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 봐야겠다, 정말

티스토리 때부터 내 블로그를 봐 온 사람 중에는 내가 H.O.T.의 팬이라는 걸 눈치챈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하지 않지만 예전엔 번역할 때 들은 노래를 언급하기도 했는데 그 때 H.O.T.의 팬이나 알 수 있을 노래를 언급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언제였나 검색해 보니 Please don’t touch the Vulcans를 번역할 때였다.

그나저나 검색한 김에 Please don’t touch the Vulcans를 다시 읽어 보았다. 번역을 하면서 워낙 꼼꼼히 많이 읽으니까 번역이 끝난 건 사실 잘 안 보는데 다시 읽었더니 세상에… 난리도 아닐세. AO3에 있는 스팍커크 소설을 추천수로 정렬했을 때 최상위권에 드는 소설을 이렇게 옮겨 놨는데도 짜란다짜란다 해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를 드려야 할 판이다. 영어보다는 한국어로 읽는 게 낫긴 하다지만, 지금 내 눈엔 거슬리는 게 너무 많다. 이렇게 엉망인 줄 그땐 몰랐네. 그때보다 내 번역 실력이 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금 보니 오역이 의심되는 부분도 많고, 한국어가 되다 말아 번역이 다 끝났다고 보기 힘든 문장도 많다. 지금이라도 안 게 다행인가. 짬 내서 교정 봐야겠다, 정말.

오랜만에 볼륨 업!

동생이 현재 판매 중인 노이즈 캔슬링 블루투스 헤드셋 중 괜찮기로 손꼽히는 고오급 헤드셋을 사 준 게 며칠 전. 그 동안 이 헤드셋이 크게 활약할 일이 없었는데 오늘 짜증나는 일이 있어서 씩씩대다 보니 노이즈 캔슬링을 켜고 신나는 노래를 큰 볼륨으로 듣고 싶어졌다. 평소 애용하는 볼륨이 100 중 10이라면 오늘은 100의 기분!!! 효과를 볼 줄이야 알았지만 이렇게 신날수가!! 좋은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찾았다.

덕질로 풍성해지는 나의 (잡)지식

요즘 이상하게 추리소설을 읽으면 잠이 잘 와서 오늘은 조세핀 테이의 ‘루시 핌의 선택’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 초반에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구절이 인용되는데 이게 나도 익숙한 구절이었다.

‘내 꿈을 그대 발밑에 깔았네’

이거…?!

H.O.T.의 팬이었다면 (아마) 익숙할 텐데 혹시나 싶어 예이츠 시의 전문을 찾아보았다.

The Cloths of Heaven

Had I the heaven’s embroidered cloths,
Enwrought with golden and silver light,
The blue and the dim and the dark cloths
Of night and light and the half-light;
I would spread the cloths under your feet:
But I, being poor, have only my dreams;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W. B. Yeats

 

나 가난하여 가진 건 너 하나뿐이었네
그대 발밑에 내 꿈을 모두 다 깔았으니
사뿐히 밟으시길 내 꿈 밟고 가는 이여

– H.O.T.의 Natural Born Killer 중

 

맞네, 맞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예이츠의 시가 인용된 이 부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라 더욱 감회가 새롭다.
내가 덕질을 안 했으면 예이츠의 시를 찾아볼 리가 없는데 덕분에 내가 시를 읽네. 그것도 영시를. 세~상에. 오늘도 내 인생에 덕질은 이롭다. 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나저나 모기 때문에 잠자긴 틀렸다. 젠장.

