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도통 안 와서 뒤척이다 중국어 팬픽을 조금 읽어 보기로 했다. 중국어를 배운 적은 있어도 실력은 좋지 않았고 그나마 다 잊었지만 그래도 얼마나 읽히는지 궁금했다. 막상 보니 거의 까막눈인데 조금이나마 읽히는 게 신기해서 계속 보자니 헌법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스타트렉에 웬 헌법이지? 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컨스티튜션급을 말하는 거였다;;; 헌법급 기업호;;; 중국어 정말 대단해.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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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Doctor, the needs of the many outweigh the needs of the few.
막상 옮기려니 멍해지는 문장.
팬픽 중 짐 커크가 함장직을 내려놓고 스팍이 함장이 된 뒤 엔터프라이즈호 선원들의 모럴이 망가진 모습을 그려낸 경우가 있는데 꽤 그럴싸한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함장과 대의를 위해 작은 것은 기꺼이 희생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함장. 오, 마이. 스팍이 계속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아 다행이다.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스팍: 그분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사님의 유업을 잇기로 마음 먹었죠. 신 벌칸에서요.
본즈: 스타플릿을 떠난다고? 짐이 뭐라고 할까? (What will Jim have to say about that?)
스팍: 말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본즈: 결코 좋아하지 않을 거야. 아, 너 없으면 걔가 뭔 짓을 할지 상상도 안 돼.
스타플릿을 떠나기로 결심한 걸 짐에게 말 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한 뒤 스팍의 표정. 애틋하다, 애틋해. 비욘드의 스팍은 인간적이다. 그래서인지 가장 섹시한 건 비기닝의 스팍이지만, 짐을 만나 인간적인 면을 배우면서 점점 이렇게 변해 갔다 해도 납득이 된다. 상대적으로 까불거리고, 쉽게 욱하던 짐은 훨씬 냉철해져서, 비욘드에 이르러서는 선원을 모두 잃게 한 미끼 외계인(이름이 뭐더라;)을 일찌감치 의심하고도 끝까지 태연했고, 마지막 순간에도 차갑게 분노했다. 오히려 냉소했지. 크롤 앞에서도 악을 쓰며 자신의 주장을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살인의 무게를 지고 사느니 살인을 막고 죽겠노라고 담담하게 선언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비기닝부터 비욘드에 이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엔터프라이즈호의 다른 선원들이 본래의 자기 색을 거의 잃지 않은 가운데, 이 둘만 유난히 서로를 닮아가는 것이 눈에 띈다.
여담이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본즈의 대사는 좀 이상하다. 스타플릿을 떠나겠다는 스팍의 결심을 ‘짐은 당연히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이 대사. 짐과 스팍, 스팍과 본즈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이 상황에서 ‘짐은 뭐래?’라고 묻는 게 맞지 않나? 내가 영어를 잘못 들은 건가?
비욘드를 다시 보는데, 유난히 애틋한 스팍의 표정에 급 스타트렉 포스팅을 해 봤다. 내일은 자체 휴일로 정하고 빌려둔 책을 읽기로 했다. 사 놓고 안 읽은 책이야 어디 가지 않으니 느긋하게 읽는다고 쳐도, 빌려놓고 안 읽은 책은 분발해야 쓰겠다. 크앜!
하루카 노래 들으며 스팍커크 생각하기
언어덕후라지만 일을 하면서 제일 많이 보는 영어는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다. 내 첫사랑인데, 일로 만나니까 애정은 무슨 ㅠㅠㅠㅠ 그럴 땐 일본어를 본다. 외국어 모드 중에서도 영어만을 사용해 달리느라 부릉부릉 씩씩거리던 뇌가 일본어로 기어 변경을 해 주면 신기하게도 잠잠해진다. 책을 읽어도 좋고 노래를 들어도 좋고. 짧은 문장을 번역해도 좋다. 문자가 달라서인지 외국어를 본다는 점은 마찬가지인데도 잠시 숨고르는 효과가 있다.
그런 숨고르기의 일환으로 하루카 노래를 듣는데 어쩐지 스팍커크가 떠올라서 옮겨 봤다.
머나먼 당신 곁으로…
아득한 시공을 넘어 만난 당신
늘 당신만을 찾았어
헤아릴 수 없는 슬픔에 쓰러질 것 같다면
운명마저 멈출 때까지 이곳에 있을 테니까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바라만 보았지
해맑은 그 눈동자가 무척 아름다웠으니까
잊을 뻔했던 감정이 갑자기 흘러 넘쳐서
눈물이 되어 흘러내려
빛을 발하며
영원히 곁에 있어줘
소중한 사람
당신만을 계속 찾았어
헤아릴 수 없는 어둠을 헤치고 만났으니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당신의 몸도 마음도
태어난 이유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지금 살아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서툴러도 괜찮다고 받아들여 주었으니까
나라는 존재가 조금쯤은 좋아졌거든
아득한 시공을 넘어 만난 당신
늘 당신만을 지키고 싶어
헤아릴 수 없는 슬픔에 쓰러질 것 같다면
운명마저 멈출 때까지 이곳에 있을 테니까
이제 다시는 혼자 두지 않을 테니까
영원히 곁에 있어줘
소중한 사람
당신만을 계속 찾았어
헤아릴 수 없는 어둠을 헤치고 만났으니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당신의 몸도 마음도
이대로 꼭 안아줘
하루카 노래 가사는 한자 위에 루비를 따로 달아서 두 가지 의미를 표현한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 가사도 그렇다. 시리즈 타이틀에 있는 時空을 とき라고 읽을 때부터 (그러니까 처음부터) 시작된 전통. 내가 여기서 ‘몸도 마음도’라고 옮긴 부분 역시 身心이라고 쓰고 すべて라고 읽게 되어 있다. 옮기는 입장에서는 힘들지만 일본어를 안다면 두 가지를 즐길 수 있어 하루카 가사를 옮기는 건 늘 재미있다.
刹那さが止まるまで
운명마저 멈출 때까지
들으면서도 늘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가던 부분이었는데 ‘刹那’가 단순히 찰나, 순간이라면 의미가 통하지 않아서 조금 찾아봤다. ‘찰나’는 불교에서 온 단어로 극히 짧은 순간을 가리키지만 생애 전체를 가리킬 때도 ‘찰나’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삶이 윤회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생애 전체도 그저 지나가는 짧은 순간인 거겠지. 그래서 저렇게 옮겨 보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해석일 뿐 정답은 아니다.
