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My Loneliness (39,272자)
비욘드 이후, 5년 탐사의 종료가 멀지 않은 시점에 스팍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보내지 못하고 몸으로 부딪치는 커크와, 커크 곁을 지키고 싶은데 자꾸 거리를 두니까 몸이라도 부딪치는 스팍의 이야기.
Farewell Letter
문자 그대로 정해진 일과가 되어버린 업무를 마친 뒤 샤워를 하고 커피를 새로 내린 다음 문서 파일 하나를 패드 화면에 띄웠다. 이미 몇 번이고 퇴고한 문서지만 그 속에 포함된 이름과 직함을 눈에 담자 약간 심장이 덜컥였다. 숨을 죽이고 패드 화면 속의 그 문자열을 손가락으로 살짝 쓰다듬어 보았다.
어마어마한 수신자와 정형화된 구문으로 채워진 앞부분은 건너뛰고 그 아래에 작성한 문장의 흐름, 논지의 일관성, 단어의 뉘앙스를 신중하게 확인했다. 사흘 전 자신이 고민 끝에 결정한 형용사구가 마음에 걸려 사전, 시집, 수사학 데이터를 끌어내 더 적절하고 더 아름다운 표현을 선택했다.
과도한 미사여구는 지양하고 양식과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조금이라도 높은 논리성을 갖추고 기억에 남을 정도로 차분하고 낭비가 없는 아름다운 문장이 되었으면. 이 문서를 본 분별 있는 누군가에게 이 문서를 작성한 커크의 예사롭지 않은 열정과 고통스러울 정도의 애절함이 조금이라도 전해진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처럼 귀하고 소중한 사람을 내어 주는 것이니 부디 그를 소홀히 취급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커크가 뭘 쓰는지는 뒤에 나옴.
Too many rules
언젠가부터 불린 적 없는 이름. 커크가 하지 말라고 한 기억이 없으니 그건 스팍이 정한 규칙일 것이다. ‘함장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짐’이라고도 부르지 않는 침대 위의 스팍은 종종 가만히 뭔가를 견뎠다.
(네게 상처를 주는 건 나인가…….)
짐, 당신을 소중하게 대하고 싶습니다. 스팍은 종종 그렇게 말했다. 불만이나 불안한 게 있다면 말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도 말했다. 다정한 거짓말과 거칠고 음란한 말에만 익숙했던 커크는 그런 올곧은 성실함에 행복하고 간질간질한 한편으로 조금 두렵기도 했다. 스팍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그러니까 언젠가 반드시 끝나버릴 관계를 말로 정의하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다. 커크가 두려워 멈칫하는 사이 둘 사이에는 시간만 흘렀다.
(중략)
소중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지 못하는 자신이 정말 형편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조금만 더, 이번이 마지막이야. 하다못해 네가 진심으로 거절할 때까지만… 계속 변명을 반복하면서 기회가 생길 때마다 그 범위를 키워온 관계였다.
(중략)
어떤 여성이라도 괜찮았다. 스팍보다 젊어도, 나이가 많아도, 고집이 세거나 어른스러운 것도 상관없었다. 다만 이런 식으로 자기 멋대로 스팍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두려워하지 말고 스팍의 성의를 받아들이고, 행복과 고독을 함께 나누며 가능하면 스팍과 함께 영원히 세월을 보내 주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힘들지만, 몇 년 안에는 힘들겠지만, 커크에게도 언젠가 분명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날이 올 것이다. 그 때가 오면 스팍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 너는 언제나, 영원히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Foolish Man Says
“짐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신 벌칸에서 온 요청을요. 덧붙인 스팍의 말에 맥코이는 눈으로 더 말해보라고 독촉했다.
“사흘 전, 벌칸 최고평의회 관계자가 재차 연락을 했습니다.”
스팍의 목소리는 냉정함을 넘어 마치 입력된 문장을 읽는 컴퓨터처럼 특징이 없었다. 그 무감정함 속에 스팍이 받은 충격이 드러났다.
“엔터프라이즈의 함장 제임스 T 커크 대령께서 제 공로 및 새 직위의 적합성을 높이 평가하며, 취임 요청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요지로 작성한 추천서를 이미 전달하셨다더군요.”
(그 멍청한 놈이……!)
맥코이는 제대로 꼬인 친구 녀석에게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하필 이런 상황에 그렇게 나오기냐.
“함장님의 판단은…… 논리적으로 볼 때 현명하며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맥코이의 분노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팍은 손에 든 잔을 응시한 채 커크를 직함으로 부르며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 5년 임무를 무사히 끝내고 귀환하면 선원 대부분은 승진이나 그에 상응하는 배치전환 대상이 될 겁니다. 스타플릿의 인사 제도는 표준 관료제를 모범으로 삼아 설계되어 있습니다. 서열에 따라 승진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승진시키려면 보통 그 위의 상급자를 승진시켜 자리를 만들어야 하고요.”
“……”
“제가 이대로 스타플릿 사관으로 근무를 계속한다고 가정하면, 이후 함장님이 지휘하는 함선에서 제가 일등항해사로 근무할 수 있는 확률은 9.25%가 되지 않습니다. 제 존재가 함장님께 도움이 되는 시기는 이제 끝났다고 봐야 합니다.”
마치 흘러가는 계절의 아름다움을 아쉬워하는 것 같은, 그리움과 애석함이 가득한 말투였다. 아무 말도 없이 쳐다보는 맥코이에게 잠시 시선을 준 스팍이 말을 이었다.