[스팍/커크 영픽 추천] Scandalous Vulcan

Scandalous Vulcan by Manatees_for_Mystrade
21520 words (Work in Process)

아직 워프 기술도 없고 외계인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지구에 벌칸 제국의 어린 황태자인 스팍이 우연히 조난을 당한다. 별을 관찰하던 꼬마 제임스 커크는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쫓아갔다가 물에 빠져 죽어가던 스팍을 구해낸다. 스팍은 제임스와 의사소통을 위해 마인드 멜딩을 시도하고 둘은 친구가 되기로 한다. 스팍은 곧 벌칸으로 돌아가지만 둘은 이때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는데…

엄청 유쾌한 로맨틱 모험 활극 코미디!!(근데 아직 제대로 된 로맨스는 나오지 않음 ㅋㅋㅋㅋㅋ) 스팍커크가 스타플릿의 일원이 아닌 AU 설정은 즐겨 보지 않는데 이건 읽다가 바닥을 치며 웃었다. 커크의 거짓말 탐지기 장면이 진짜 제일 웃김 ㅠㅠㅠㅠ 내가 추천한 소설 중에서 제일 유쾌하고 요란한 소설이 아닐까.

단 작가의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지 종종 단순한 어법이 틀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게 거슬리는 사람은 못 볼 수도 있다. 나는 읽는 데 무리만 없으면 원래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사람이고;;; 대신 문장이나 단어가 어렵지는 않다. 뭐든 장단이 있다.


1.

“야, 일어나!”

짐의 말에도 소년은 미동이 없었다. 그래서 짐은 소년의 가슴에 머리를 대고 심장 박동을 들으려 했다. 안 돼! 안 돼! 심장이 뛰지 않아!

“이 고생을 했는데 죽는 게 어딨어! 내가 용서 안 해!!”

짐이 간절히 외쳤다. 짐은 두 손을 모아 소년의 가슴 한가운데를 세게 누르기 시작했다. 소년이 물을 조금 뱉어냈다. 겁먹은 검은 눈동자가 짐을 마주 보았다. 아무 예고도 없이 소년은 짐의 손을 쳐냈다.

“진정해. 내가 방금 널 구해줬잖아. 이름이 뭐야?”

짐이 물어도 소년은 그저 멍하니 짐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 뭐야! 이름이 뭐냐니까? 왜 말이 없어? 혹시 말을 못…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거지? 그래, 뭐, 괜찮아. 또 프랑스인인가 보네.”

짐이 중얼거렸다. 소년은 혼란스러운 듯 얼굴을 찌푸렸다. 짐이 크게 심호흡을 하고 안심하라는 듯 웃었지만 솔직히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짐.”

짐이 과한 몸동작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고 이번엔 소년을 가리켰다. 짐이 몇 번이고 이를 반복하자 소년이 입을 열었다.

“짐.”

소년의 억양은 이상했지만 그래도 짐이 듣기엔 좋았다.

“그래, 짐!”

짐이 웃으며 소년의 어깨를 툭툭 쳤다. 소년은 눈에 띄게 몸을 굳히면서도 피하지는 않았다.

“그래, 짐.”

소년이 자신을 가리키며 짐의 말을 따라했다. 짐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 내가 짐. 너는…”

“그래, 짐.”

소년은 태연했다.

“그래. 그럼 지금부터 네 이름은… 바게트라고 하자. 나는 짐이야. 너는 바게트고. 짐, 바게트.”

짐이 자신과 소년을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소년이 얼굴을 크게 찌푸렸다.

“짐… 스팍.”

스팍이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짐이 웃었다. 짐이 냉큼 스팍의 손을 잡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친근한 악수를 했다.

“만나서 반가워어, 스팍.”

짐이 행복하게 노래를 하듯 인사했다.

= = =

사람 구해놓고 말 안 통한다고 네 이름은 바게트라고 하자니. 어릴 때부터 범상치가 않아.

 

 

2.

“(꿀꺽) 우리 행성엔 왜 관심을 갖는 겁니까, 스팍?”

“난 그저 짐이 있는 행성이 파괴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뿐이오.”

파이크가 미소를 지었다.

“짐을 자주 언급하시네요. 원하시면 언제든 제 개인 체력 단련실을 쓰셔도 됩니다.”

파이크는 즉시 제안을 후회했다. 스팍은 평생 처음 보는 살벌한 눈으로 파이크를 쳐다보고 있었다. …파이크는 10년이나 군 생활을 한 사람이었다.