또 하나, 어순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개미 눈곱만큼 노력해 보았다. 일본어와 한국어는 어순이 같다고 하지만, 경험 상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더라. 영어를 옮길 땐 어순에 연연하지 않는데 일본어라고 본래의 어순을 벗어나지 못할 건 뭔가. 그래봤자 외국어는 외국어인데. 그렇게 생각한 뒤로 일본어 번역이 좀 더 재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심하면 함정에 빠지기 쉬운 건 역시 일본어. 이번 가사에서 어순에 얽매이지 않고 옮긴 부분은 여기.
君だけをずっと探し続けていた
늘 당신만을 찾았어
사실 이 문장을 옮기면서 고개를 갸웃하긴 했다. ずっと랑 続けていた를 같이 쓰면 의미 중복 아닌가? 하면서. 여태 아무 생각 없었지만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계속 신경 쓰인다.
[스팍/커크 영픽 추천] You Could Call It Love
You Could Call It Love by toyhto
45790 words
5년 탐사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머물며 우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던 커크의 집에 본부에서 연구를 하느라 바쁘던 스팍이 찾아온다. 스팍은 커크가 엔터프라이즈의 함장으로서 다시 한 번 5년 탐사를 나가게 되었고 자신은 연구 때문에 커크와 함께 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한다. 커크는 스팍을 데려가기 위해 스팍에게 결혼을 제안하고 스팍도 이에 동의한다. 그러나 스팍을 승선시키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던 이 결혼이…
아, 오랜만에 번역하고 싶은 픽을 만났다 ㅠㅠㅠㅠㅠㅠㅠ 내가 좋아하는 여러 클리셰 중 하나인 ‘선 결혼/후 연애’ 크으~!! 소재로 먹고 들어가는데, 육체적 묘사보다 감정 중심 묘사를 선호하는 것조차 내 취향이야… 그냥 다 내 취향이야 ㅠㅠㅠㅠ 좋은 부분이 많아서 발췌 번역도 힘들었다 ㅠㅠㅠㅠ 이 장면도 좋고, 저 장면도 좋고 ㅠㅠㅠㅠ
이 픽은 TOS의 스팍/커크를 상정하고 쓴 건데, 내가 파는 AU 스팍/커크로 봐도 전혀 문제 없었다. 나와 같은 클리셰 성애자들이라면 분명 좋아할 픽!!! (작가의 모국어는 핀란드어인데, 영어를 캐잘함…)
+
“함장님?”
스팍의 진지한 목소리에 짐은 의자에 앉아 창밖으로 바라보던 밤하늘과 그곳 어딘가에서 스팍과 함께 두던 체스 시합을 생각하느라 여전히 현관에 선 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부르지 마.”
짐이 분위기를 풀어보려 웃었다.
“이제 난 네 함장이 아니잖아.”
“엄밀하게 따지면 그 말이 사실이겠지만 전 저희 관계를 고려해 말씀드린 겁니다. 아직도 제가 모시는 함장님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
짐은 그 문제를 나중에 따지기로 했다.
I cannot stop thinking about you as my Captain.
My Captain. 스팍이 말하면 유난히 더 로맨틱하게 들리는 말.
+
“짐.”
스팍은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복도에 서 있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결혼은 중지시키죠.”
짐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집에 도착한 건 고작 3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짐도 아직 충분히 진정한 상황이 아니었지만 당황한 스팍을 이대로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스팍.”
짐이 자세를 바로하고 스팍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리 관계가 결혼할 만큼 친밀하지는 않다는 뜻이야?”
스팍이 짐을 노려보았다.
“함장님,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닙니다.”
“그럼, 나 말고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다는 거야?”
“절대 아닙니다, 함장님. 하지만…”
“아니면 다시 한 번 5년 탐사에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바뀌었다는 건가? 지구에 남고 싶을 수도 있고, 다른 함장 휘하에서 근무하고 싶을 수도 있지.”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스팍이 급히 숨을 삼켰다.
(중략)
“스팍. 내가 너 없이 출항했으면 좋겠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 나랑 결혼하는 게 싫은 거야?”
스팍은 체스에서 졌을 때와 같은 표정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함장님. 싫지 않습니다.”
“다행이야. 나랑 결혼하기 싫다고 말하지 않으면 상황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건 알겠지?”
짐이 숨을 멈췄다. 스팍이 짐을 바라보았다. 짐도 스팍을 바라보았다. 실내는 숨 막힐 정도로 고요했다. 스팍에게 ‘당신과 결혼하고 싶지 않습니다, 짐’이라고 말할 충분한 시간을 줬음에도 스팍의 입이 굳게 다물어진 것을 본 짐이 입을 열었다.
“됐어, 그럼.
거짓말을 못해서 순순히 대답하는 스팍이 사랑스럽다 ㅠㅠㅠㅠ 커크, 이 복 받은 녀석 ㅠㅠㅠㅠ
+
“본즈?”
“내가 있다는 걸 기억해 줘서 참 고맙다.”
본즈가 한숨을 쉬었다.
“스팍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냅다 입술 박치기부터 해서 스팍이 놀란 거야, 아니면 허락 받고 한 거야?”
“물어는 봤지. 입 맞출 테니까 싫으면 물러나라고 말했다고.”
본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스팍도 네가 입 맞춰 주길 바란 거네.”
“아니야.”
짐이 얼굴을 구겼다.
“아니야?”
본즈가 눈썹을 잔뜩 구기며 되물었다.
짐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음, 그랬으면 스팍의 표정이 어땠을지 안다고. 근데 아니었어.”
“스팍이 거절했어?”
“아니. 근데 스팍도 나한테 입을 맞추는 게 아니라 그냥…”
“짐, 환장하겠다. 네가 입 맞췄을 때 스팍이 어떻게 했는지 말할 생각을…”
“아무 것도 안 했어.”
“음, 스팍답네.”
본즈가 팔짱을 꼈다.