“추천서의 사본을 확인했습니다. 정밀하고 논리적인, 너무나… 아름다운 문장이었습니다.”
짐이 사실은 책을 사랑하고 많이 읽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오랜만에 깨달았다고 중얼거린 스팍의 흔들림 없는 차분한 눈동자를 본 맥코이는 문득 이 벌칸인 혼혈이 눈물을 흘릴 것 같다는 무서운 상상이 떠올라 그 생각을 지우려는 듯 술잔을 비우고 악담을 했다.
“……그딴 건 사전이나 교본 같은 걸 보고 썼겠지.”
“그 추천서가 그의 대답이자 작별 인사라면 받아들일 수밖에요.”
지난 사흘 간 근무 중에도 계속 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스팍이 조용한 목소리로 고백했다.
Just Say Yes
“……아까 취임 요청을 거절한다고 말했던 건 진심이야?”
“그럴 생각입니다. 벌칸인의 의무는 따르지 못하겠지만 지금 제게는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내 혼신의 추천서가 쓰레기가 될 거라는 소리군.”
말하지 못했던 여러 집착을 고르고 골라 아름다운 말로 포장한 혼신의 러브레터. 거의 유서를 쓰는 기분으로 써 내려갔는데.
“짐, 벌칸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 및 최고평의회와의 우호적인 교류에는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평의회와의 우호적인 교류’라.”
커크는 될 대로 되라는 듯 입매를 말아 올렸다. 목구멍에 억눌렀던 감정의 파도가 이미 머리끝까지 치올라 심장 박동에 맞춰 온몸에 팔딱팔딱 뛰었다.
“그런 것들에게 내가 진심으로 호의를 보였을 거라고 생각했어?”
살짝 흔들리는 눈동자로 의도를 묻는 스팍을 노려보듯 마주보며 커크는 담담한 말투로 눈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가득한 충동을 털어놓았다.
“네게 흐르는 어머니의 피를 지금도 아무렇지도 않게 ‘불리한 조건’이라고 표현하는 주제에, 스팍 대사가 돌아가시고 네가 이렇게 스타플릿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니까 손바닥 뒤집듯 너를 칭찬하며 네가 목숨 걸고 쌓아 올린 것들을 전부 버리고 자기들을 위해 공헌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슬픔이라고도, 분노라고도 할 수 없이 엉망진창으로 억눌려 있던 뭔가를 입으로 토해낸 뒤에는 이제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싫어. 오만하고 권위적이고 배타적인 그곳에서 널 진심으로 소중히 대해 줄지도 알 수 없어. 그런데, 그럼에도……”
숨을 쉴 수 없는 괴로움과 물리적인 심장의 아픔에 헐떡이며 커크는 어느새 일어나 있던 스팍의 전신을 눈에 담았다.
“그럼에도 그 행성은…… 그 행성은 이제 네가 사랑하는 고향이야.”
천천히 다가오는 스팍의 마른 몸이 어렴풋이 일그러진 모양을 보고 자신이 너무나 흥분하는 바람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팍. 네가 돌아가고 싶다면 언제든 그 뜻을…… 최대한 존중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
Hello, My Loneliness
“짐, 대체 왜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스팍에게 커크는 당연한 소리를 묻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뭐긴, 가장 좋은 거절 방법을 생각하려고 그러지.”
우리 편이 될 것 같은 사람은 지금 우리 편으로 만들어 두고, 쉽지 않을 것 같은 상대는 약점을 잡아 둬야지. 이 말을 하며 호전적으로 웃는 커크를 보며 스팍은 ‘가장 좋은 거절 방법’이라고 중얼거렸다.
“맞아. 이번에 거절한다고 해서 대놓고 싸울 필요는 없잖아. 네 고향이기도 하고 네 아버지를 곤란하게 해도 마음이 불편해. 평의회의 결정을 따르지는 못한다고 해도 따로 우리 편을 만드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나중을 위해서라도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지.”
앞으로의 일은 둘이서 생각해서 결정하자며? 커크가 스팍의 얼굴을 쳐다보자, 스팍은 약간 감격한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하며 두 팔로 커크의 몸을 꼭 껴안았다.
(중략)
“앞으로 그런 짓은 절대 하지 않을게. 반드시 널 소중히 대할게.”
약속해. 진심을 담아 속삭이며 왼쪽 어깨에 입을 맞추자 스팍이 살짝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커크를 들어 안고 볼과 볼을 맞대더니 다정한 목소리로 상상도 못한 말을 했다.
“상처를 입혀도 괜찮습니다. 당신과 저는 다른 존재니까 분명 앞으로도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있겠지요. 저도 질문이나 의견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이야기할 생각이고, 당신 역시 아무 것도 참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하는 동안 눈동자에 담긴 분위기, 입술의 작은 움직임만으로 스팍이 진심으로 웃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아무리 깊은 상처를 입힌다고 해도 그 상처는 분명 당신이 치료해 줄 테니까요. 그러니까 얼마든지 흉터를 남겨 주세요. 얕든 깊든, 작든 크든, 앞으로도 영원히요.”
(중략)
‘-당신에게 입은 무수한 상처의 흔적이 언젠가 제 고독을 달래 줄 테니까요.’
엄청나게 생략한 건데, 엄청나게 발췌해 버렸다… 일본어는 번역기도 그럭저럭 쓸 만하니까 많이 읽고, 좋아요 많이 남겨 주시고, 나랑 감상도 공유해 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