= = =

Jim과 gym을 이용한 말장난. 내 능력이 부족한지라 이건 원문으로 읽어야 맛이 산다.

 

 

3.

“그 행성엔 남자만 있어?”

짐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렇지 않아. 왜 묻지, 짐?”

스팍이 조금 당황하며 물었다.

“일행에 여자가 한 명도 없잖아!”

스팍이 입을 꾹 다물었다.

“벌칸 여성은 남성과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 나라호 선원의 절반은 실제로 여성이지. 하지만 지구는 벌칸 기준으로 볼 때 문명화 된 행성이 아니야. 그래서 여성을 데려오지 않았다. 여성의 존재 때문에 너희 원시 사회가 반감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지.”

트샘이 대답했다.

“이봐요! 무례하네요! 우린 원시인이 아니거든요? 우리도 여자를 존중한다고요!”

짐이 외치자 모든 정치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뜻으로 말한 건 아니야.”

스팍이 침착하게 덧붙였다.

“정치인이 아니라는 사람치고는 되게 정치인처럼 말한다. 넌 왜 성직자가 된 거야?”

“유대 의식을 거절한 이상 수도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지.”

짐의 질문에 스팍이 대답했다.

“유대? 그게 뭔데?”

“너희 문화의 결혼보다는 약하지만 약혼보다는 강한 결합이야.”

스팍이 설명했다.

“그 때가 몇 살이었는데?”

“일곱 살.”

“그럼… 아이일 때 결혼을 안 해서 성직자가 된 거네. 근데 원시적인 문화는 우리 문화야?!”

짐이 비아냥댔다.

“넌 우리 문화를 비판할 권리가 없다.”

볼락이 대답했다.

“그러시겠죠.”

짐이 파스타를 씹으며 웅얼거렸다.

= = =

이 소설의 벌칸이 제국이라는 특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난 장면. 짐이 참 똑똑한 아이야…

 

 

4.

스팍은 짐이 부축하는 것은 허락하면서도 스콧이 자신을 부축하려 하자 스콧의 손을 쳐냈다.

“내게 손대지 마라, 인간.”

스팍이 사납게 일갈했다.

“짐은 괜찮고? 왜 쟤는 되는데 난 안 돼?”

스콧이 물으면서도 스팍과 거리를 두었다.

“짐에게선 좋은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스팍이 중얼거렸다.

“뭐? 스코티, 아무래도 의식을 잃어가나 봐요. 스팍, 그만 해, 간지럽잖아!”

스팍이 짐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자 짐이 웅얼거렸다.

“몸에 손을 못 대면 치료는 어떻게 하란 소리야?”

스콧이 물었다. 짐이 대답도 하기 전에 누군가 아폴로의 뒷문을 열었다. 짐이 안심한 듯 웃었다.

“택시 요금만 300달러 나왔어.”

레오나드가 짜증스레 말했다. 짐은 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레오나드에게 달려가 껴안고 뽀뽀를 했다. 스팍이 으르렁댔다.

“[내 것이다!]”

스팍이 벌칸어로 호통 쳤다.

= = =

모두에게 예의를 지키고 평화를 지향하는 일항사 스팍도 좋지만, 지위가 높아서 이렇게 고압적이고 짐을 향해 소유욕 주장하며 사나운 야생성을 드러내는 스팍도 참 좋드라 ///

 

 

5.

사렉이 두 사람을 적당한 크기의 방으로 안내했다. 사렉은 높은 책상 앞에 앉았다.

“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 의자에 앉아 화면에 손을 올려라. 두려워 할 것 없다. 거짓말 탐지기일뿐이니까.”

“거짓말 탐지기? 왜요? 당신들은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서요!”

본즈가 구석에 앉은 의자에 어색하게 앉으며 반발했다.

“할 수는 있지만 과하게 사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게다가 이 방법을 사용한다면 누군가 커크 군의 생각을 조종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테니 너희가 납득할 거라고 생각했다.”

