는데, 막상 청혼을 받으니까 기분이 좋긴 하네요. 내가 먼저 얘기해야 마지못해 끌려오는 것 같더니, 웬일이죠? 무슨 심경의 변화예요?”

무엇부터 반박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스팍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오해를 풀 시간은 아직 많았다. 그렇게 자신을 설득했다. 스팍은 우후라를 마주 안으며 짐의 몸에 자신의 흔적이 남은 것처럼 자신의 몸에도 짐의 흔적이 남아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스팍커크로 쓰고 싶다고 했던 유럽 로맨틱 코미디 영화(정확하게는 프랑스 영화)를 이야기로 풀어 보았다. 썰은 푼 적이 있는데 다시 봐도 스팍커크랑 찰떡 같아서 ‘무엇이든 쓰게 된다’의 효력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 끼적여 보았다.

겸사겸사 오랜만에 그동안 쓰다 덮어 둔 팬픽을 들여다 보았다. 오랜만에 읽으니 내가 이런 것도 썼었나 싶고 무척 재미있었다. 전부 미완이었지만…

  1. 보급 지원 임무 나갔다가 스팍의 아내와 스팍의 아이를 태우게 된 엔터프라이즈호. 모두가 이 가족을 흥미있게 지켜보는 가운데 함장인 제임스 커크만은 이 가족을 대수롭지 않게 대한다. 과연 이 가족에겐 무슨 사연이? 이런 상황에 스팍커크는 어떤 연애를?

  2. 속도위반으로 캐롤 마커스와 결혼한 제임스 커크. 이들을 지켜보는 스팍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그걸 지켜보는 제임스 커크! 과연 이 스팍커크는 연애를 할 수 있는 건가.

  3. 술에 취한 제임스 커크와 얼떨결에 원나잇을 하고 만 스팍. 하지만 말 그대로 원나잇은 원나잇일 뿐, 쏘 쿨한 함장의 태도에 흔들리던 스팍은 우후라와 결혼을 진행시키는 사고를 치고 만다. 엔터프라이즈호 함교 선원 간의 결혼인 만큼 함장인 제임스 커크가 중심이 되어 결혼식을 준비하는데…

  4. F1 AU로 레이엔 스팍과 신인 드라이버 커크. 안전 지향 레이싱을 추구하는 스팍과 도박 같은 모험도 불사하는 커크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인정하며 우승을 향해 달려가는 스포츠 로맨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팀 엔터프라이즈의 우승 도전기!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니 삼각관계가 취향이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배배 꼬인 것이 전부 흥미진진해. 게다가 전부 단편으로는 소화가 안 될 스케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디서 본 건 많아서 꿈은 크다. 사람이 주제를 알아야 하는데… 이게 다 나 같은 애도 팬픽을 써 볼까 생각하게 만드는 스팍커크 때문이다.

중국어는 참 재밌다, 하하

잠이 도통 안 와서 뒤척이다 중국어 팬픽을 조금 읽어 보기로 했다. 중국어를 배운 적은 있어도 실력은 좋지 않았고 그나마 다 잊었지만 그래도 얼마나 읽히는지 궁금했다. 막상 보니 거의 까막눈인데 조금이나마 읽히는 게 신기해서 계속 보자니 헌법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스타트렉에 웬 헌법이지? 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컨스티튜션급을 말하는 거였다;;; 헌법급 기업호;;; 중국어 정말 대단해. 하하하하…

단상

Doctor, the needs of the many outweigh the needs of the few.

막상 옮기려니 멍해지는 문장.
팬픽 중 짐 커크가 함장직을 내려놓고 스팍이 함장이 된 뒤 엔터프라이즈호 선원들의 모럴이 망가진 모습을 그려낸 경우가 있는데 꽤 그럴싸한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함장과 대의를 위해 작은 것은 기꺼이 희생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함장. 오, 마이. 스팍이 계속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아 다행이다.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스팍: 그분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사님의 유업을 잇기로 마음 먹었죠. 신 벌칸에서요.