“짐, 묻자마자 후회할 질문이라는 건 아는데, 의사로서 안 물을 수가 없다. 입 맞추니 좋든?”
짐이 눈을 깜박였다.
“어떻게 그런 걸 물어.”
“왜 못 물어. 그리고 물어봤잖아. 대답해.”
“그냥 걔 입술에 닿은 거야. 내 입술이.”
“입맞춤이네.”
“진짜 잠깐이었어. 걘 느낌도 없었을 걸.”
“짐, 아, 빌어먹을. 너 평소보다 상태가 더 이상해. 그러니까 네가 입을 맞췄는데 좋았다는 거잖아. 그러면 된 거지.”
“좋았다고는 안 했어.”
본즈가 한숨을 쉬며 눈썹 두 개를 치켜 올렸다.
“진짜 순식간에 끝났어. 좋았는지 어땠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래. 내가 아주 천천히 말해줄게. 네가 스팍한테 입을 맞추고 싶었고 스팍도 네게 입을 맞추고 싶었던 거면 네가 좀 놀랐다는 것 말고는 아무 문제도 없어. 그러니까 이제 가서 스팍이랑 얘길 하든가 해.”
“스팍이랑은 얘기 못해.”
“일단 내 의무실에선 나가라고. 하루 종일 여기에 붙어 있냐.”
짐이 일어섰다.
“그래. 근데 본즈. 내가 스팍한테 입을 맞췄다니 그게 믿어지는…”
“믿어지니까 잘 가라.”
클리셰라면 환장하는 본즈가 나와줘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내가 실수하면 알려줘.”
짐이 손끝으로 스팍의 손마디를 문질렀다.
“조금도 실수하실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함장님.”
함장님이라, 짐이 생각하며 손바닥이 천장을 향하도록 스팍의 손을 뒤집었다. 그래, 좋아.
“조금도? 정말? 확률로 따지면 어느 정도지, 연구 장교?”
“엇…”
스팍이 입을 열었다. 짐은 손끝으로 스팍의 손금을 따라 그렸다.
“가능성은 72… 하고도… 어…”
“뭐라고? 연구 장교?”
“저는… 정확한 가능성을 말씀 드리기… 어렵습니다. 지금은요.”
“안타깝네.”
(중략)
“그때쯤이면 저도 침대로 갈 겁니다. 잠들기 전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군요. 함장님이 새로운 시간 왜곡 이론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전부터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그래.”
Captain이 아니고 Sir인데 어떻게 옮겨 ㅠㅠㅠㅠ 아무튼, 원래 금욕적인 친구가 흐트러지는 모습은 사람을 환장하게 하는 법. 이 소설에서 제일 에로틱한 부분을 시작 부분만 옮겨봤다. 커크와 스팍이 이성 잘 챙기며 서로를 위하려고 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근데 이성을 너무 잘 챙겼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에로틱하고 훈훈한데 웃겨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 분위기 어떡할 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스팍/커크 영픽 번역] So Here We Are (5장: 스팍의 이야기 -1-)
예상대로 캠퍼스에는 소문이 파다했다.
짐은 생도들이나 강사들 사이에서 무엇이든 뛰어나고 카리스마 넘치며 사회적인 학생으로 약간 유명했다. 강사들 사이에서는 우수한 학생으로 통했다. 어린 생도들 사이에서는 다가가기 쉬운 상급생으로,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는 모두의 친구이면서 잘생긴 외모 덕에 ‘심장 파괴자’로도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현재 짐과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친구가 친구 이상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어째서 그런 소문이 퍼졌는지 스팍은 알지도 못했고 의아해하지도 않았다. 실제 증거가 있어서라기보다 인간관계 속에서 흥밋거리를 만들어내려는 가벼운 말들이 그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문이 났다고? 무슨 소문? 어쩌다?”
짐은 대수롭지 않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내색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스팍은 뒷짐을 지고 짐과 나란히 걸었다.
“소문이 난 지는 벌써 몇 달이나 됐어, 짐. 다른 사람은 다 알아. 멍청한 너희 둘만 여태 몰랐지.”
짐과 나란히 걷던 또 다른 인물인 맥코이가 눈을 부라렸다. 짐은 스팍에게 둘의 변한 관계를 맥코이가 눈치 챘다고 전달해 두었다. 맥코이의 눈치가 귀신같다는 걸 짐이 간과한 덕분이었다. 어쨌든 짐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맥코이였다. 둘은 이들의 관계가 업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오해를 막기 위해 맥코이 외의 사람에게는 둘의 관계를 알리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스팍이 그런 사적인 문제를 드러내기 꺼린다는 건 두말 하면 잔소리였다.
스팍이 짐과의 관계를 공개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맥코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당연히 말 안 했지. 말해서 뭐하게?”
맥코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으르렁댔다.
“뭘 바란 거야? 맨날 둘이 붙어 다니는데, 그럼 소문이 안 나냐?”
스팍도 다른 생도들이 그들 곁에서 소곤거리고 흥미로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등 이상하게 행동하는 것을 느끼긴 했다. 하지만 스팍은 그런 행동들이 그저 스타플릿의 영재인 저 유명한 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를 보고 하는 행동일 거라고 생각해 왔다. 지금 이 순간 신체검사를 위해 체육관으로 향하는 그들을 보고 사람들이 실제로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지 알고 나니 전보다 더욱 편치 않았다.
짐은 걷는 내내 물병을 공중에 던지고 받았고, 맥코이는 평소처럼 현 상황이 얼마나 마음에 안 드는지 떠들었다. 짐은 맥코이를 달래기 위해 “음”이나 “어” 등의 단답형 질문으로 대답하며 가끔 스팍을 향해 지친 듯한 미소를 지었고, 스팍은 그저 눈썹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일 단계 신체검사는 세 가지 종목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는 장애물 코스를 최대한 빠르고 효과적으로 통과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10킬로미터 달리기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백병전이었다. 다음 날 진행되는 이 단계 신체검사는 생도 각자가 개인의 성과를 확인하게 되어 있었다.
짐은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지만 특히 신체적 능력은 그가 유독 뛰어난 부분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을 더욱 몰아붙이고 경쟁하며 육탄전에서 승리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그 속에 무척이나 인간적이고 어쩌면 인간 본연의 즐거움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고 보았다.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스팍은 일 단계 신체검사가 조금 시시하다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차였다.