사렉이 설명했다.

“그렇죠. 감사합니다.”

본즈가 대답했다. 짐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조심스레 화면에 손을 올리자 화면이 빛나기 시작했다.

“우선 작동 여부를 확인해 볼까 한다. 이름과 잘못된 정보를 말해 보아라.”

사렉이 명령했다.

“난 제임스 T. 커크고 나이는 60살이에요.”

“사실이 아님.”

자신의 거짓말에 경고음이 들리자 짐은 움찔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제임스, 가족에 대해 말해 보아라.”

“우리 가족은 상관없잖아요!”

짐이 따졌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넌 내 아들과 유대를 맺었다. 우리 문화에서 유대는 너희 문화의 결혼과도 같다. 즉 넌 이미 결혼한 셈이다.”

“네?! 무슨! 전 결혼 안 했거든요!”

“사실이 아님.”

“뭐죠! 내가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뭐가 사실이 아니라는 거예요?!”

짐이 따졌다.

“네 속마음은 네 말이 거짓임을 알기 때문이다. 속이려 해도 속일 수 없다. 대답하도록.”

“쳇. 알았어요. 샘이란 형이 있어요. 결혼도 했고 곧 조카도 태어날 거예요.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날에 돌아가셨어요. 몇 년 뒤에 엄마는 재혼했고요. 프랭크랑은 아직도 같이 사는데 자주 싸워요.”

“그게 다인가?”

“가까운 가족은요.”

“좋다. 성관계를 한 상대는 몇이나 있었지?”

짐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졌다. 짐은 화제가 그렇게 빨리 변하리라곤 예상도 하지 않았다. 본즈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짐의 성생활 역사는 대단해서, 벌칸인들이 지구를 멸망시켜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벌칸인들은 보통 몇 명이에요?”

짐이 조심스레 물었다.

“우리는 대부분 배우자와 평생을 약속한다. 하지만 유대가 죽음이나 다른 이유로 소멸되면, 다시 유대를 맺을 수 있다. 벌칸 전체 인구의 평균 성관계 상대 수는 2.73명이다.”

“진짜요?”

짐이 투덜거렸다.

“물론이다. 벌칸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제임스, 몇 명인가?”

“짐, 남자만 몇인지 말해 드려.”

본즈가 도움의 손길을 건넸지만 짐이 대답하기 전에 사렉이 첨언했다.

“성별을 특정하지 마라.”

“…미국법 상 21살부터 합법이니까…”

짐이 최선을 다해 숫자를 줄여보려 했다.

“총 인원을 말하라.”

사렉이 다그쳤다.

“사십…”

“사실이 아님!”

“아, 진짜! 술에 취해서 한 것까지 세는 건 반칙이죠!”

사렉이 눈을 크게 떴다.

“알았어요! 말하면 되잖아요. 68명이요.”

“68?! 짐, 너 아주 막 굴렀구나?”

레오나드가 감탄했다.

“시발! 본즈, 넌 내 편 들어야지!”

짐이 항의했다.

“네 편이야. 근데 68명?!!”

“나 역시 맥코이 선생의 의견에 동감이다. 오리온의 성 노예도 너보다 육체적으로 순결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군. 성병은 있나?”

짐이 시뻘개졌다. 부끄러움에 피부에 열이 올랐다.

“으, 아뇨! 절 뭘로 보시는 거예요?”

“음, 상대가 68명이나 된다는 데 물어볼 만도 하지.”

“닥쳐, 본즈.”

“가장 오래 지속된 관계는 얼마나 지속되었는가. …제임스, 대답하도록.”

짐이 말이 없자 사렉이 질문했다.

“4달이요.”

“사실이 아님.”

“2달하고 이틀이요.”

“와, 야. 넌 문제가 있다.”

본즈가 끼어들었다.

“그래, 그렇지. 빌어먹을 우주선에 와 있잖냐.”

짐이 새삼스럽다는 듯 말했다.

“관계에는 충실했는가?”