본즈: 스타플릿을 떠난다고? 짐이 뭐라고 할까? (What will Jim have to say about that?)

스팍: 말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I could not find the time to tell him

본즈: 결코 좋아하지 않을 거야. 아, 너 없으면 걔가 뭔 짓을 할지 상상도 안 돼.

 


스타플릿을 떠나기로 결심한 걸 짐에게 말 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한 뒤 스팍의 표정. 애틋하다, 애틋해. 비욘드의 스팍은 인간적이다. 그래서인지 가장 섹시한 건 비기닝의 스팍이지만, 짐을 만나 인간적인 면을 배우면서 점점 이렇게 변해 갔다 해도 납득이 된다. 상대적으로 까불거리고, 쉽게 욱하던 짐은 훨씬 냉철해져서, 비욘드에 이르러서는 선원을 모두 잃게 한 미끼 외계인(이름이 뭐더라;)을 일찌감치 의심하고도 끝까지 태연했고, 마지막 순간에도 차갑게 분노했다. 오히려 냉소했지. 크롤 앞에서도 악을 쓰며 자신의 주장을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살인의 무게를 지고 사느니 살인을 막고 죽겠노라고 담담하게 선언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비기닝부터 비욘드에 이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엔터프라이즈호의 다른 선원들이 본래의 자기 색을 거의 잃지 않은 가운데, 이 둘만 유난히 서로를 닮아가는 것이 눈에 띈다.

 

여담이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본즈의 대사는 좀 이상하다. 스타플릿을 떠나겠다는 스팍의 결심을 ‘짐은 당연히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이 대사. 짐과 스팍, 스팍과 본즈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이 상황에서 ‘짐은 뭐래?’라고 묻는 게 맞지 않나? 내가 영어를 잘못 들은 건가?

 

비욘드를 다시 보는데, 유난히 애틋한 스팍의 표정에 급 스타트렉 포스팅을 해 봤다. 내일은 자체 휴일로 정하고 빌려둔 책을 읽기로 했다. 사 놓고 안 읽은 책이야 어디 가지 않으니 느긋하게 읽는다고 쳐도, 빌려놓고 안 읽은 책은 분발해야 쓰겠다. 크앜!

하루카 노래 들으며 스팍커크 생각하기

언어덕후라지만 일을 하면서 제일 많이 보는 영어는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다. 내 첫사랑인데, 일로 만나니까 애정은 무슨 ㅠㅠㅠㅠ 그럴 땐 일본어를 본다. 외국어 모드 중에서도 영어만을 사용해 달리느라 부릉부릉 씩씩거리던 뇌가 일본어로 기어 변경을 해 주면 신기하게도 잠잠해진다. 책을 읽어도 좋고 노래를 들어도 좋고. 짧은 문장을 번역해도 좋다. 문자가 달라서인지 외국어를 본다는 점은 마찬가지인데도 잠시 숨고르는 효과가 있다.

그런 숨고르기의 일환으로 하루카 노래를 듣는데 어쩐지 스팍커크가 떠올라서 옮겨 봤다.


머나먼 당신 곁으로…

아득한 시공을 넘어 만난 당신
늘 당신만을 찾았어
헤아릴 수 없는 슬픔에 쓰러질 것 같다면
운명마저 멈출 때까지 이곳에 있을 테니까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바라만 보았지
해맑은 그 눈동자가 무척 아름다웠으니까

잊을 뻔했던 감정이 갑자기 흘러 넘쳐서
눈물이 되어 흘러내려
빛을 발하며

영원히 곁에 있어줘
소중한 사람
당신만을 계속 찾았어
헤아릴 수 없는 어둠을 헤치고 만났으니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당신의 몸도 마음도

태어난 이유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지금 살아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서툴러도 괜찮다고 받아들여 주었으니까
나라는 존재가 조금쯤은 좋아졌거든

아득한 시공을 넘어 만난 당신
늘 당신만을 지키고 싶어
헤아릴 수 없는 슬픔에 쓰러질 것 같다면
운명마저 멈출 때까지 이곳에 있을 테니까
이제 다시는 혼자 두지 않을 테니까