그래도 참여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생도들과 함께 나란히 서서 그들과 똑같이 운동복으로 지급된 회색 티셔츠와 운동복 바지를 입고 장애물 코스 앞에 섰다. (그런 것을 보면 지구의 군사 훈련이라는 것은 거의 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스팍은 지휘관의 지시를 건성으로 들으며 굳은 자세로 선 다른 생도들을 따라했다.
곁에 선 짐에게서 강렬할 정도의 흥분감이 느껴졌다. 출발을 앞둔 그로서는 당연히 예상되는 반응이었다.
“그럼 반대쪽에서 봐.”
짐은 벌칸인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짐이 장난꾸러기처럼 씩 웃었다. 스팍은 볼에 피어오르는 열기를 감추려 애썼다.
무엇이든 경쟁하려고 드는 짐은 매력적인 데가 있다고 생각했다.
출발 명령이 떨어지자 스팍도 신체검사에 온전히 집중했다. 해야 할 일을 앞둔 그는 늘 그랬다. 스팍은 주변은 신경 쓰지 않고 눈앞에 나타나는 장애물을 통과해 나갔다. 벽도 손쉽게 넘었고 (당연히 코스 진행을 방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이 찬 커다란 해자도 마치 가젤과 같은 스피드로 남들보다 우아하게 뛰어넘었다.
(하지만 맥코이는 뒤에 처져 있었다. 진흙탕에 빠진 신발은 발에서 벗겨져 나갔다. “빌어먹을, 내가 이러려고 들어온 게 아니라고.”)
예상대로 결승점에 제일 먼저 도착한 것은 진흙을 뒤집어쓰긴 했어도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스팍이었다.
아니,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에 흠뻑 젖고 진흙 범벅이 된 짐이 승기에 찬 얼굴로 스팍을 향해 씩 웃었다. 하얀 이빨과 파란 눈동자는 얼굴을 뒤덮은 시커먼 진흙과 대비되었다. 짐은 가쁜 숨을 쉬며 가슴팍에 팔짱을 꼈다.
스팍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스팍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짐이 웃었다.
“조금 늦은 것 같다, 스팍?”
“너보다는 조금 늦은 것 같군.”
스팍이 고개를 돌려 거의 도착한 생도들을 쳐다보았다.
“다음 코스로 가 볼까. 거기서도 내가 이겨줄게.”
짐이 웃더니 다음 코스로 흥겹게 폴짝거리며 뛰어갔다.
스팍은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낯선 감각에 사로잡혔지만 가까스로 미소를 참아냈다.
“그건 두고 봐야지.”
짐이 강렬한 푸른 눈을 반짝이며 스팍을 쳐다보더니 짓궂게 웃었다. 스팍에게 자각이 있었더라면 둘이 서로 애정 놀음을 하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짐은 마지못해 끙끙대며 벽을 넘는 맥코이를 쳐다보았다. 짐이 웃다가 기운이 빠지는 듯 고개를 뒤로 제꼈다.
“기다려줘야 할 거야. 쟤를 저러고 진흙탕에 둔 채로 먼저 가면 죽이려고 들 걸.”
말을 마치며 짐은 운동 능력이 부족한 맥코이가 재미있는 듯 또 다시 아이처럼 웃었다.
스팍은 맥코이가 짐의 건강에 보이는 관심과 현재 진흙에 뒤덮인 짐의 상태를 고려해 봤다. 맥코이는 이런 상황에서 결론을 속단하는 경향이 있었다. 저렇게 진흙에 뒤덮인 짐을 보면 파상풍에 걸릴 거라고 고래고래 화를 낼 것이 빤했다. 맥코이를 기다리는 게 논리적인 선택이 아닐 수 있었다.
“짐, 지적할 필요는 없겠지만 넌 정말 놀라울 정도로 더러워.”
짐은 눈에 익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짐이 스팍을 보더니 눈썹을 씰룩거렸다.
“어, 아마 상상 이상일 거야, 스팍.”
스팍이 그 말에 눈썹을 들어 올렸다.
“오해한 것 같은데…”
짐이 입술을 깨물더니 다음 코스로 뛰어갔다.
“나도 알아, 스팍. 안다고.”
어쩔 수 없이 스팍도 짐의 뒤를 쫓았다.
두 번째 코스에서 둘은 자연스레 남들을 훨씬 앞질러 달렸다. 스팍은 더 빨리 달릴 수 있으면서도 짐과 나란히 달렸다. 둘은 벌칸인인 스팍으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찬바람이 부는 해변을 나란히 달렸다.
해변에는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거의 아무도 없었다.
“굳이 나한테 발맞출 필요 없어.”
짐은 중간 중간 숨을 내쉬며 말했다. 짐이 뛰는 속도와 거센 바람에 모래 빛깔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나도 알아. 하지만 지구력 테스트에선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논리적이잖아.”
짐이 꾸준히 달리고 있다는 모욕적 언사에 씩 웃었다. 스팍은 그런 말이 짐을 더욱 몰아붙일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짐의 볼이 달아올랐다. 스팍은 짐이 지금처럼 얼굴을 붉힌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이 짐에게 입을 맞추고 짐의 긴장이 풀렸을 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짐은 항상 스팍을 놀라게 하는 방법을 아는 듯 했다. 마치 스팍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듯 짐이 헐떡이며 말했다.
“너 얼굴이 녹색빛을 띠는 걸.”
“내 피는 녹색이야, 짐.”
“알아. 그냥 보기 좋다고.”
짐이 일부러 속도를 높인 스팍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더 빨리 달리며 대답했다.
“네가 녹색빛을 띠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 우린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지만.”
스팍은 갑자기 짐이 자신의 손에 입을 맞췄던 그날 밤 기억이 떠올라 헉하고 숨을 내쉬었다. 스팍은 마치 지쳐가기라도 하는 듯 거친 숨을 몇 번 더 내쉬며 자신의 행동을 감추었다.
짐은 그 접촉이 얼마나 은밀한 행위인지 모를 것이다.
짐이 미소 지었다.
“지쳤어?”
“아니.”
스팍은 짐의 경쟁심을 자극할 것을 알면서도 솔직히 대답했다.