“충실하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야, 너 종교를 가져 봐. 정신과에 가 보든가. 아니 둘 다 해라.”

짐의 질문에 본즈가 한숨을 쉬었다.

사렉의 눈썹이 앞머리에 닿을 듯 치켜 올랐다.

“충실함이란 특별한 상대 외의 상대와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잠깐만요. 그럼 스리섬도 충실하지 않은 거예요?”

충격을 받은 짐이 물었다.

“벌칸인 기준으로는 그렇다. 우리는 타인과 공유하지 않는다.”

“뭐어라아구우요오?! 그럼 난 철저한 일부일처제로 결혼한 거예요? 외계인이랑?”

짐이 충격으로 악을 썼다.

“불쌍한 스팍. 그래도 너한텐 좋은 변화일지도 모르잖아.”

본즈가 심술궂게 킬킬거렸다.

“대답을 회피하는 건 삼가 주길 바란다.”

“1명 이상이랑 섹스한 건 8번이에요. 그래도 바람을 피운 건 한 번밖에 없어요. 그것도 내 탓은 아니고 파티에 갔다가 정신을 잃었는데 그 여자가 날 덮친 거라고요. 불만이라는 건 아닌데…”

본즈가 얼굴을 감싸쥐었다.

“제임스, 내가 무서운가?”

사렉이 천천히 물었다.

“아뇨.”

짐이 본능적으로 대답했다.

“사실이 아님.”

“네. 엄청 무서워요.”

짐이 인정했다.

“좋다. 내 아들에게 충실하겠나?”

“…모르죠.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너무 이상하잖아요! 우린 처음 만나서 평생을 약속하고 결혼하지 않는단 말이에요. 지구에서는 그게 정상이 아니라고요!”

“알겠지만 스팍은 네 행성 출신이 아니다. 치유자가 유대의 존재를 확인해 주었다. 벌칸인의 본드는 두 당사자에게 영향을 끼친다. 스팍은 우리 전통과 도덕에 따라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정신적으로 그를 온전히 망가뜨릴 수 있다. 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 내 아들을 해칠 생각인가?”

사렉이 무감정하게 물었다.

“아뇨.”

짐이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

본첨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질문하는 사렉보다 옆에서 한 마디씩 하는 본즈가 더 얄밉다 ㅋㅋㅋㅋㅋㅋㅋ

 

요즘 덕질 이야기

1. 책 구매 덕질이 제일 뜨거운 시기. 리페프를 사면 책 539권을 끼워 주는 딜을 발견하고 말았다. 목록을 살펴보니 관심은 있었지만 지르지 않고 용케 참아낸 세트들이 몇 개나 포함되어 있는 상황. 게으른 내가 절대 할 리가 없지만, 일단 사고 기기를 꽤 싸게 중고로 팔아도 남는 장사라서 고민을 잠깐 했다. 남자친구는 오랜 관찰의 결과 내 물욕의 90퍼센트가 책이라며 그냥 사라고 했고, 다른 친구도 나다운 고민이라며 웃었다. 생각해 보니 책 사려고 돈 버는 것 같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아무래도 난 1일 1독이 아니라 1일 2독은 해야 일말의 양심이 작동한다는 소릴 들을 것 같다.

 

2. 그 일말의 양심 때문에 최근 매일 잠자리 독서를 실천 중이다. 그리고 어제는 벼르고 별렀던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었다. 번역본은 열린책들. 요즘 부쩍 추리소설을 읽다 잠이 쏟아져서 첫인상이 영 좋지 않은 이 책도 읽다 잠들겠거니 생각했는데 웬걸, 단숨에 끝까지 읽고 말았다. 처음 읽었을 땐 얼마나 재미가 없었나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인 줄 알았는데 다시 읽을 땐 속도감마저 느껴졌다. (실제 500페이지도 되지 않는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인 1920년대의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을 간접적으로 겪은 탓에 전쟁을 모르는 자의 태평함과 전쟁을 아는 자의 허무함이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시대다. 게다가 금할수록 더 하고 싶어지는 인간의 본성을 자극한 금주법 때문에 범죄율도 폭발하던 시대였다. 스펙트럼이 넓은 이 시대를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을 그린 이 소설을 아직 2차 성징도 겪지 않은 아이가 이해할 수 있었을 리가. 이처럼 당시 내가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이유까지 찾아가며 읽으니 훨씬 풍부한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역시 책은 여러 번 읽어야 맛이 난다. 이래서 책 사는 걸 포기할 수가 없다.