영원히 곁에 있어줘
소중한 사람
당신만을 계속 찾았어
헤아릴 수 없는 어둠을 헤치고 만났으니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당신의 몸도 마음도

이대로 꼭 안아줘


하루카 노래 가사는 한자 위에 루비를 따로 달아서 두 가지 의미를 표현한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 가사도 그렇다. 시리즈 타이틀에 있는 時空을 とき라고 읽을 때부터 (그러니까 처음부터) 시작된 전통. 내가 여기서 ‘몸도 마음도’라고 옮긴 부분 역시 身心이라고 쓰고 すべて라고 읽게 되어 있다. 옮기는 입장에서는 힘들지만 일본어를 안다면 두 가지를 즐길 수 있어 하루카 가사를 옮기는 건 늘 재미있다.

刹那さが止まるまで
운명마저 멈출 때까지

들으면서도 늘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가던 부분이었는데 ‘刹那’가 단순히 찰나, 순간이라면 의미가 통하지 않아서 조금 찾아봤다.  ‘찰나’는 불교에서 온 단어로 극히 짧은 순간을 가리키지만 생애 전체를 가리킬 때도 ‘찰나’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삶이 윤회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생애 전체도 그저 지나가는 짧은 순간인 거겠지. 그래서 저렇게 옮겨 보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해석일 뿐 정답은 아니다.
또 하나, 어순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개미 눈곱만큼 노력해 보았다. 일본어와 한국어는 어순이 같다고 하지만, 경험 상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더라. 영어를 옮길 땐 어순에 연연하지 않는데 일본어라고 본래의 어순을 벗어나지 못할 건 뭔가. 그래봤자 외국어는 외국어인데. 그렇게 생각한 뒤로 일본어 번역이 좀 더 재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심하면 함정에 빠지기 쉬운 건 역시 일본어. 이번 가사에서 어순에 얽매이지 않고 옮긴 부분은 여기.

君だけをずっと探し続けていた
늘 당신만을 찾았어

사실 이 문장을 옮기면서 고개를 갸웃하긴 했다. ずっと랑 続けていた를 같이 쓰면 의미 중복 아닌가? 하면서. 여태 아무 생각 없었지만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계속 신경 쓰인다.

[스팍/커크 끄적끄적] Caught in Storm 01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서류로 파트너십 신고만 한 건데 그런 말까지 들으니 민망하네. 아무튼 고마워.”

 

정말로 끝이었다. 여러 사건 사고를 겪으며 원숙미를 갖춘 제임스 T. 커크 함장은 여전히 소년처럼 웃었다. 함장이 결혼 특별 휴가로 자리를 비우는 며칠 간 엔터프라이즈호는 요크타운 행성 기지에서 보급 겸 점검을 하기로 했다. 일등 항해사인 스팍은 제임스와 상륙 허가 계획을 논의하고 함장실을 나왔다. 엔터프라이즈호의 인공 중력이 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스팍 중령님.”

“마커스 대위.”

 

몸을 돌리자마자 마커스 대위와 마주쳤다. 고위 장교들의 선실이 위치한 갑판의 복도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 조용했다. 엔터프라이즈호의 하얀 선체 덕에 마커스 대위의 금발 머리가 더욱 돋보였다. 스팍이 한 발짝 비켜섰다. 마커스 대위가 함장실의 출입 허가 버튼을 눌렀다.

 

“안 그래도 바쁘실 텐데 저희 때문에 일이 늘어서 죄송해요.”

 

함장을 곁에서 보좌하며 원활한 임무 수행을 돕는 것은 일등 항해사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임신 중인 과학부 소속 장교의 근무 시간을 조정하고 인력배치를 하는 것도 수석 연구 장교의 일이었다. 스팍은 캐롤 마커스 대위가 사과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스팍이 눈썹을 들어올렸다. 마커스 대위가 살짝 미소를 짓는 사이에 함장실 문이 열렸다. 마커스 대위가 들어가고 다시 함장실 문이 닫혔다.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