“그럼 마지막 1킬로미터도 힘내자고.”
짐이 헉헉거리면서 급격히 속도를 높였다. 인간치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실력을 보여줘.”
하지만 스팍은 벌칸 혼혈이었다. 스팍이 빠르게 튀어나갔다. 둘은 단거리 달리기를 하듯 내달렸다. 짐은 간격을 벌리는 스팍을 보며 활짝 웃었다.
“자랑하는 거야?”
짐이 소리쳤다.
스팍이 속도를 늦추고 정말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짐을 돌아보았다.
“보여 달라고 했잖아.”
짐이 헉헉대며 웃었다. 티셔츠는 땀과 바닷물에 젖어 버렸고 가슴은 빠르게 오르락내리락 했다.
“넌 항상 뽐내는 경향이 있어.”
“그럴 의도는 없었어.”
스팍도 이제는 호흡이 조금 가빴다. 짐의 곁을 떠나지 않아도 충분히 운동에 힘쓸 수 있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
교관이 전력질주를 하며 들어오는 둘의 시간을 쟀다. 스팍은 쉽게 속도를 줄이며 걸었지만 짐은 모래밭에 벌러덩 드러누워 헐떡였다.
“장시간 운동한 뒤에도 계속 움직여 주는 게 좋아.”
스팍은 천사 모양을 만들 듯 팔을 휘적거리는 짐을 내려다보았다. 숨이 가빠 말하기 힘든 짐은 손사래로 대답을 대신했다.
짐이 겨우 몸을 일으켰다. 다른 생도들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스팍은 형체를 키우며 결승선으로 다가오는 생도들을 바라보았다. 스팍이 짐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당연히 곁에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짐은 이미 바다를 향해 이동한 상태였다. 짐은 이미 바닷물로 축축해진 운동복을 무의미하게 걷어 올린 채였다. 짐은 마치 도시와 바다를 품에 안 듯 고개를 재끼고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아직도 가쁜 숨을 내쉬느라 어깨가 들썩거렸다. 짐의 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짐은 열기를 식히려 몸을 굽혀 바닷물을 떠 얼굴에 끼얹었다.
스팍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
If Spock knew better, he’d say they were flirting.
스팍에게 자각이 있었더라면 둘이 서로 애정 놀음을 하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처음에 짐이 스팍에게 추파를 던진다고 해 놨는데 옮겨놓은 걸 읽다가 스팍이 자각하는 것과 짐이 추파를 던지는 게 무슨 관계인가 싶어서 원문을 보니 주어가 they였다. 역시… 번역문이 논리적으로 이상하면 오역이라니까;;
내 감각으로 flirt는 우리말의 ‘추파를 던지다’보다 일상적인 느낌인데 ‘추파를 던지다’보다 일상적인 표현을 잘 모르겠다. ‘꽁냥거리다’라는 표현이 떠올랐지만, 이런 표현은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말이기도 하지만 스팍이 쓸 리도 없는 표현이고, ‘연애질’이라는 표현 역시 본즈라면 모를까 스팍이 쓸 법한 표현은 아니다. 고민하며 여러 사전을 뒤지다 옥스포드 사전의 어원 설명에 ‘원래는 까불거리는 행동을 나타냈지만 나중에는 애정을 담은 장난기 섞인 행위를 가리킴’이라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애정 놀음’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제일 좋아하는 챕터라 중간에 끊고 싶진 않았지만, 다 옮기길 기다리다간 언제 올릴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끊었다. 일단 음양사를 끊어야…;;;
(이전편 링크)
[스팍/커크 끄적끄적] Caught in Storm 01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서류로 파트너십 신고만 한 건데 그런 말까지 들으니 민망하네. 아무튼 고마워.”
정말로 끝이었다. 여러 사건 사고를 겪으며 원숙미를 갖춘 제임스 T. 커크 함장은 여전히 소년처럼 웃었다. 함장이 결혼 특별 휴가로 자리를 비우는 며칠 간 엔터프라이즈호는 요크타운 행성 기지에서 보급 겸 점검을 하기로 했다. 일등 항해사인 스팍은 제임스와 상륙 허가 계획을 논의하고 함장실을 나왔다. 엔터프라이즈호의 인공 중력이 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스팍 중령님.”
“마커스 대위.”
몸을 돌리자마자 마커스 대위와 마주쳤다. 고위 장교들의 선실이 위치한 갑판의 복도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 조용했다. 엔터프라이즈호의 하얀 선체 덕에 마커스 대위의 금발 머리가 더욱 돋보였다. 스팍이 한 발짝 비켜섰다. 마커스 대위가 함장실의 출입 허가 버튼을 눌렀다.
“안 그래도 바쁘실 텐데 저희 때문에 일이 늘어서 죄송해요.”
함장을 곁에서 보좌하며 원활한 임무 수행을 돕는 것은 일등 항해사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임신 중인 과학부 소속 장교의 근무 시간을 조정하고 인력배치를 하는 것도 수석 연구 장교의 일이었다. 스팍은 캐롤 마커스 대위가 사과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스팍이 눈썹을 들어올렸다. 마커스 대위가 살짝 미소를 짓는 사이에 함장실 문이 열렸다. 마커스 대위가 들어가고 다시 함장실 문이 닫혔다.
[스팍/커크 영픽 추천] I Just Met You and This is Crazy
I Just Met You and This is Crazy by luck_and_miracles
29,490 words
스팍은 트프링과의 본딩을 피하기 위해 전 여자 친구인 우후라를 통해 알게 된 게일라의 생일파티에서 만난 짜증나는 남자, 짐을 남편이라고 부모님께 소개한다. 황당함을 금치 못하던 짐은 절박해하는 스팍을 돕기로 하고 부부 흉내를 내면서 점점 서로에게 끌리는데…
이렇게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도 오랜만인 듯? 게다가 이렇게 완벽하게 전형만 밟으며 미끄러지지 않는 소설도 흔치 않은데 읽으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짐이랑 스팍이 드디어 만났나보네.”
주방에 울려 퍼지는 게일라의 목소리에 짐과 스팍이 노려보기를 멈췄다.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를 피해 주방 아일랜드에 기대 피식 웃는 게일라를 향했다.
“둘이 만나면 서로 원수가 되든가 아주 친한 친구가 될 줄 알았어. 보아하니 첫 번째 경우잖아!”
“게일라, 생일 축하해!”
짐이 웃자 게일라가 눈을 흘겼다.
“깜짝 생일 파티에 늦게 나타나서는 바로 음식을 먹으러 가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 지미.”
짐이 차가운 눈으로 스팍을 노려보았다.
“저 뾰족 귀 녀석이 여기서 막지만 않았어도 그랬겠지.”
“뾰족 귀? 그건 비하의 표현입…”
“아, 미안, 저 벌칸인 좀비 녀석이 여기서 막지만 않았어도 그랬을 거야.”
“좀비라는 건 벌칸에도 다른 종족에도 없습니다.”
“이봐요…”
“알았어, 알았어, 둘 다 그만해. 생일 주인공의 명령이야.”
짐이 제대로 꾸중을 들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데 반해 스팍은 고개를 쳐들며 짐을 무시했다. 게일라가 한숨을 쉬었다.
“스팍은 거실로 가줘, 지미가 베이컨 좀 먹게.”
게일라의 말대로 주방을 나서면서 스팍이 곧장 음식에 고개를 쳐박는 못 견디게 싫은 남자를 마지막으로 일별했다.
“재밌었어.”
스팍이 눈썹을 찌푸렸다.
“나라면 그렇게 말 안 할 겁니다.”
“음, 짐 커크에 대해 너무 일찍 결론을 내리지 마. 좋은 사람인데 오늘은 초과 근무를 해서 짜증이 났을 거야. 오지도 못 할 뻔했다고.”
“참 안타까운 일이군요.”
게일라가 팔짱을 꼈다.
“자기도 오늘따라 유난히 투덜거리는 것 같네. 내일 벌칸에 가는 것 때문에 그래?”
– – –
모든 로맨틱 코미디는 이렇게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안 좋은 첫인상을 갖고 시작하더라.
어머니가 자신을 발견하고 웃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 늦기 전에 행동해야했다. 해답을 찾으려 셔틀 플랫폼을 둘러보다가 짐에게 시선이 멈췄다. 짐은 전송대에서 고작 몇 피트 떨어진 곳에서 집중하느라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 순간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그때도, 수년이 지난 지금 돌아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계획을 생각해 낸 건 니요타와 게일라가 보여주었던 수많은 지구의 영화 때문이거나, 그저 자신의 직감 때문이었으리라. 다만 팔을 뻗어 짐 커크를 끌어당기고 입을 맞출 땐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만은 확실했다.
제 입술에 스팍의 입술이 맞닿은 느낌에 짐이 푸른 눈을 크게 떴고 스팍은 짐에게서 전달되는 생각을 막으려 정신막을 최대한 높였다. 두 사람의 입맞춤은 그저 입술 두 개가 맞닿은 것에 불과했지만 두 사람의 전신을 휘감는 은근한 간질거림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스팍이 먼저 몸을 떼자 짐은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음… 이건 뭐죠?”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기보다 그저 황당해하는 말투였다. 스팍은 그 사실에 감사했다.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앞으로 5분간은 내가 지시에 따라 내 말대로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요?”
“당신이 못 견디게 싫은 사람인 건 사실이지만 동정심이란 게 있는 사람이란 것도 압니다. 게다가 두 시간이나 내 어깨에 기대서 침을 흘리고 잤으니까 인간 식으로 말하자면 나한테 빚이 있는 셈이죠.”
짐이 눈을 흘겼다.
“좋아요. 근데 입은 맞추지 말죠. 어젯밤에 이빨 닦고 그 뒤론 한 번도 안 닦았으니까.”
“그거야 나도 아주 잘 알죠.”
“이봐요!”
– – –
이 둘의 대화가 너무 웃겨서 참을 수가 없다. 그나저나 못 견디게 싫은 사람이 두 시간이나 제 어깨에 기대서 침까지 흘리며 자게 두는 게 정상인가? ‘-’?
짐이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었다.
“잘 모르겠어요, 스팍. 저 여자랑 결혼하기 싫은 이유는 알겠어요. 성격 한 번 끝내줄 것 같은 여자네. 근데 나도 당신 이제 막 만났어요. 이제 막 당신을 만난 사람더러 당신 남편이 되어 달라니요. 정말 정신 나간 소리 아닙니까, 더욱이 벌칸인이 할 말 치고는.”
“그래도 인간 혼혈이니까요.”
그 말투에서 미처 하지 않은 ‘안타깝게도’란 말을 알아듣는 건 벌칸인의 텔레파시가 없어도 가능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짐도 상대에게 미쳤다고 말하며 떠났으리라. 하지만 짐은 스팍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두 사람이 제아무리 다르다 해도, 스팍이 제아무리 부정한다 해도 짐은 두 사람이 비슷한 면에서 어긋난 데가 있다고 느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그래서 스팍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좋아요. 기가 막히고 말도 안 되는데다 정신 나간 짓이지만 날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그런 짓에 환장하는 걸 알거든요. 당신 남편을 찾은 것 같네요, 스팍 씨.”
스팍이 온전한 인간이었다면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리라.
“고맙습니다, 커크 씨. 불편하게 한 데에 대해서는 다 보상하겠습니다.”
“신경 쓰지 말아요, 돈은 필요 없으니까. 그리고 짐이라고 해요, 우린 결혼한 사이잖아요, 여보.”
짐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스팍이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후회할 일을 저질렀네요, 아닙니까?”
“잘 아시네요.”
– – –
아, 진짜 이 두 사람 대화 너무 재밌어. 짐은 팬픽에서 흔히 보이는 캐릭터인데, 묘하게 허둥지둥 제정신을 못 차리는 스팍을 보는 게 진짜 꿀잼이다.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팍을 향한 감정이 커져가고 있었다. 연애 감정이. 매일 아침 서로의 곁에서 깨며 사춘기 청소년처럼 굴어서일까. 말이 되는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벌칸인들은 배우자와 평생을 약속하기 때문에 스팍과 함께 한다는 건 모 아니면 도였다. 짐은 전혀 그런 남자가 아니었지만 스팍과 함께라면 혹시 아는가, 그럴 가치가 있는지. 하지만 한편으로 짐이 정신이 나간 건지도 몰랐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스팍과 거리를 두는 게 논리적이었다.
“젠장, 이젠 생각도 그 사람처럼 하네. 게다가 이젠 혼잣말까지 하고.”
– – –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과 평생을 생각한다는 것, 놀라운 일이긴 한데 의외로 없는 일도 아니니까.
“지금 무슨 말인지 생각하고 한 거예요?”
짐이 악을 썼다.
“기가 막히네, 내가 이런 사람을… 아니, 됐고. 당신 지금 선을 심하게 넘었어요. 우린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그러니까 난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면 누구와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고요.”
“그럼 당신을 막아서 미안하게 됐군요.”
스팍이 비아냥거렸다.
“다시 미첼 씨에게 돌아가서 아무 의미도 없는 성관계를 하시죠. 전 어머니께 내 남편이 지금 바쁘다고 전할 테니까.”
“죄책감 들게 하지 말아요, 이 나쁜 벌칸 놈아! 그리고 난 개리든 누구든 마음에 드는 사람이랑 섹스해야겠거든요!”
“막지 않겠습니다.”
“좋아요!”
“좋습니다.”
두 사람이 말싸움을 멈췄을 때 둘은 얼굴을 바짝 맞대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씩씩대는 스팍이 화가 나서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스팍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짐이 다른 사람, 특히 개리 미첼과 함께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가 짐에게 손을 대는 모습을 보니 가짜 남편에게 다가가 잡아끌지 않을 수 없었다. 논리적이지도 않고 벌칸인답지도 않았지만 짐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길 원했다. 그의 아름다운 미소도, 빛나는 눈도, 풍부한 지식과 마음 씀씀이까지. 스팍은 제멋대로 짐의 모든 부분을, 다른 사람도 아닌 오직 짐만을 원했다.
– – –
아, 이런 클리셰. 진짜 좋아.
[스팍/커크 영픽 추천] Everything Stays
Everything Stays by coffee666
18,409 words
엔터프라이즈호 기관실에서 입은 사고로 짐은 일시적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짐과 결혼한 지 3년이 된 스팍은 큰 충격을 받지만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도 짐이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어 크게 안도한다. 엔터프라이즈호는 짐의 기억을 찾기 위해 신 벌칸으로 향하고 그 동안 두 사람은 처음 연애를 시작하던 때처럼 조심스레 서로에게 다가간다.
이게 왜 또 묵은지처럼 내 북마크에만 있었나. 기억상실증이지만 앵슷 없고 서로에게 조심스레 다가가는 모습이 그저 예쁘기만 하다.
“그럼…”
짐은 태연하려 노력했다. 어쨌든 술루는 뭐든 물어도 좋다고 했다.
“스팍 말인데… 그 사람은 뭐 할 거래? 그러니까 싱글이야? 정말 끝내주던데.”
술루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해서 짐은 저러다 떨어지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됐다.
“그 소리 왜 안 하나 했네요, 누가 남편 아니랄까봐!”
“그래!?”
– – –
내가 술루라도 배가 찢어지게 웃었겠다. 기억상실증이래서 걱정했더니 그 와중에도 엄청 조심스레 본인의 남편에게 수작 부려볼 생각부터 하다니. 아이고, 상사 둘이 참 뜨겁게도 사랑하네요.
짐이 고양이의 귀 뒤를 긁어주며 씩 웃었다. 무릎을 통해 전해지는 골골거림이 모든 걸 흐리게 만들었다. 어쩌면 스팍과 점점 가까워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지난 사흘 내내 스팍은 짐이 익숙한 장소들로 데려다 주었다. 내내 둘은 손을 잡고 다녔다. 하지만 짐은 그 이상 진도를 나간다고 생각하면 겁이 났다. 스팍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저… 가끔 다른 사람의 남편과 연애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 때가 있었다.
– – –
이 소설 최대의 앵슷.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긴 하다.
[스팍/커크 영픽 번역] There is a Reason (1장 느릿한 시작)
화가 안 난다니 어떤 기분이야? 마음이 안 아프다니 어떤 기분이냐고. 널 낳아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복수하고 싶지도 않아?
씁쓸한 말이었다. 뭔가 반응해주길 바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스팍에게 악을 쓰긴 했지만 그 악다구니는 스스로에게 고통스럽게 되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엔터프라이즈호의 함장이 된 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이 청명한 날에 남자는 그 이유를 내려다보았다.
위노나 M. 커크
사랑스런 아내이자 어머니
USS 파라거트 일등 항해사
임무 중 사망
“엄마”
이 순간 남자가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남자는 알았다. 워프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남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음을 알았다.
“나는 네 아버지 뒤를 따를 거야, 지미. 우주에서 죽으면 네 아버지랑 늘 함께 있겠지. 막을 생각은 하지도 마.”
어머니가 늘 하던 말이었다. 어머니는 소원을 이뤘다. 블랙홀이 한 때 벌칸이었던 행성 근처를 전부 삼켜버렸고, 시신은 한 구도 찾지 못했다. 내세가 있다면 그게 어디든 위노나 커크와 조지 커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남자의 부모님은 순직했다. 우주가 이제 남자의 차례라고 하는 날이 온다면, 남자도 그러길 바랐다.
남자는 유리로 된 묘비를 바라보았다. 수백 개는 되는 묘비가 있었다. 스타플릿 사관학교 사령부 건물을 둘러싼 작은 공원은 묘지로 변했다. 수개월 전에 전혀 다른 목적으로 벌칸 채석장에서 가져온 돌로 만든 검붉은 기둥은 작은 언덕 위에 의연히 서 있었다. 한 면에는 벌칸어로 된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북반구에는 봄이 완연했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해가 내리쬐는 묘지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몇몇 아가씨는 나무 옆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다. 남자는 그 모습에 마음이 쓰였다. 지나가다 아무 묘비에 있는 이름을 읽어도 거의 다 남자가 아는 사람일 터였다. 세 줄 너머 다른 급우 두 명 곁에 안치된 명랑한 오리온 아가씨인 게일라와는 몇 번 잠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남자는 경사진 공원을 내려다보았다. 이때까지 남자의 삶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정말 아무런 의미도. 이 모든 사람들 때문에, 벌칸에서 죽은 모든 사람들 때문에 답지 않게도 남자는 우울했다. 이제 현실이 된 사실이 남자를 덮쳤고 조금 두렵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만두지 못했다.
“커크?”
남자가 돌아보았다. 밝은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우후라가 손으로 해를 가리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우후라”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몸을 돌렸다. 우후라와 달리 남자는 여전히 붉은 교복을 입은 채였다. 우후라의 왼편에는 검은 정복을 입은 스팍 중령이 섰다. 스팍은 뭐라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어두운 눈동자로 커크를 바라보았다. 나라다를 파괴한 뒤로 커크는 스팍의 태도가 변했으면 했지만 굳은 스팍의 어깨를 보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커크가 한 말 때문에 여전히 커크를 목 졸라 죽이려 해도 스팍이 커크 탓을 하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커크는 다시 우후라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목이 메었다.
“게일라 때문에 많이 힘들겠다.”
우후라는 어두운 표정으로 친구의 이름이 새겨진 반짝거리는 유리 묘비가 있는 언덕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너도 게일라랑 친했잖아. 사실 나 조문 온 거야.”
“나도 그래.”
우후라가 다가와 커크 바로 앞에 놓인 묘비를 바라보았다. 묘비를 읽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우후라는 눈을 크게 뜨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어떡해, 힘내.”
커크는 엄마의 묘비를 돌아보았다.
“그래, 고맙다.”
어깨 너머로 본 스팍의 얼굴에 이해했다는 표정이 스쳤다. 미미한 변화였지만 연민이나 어쩌면 공감을 표하기에는 충분했다.
“Tushah nash-veh k’du.”
커크는 약간 인상을 구겼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당신과 함께 슬퍼하겠습니다.”
스팍이 번역해 주었다.
“아”
커크가 헛기침을 했다. 과하게 정중한 듯 했지만 벌칸인은 감정적인 문제를 그런 식으로 정리하는 모양이었다.
“고마워.”
스팍이 안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게일라에게도 내 얘기 해 줘.”
우후라를 바라보던 커크가 침묵을 깼다. 우후라는 엷게 웃었다.
“그럼 중령, 자네도 이만.”
“네, 함장님.”
커크는 두 사람과 헤어졌다. 언덕을 내려가는 커크의 구두에 젖은 잔디가 들러붙었다.
…
화가 안 난다니 어떤 기분이야? 마음이 안 아프다니 어떤 기분이냐고. 널 낳아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복수하고 싶지도 않아?
스팍이 어렸을 때 많은 아이들이 스팍을 괴롭혔다. 그들은 스팍이 가진 약한 인간성을 결점이라고 했다. 스팍이 가진 모든 유전적, 환경적 문제의 원인이 그의 어머니라고 생각했다. 커크, 그러니까 제임스 티베리우스 커크는 그 반대였다. 커크는 스팍이 가진 반쪽짜리 벌칸인을 싫어하는 인간이었다.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벌칸 아이들에게 익숙해져 있던 스팍으로선 만난 지 채 하루도 안 된 커크가 그 짧은 순간에 불러일으킨 반응이 그들을 대할 때와 참으로 비슷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시신도 없는 어머니 무덤 옆에 선 커크를 보면서 스팍은 현재 커크에게 가졌던 적개심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 말들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였을 뿐 스팍을 상처주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나이 든 자신은 말했다. 이제 스팍은 우후라와 언덕을 오르며 그 말들은 커크 자신이 느끼던 고통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씁쓸함이나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깊은 분노를 느끼기는커녕 스팍은 어렴풋이 커크에게 공감하고 있었다.
“스팍? 괜찮아요?”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던 스팍은 우후라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물론입니다.”
스팍은 잠시 생각했다.
“커크 함장님에 대해 얼마나 압니까?”
“잘은 몰라요.”
두 사람은 평평하게 다져진 언덕 꼭대기에 도착했다. 벌칸에 나라다가 나타난 뒤 일련의 사건이 일어났던 날짜가 수많은 묘비 한 가운데 새겨졌고 작은 분수가 그 위에 흩뿌려졌다.
“내가 알았던 함장님은 그냥 내가 만들어 낸 사람이었나 봐요. 함장님만 관련되면 굉장히 비판적이었거든요.”
우후라를 바라보았다. 당당한 여자였다. 우후라는 자신감도 있고 자기 확신에 차 있었다. 우후라도 스팍만큼이나 성공한 사람이었다. 스팍은 우후라가 덮어놓고 비판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우후라가 천천히 멈춰 서자 스팍은 생각을 떨쳐내며 두 사람 앞에 놓인 묘비를 내려다보았다. 스팍은 게일라를 한 번 밖에 만난 적이 없었다.
스팍이 알기로 커크의 부정을 도운 이가 게일라였다. 게일라는 학적부에는 기재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그 생도… 함장의 범죄를 증언했다. 다른 생도들이 괴롭히는 와중에도 게일라는 놀랄 만큼 차분했던 오리온 여성이었다. 스팍과 마찬가지로 우후라의 룸메이트인 게일라도 편협하고 비열한 인물들에게 종족을 이유로 괴롭힘 당해서 힘들어 한다고 우후라가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어쩌면, 하고 스팍은 드레스에 풀물이 드는 것도 개의치 않고 잔디에 무릎을 꿇는 우후라를 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어쩌면 최근 일어난 일들은 ‘인생은 짧다’는 인간의 표현을 설명해 줄지도 모르겠다고, 어쩌면 커크 함장은 첫인상이 전부인 사람은 아닐지 모르겠다고, 자신이 했던 일을 돌아보니 어쩌면 두 사람 다… 용서 받을 여지가 있는 것 같다고 스팍은 생각했다.
오늘 밤 스팍은 명상을 할 생각이었다. 그때까지는, 스팍은 친구를 생각하며 숨죽여 우는 우후라 곁에서 아무 말 없이 지키듯 서 있었다.
수정해 보니 오역이 상당했다. 어쨌든 예전보다 나아졌으면 다행이다. 그만큼 했는데 안 늘어도 문제긴 하지. I’m sorry는 지금도 옮기기 힘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