 

3. 동생이 갑자기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이 보고 싶다고 하는데 동영상 파일이 없어서 가지고 있던 DVD를 꺼냈다. 동생이 뮬란 DVD도 있었냐며 ‘누나는 참 그런 거 잘 사.’하더라. 괜히 덕후겠니. 뮬란 꺼내다 보니 인어공주 DVD도 발견. 미녀와 야수는 산다산다하고 안 사지네. 결심한 지가 10년도 더 됐는데;;; 아직 팔긴 하나…

[스팍/커크] Make Me Wonder -1-

스팍은 합리적인 결정을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주요 구성원이 벌칸인으로 구성된 팀인 VSA(Vulcan Speed-racing Association ; 벌칸 스피드레이싱 협회)는 세컨드 드라이버인 스팍에게 팀 오더를 자주 내리곤 했다. 팀 오더를 통해 퍼스트 드라이버인 스톤에게 더 좋은 순위를 양보한 결과가 기대 이하일 때도 많았다. VSA가 팀 오더를 내릴 때마다 자신의 팬들이 분통을 터뜨리더라도 스팍은 그저 퍼스트 드라이버와 세컨드 드라이버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는 게 팀 차원에서는 합리적인 모양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물론 스팍도 순위를 경쟁하는 레이싱 팀이 더 좋은 순위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일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VSA는 그 이름부터 벌칸인임을 당당히 드러내는 팀이었다. 지구의 Formula 1에서 착안해 은하 연방의 다양한 종족이 한 자리에 모여 레이싱이라는 형태로 경쟁하는 자리인 Formation 1 대회, 줄여서 F1은 본래 다양한 종족이 건전하게 경쟁하며 우주 탐사를 위한 기술력을 시험하는 자리이자, 서로 다른 종족이 직접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회였다. 그런 F1에 참가하는 팀 이름에 당당히 종족을 표시하는 일은 타 종족을 배척하거나 종족주의를 강화하는 뜻으로 비춰지기 십상이기 때문에 오해를 감수하고서도 종족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는 VSA같은 팀은 드물었다. 인간과 벌칸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신이 5년이나 그런 VSA의 세컨드 드라이버로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실력이 혈통의 불리함을 극복할 정도는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스팍은 세컨드 드라이버임에도 예산을 이유로 퍼스트 드라이버보다 낮은 사양의 차를 타거나 업그레이드가 늦어지는 일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 제 아버지 사렉의 경제력 덕을 보긴 했겠지만, 적어도 그 점에서 VSA는 공평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줄 아는 팀이라고 생각했다.

 

4년 간 자신의 레이서였던 리처드가 은퇴를 결심했을 때에도 그의 나이나 나이에 따른 기량 저하를 생각하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겠거니 여겼던 스팍이다. 리처드 발더는 자신과 짝을 이루기 전에도 뛰어난 레이서였지만, 자신과 짝을 이룬 4년간은 감히 최고의 레이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눈부신 성적을 거둔 선수였다. 4년 연속 드라이버 챔피언십과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을 이룬 것은 물론이요, 4년간 수많은 기록을 새로 썼는데 특히 2시즌 동안 리타이어 없이 전 경기 완주 및 포인트 득점은 수많은 사람이 인정할 정도로 쉽게 깨기 힘든 기록이었다. 앞으로도 몇 시즌은 리처드가 계속 지배하리라는 예상이 팽배하던 가운데 그가 은퇴를 결심했을 때, 엔터프라이즈 팀에서 유일하게 그 결정을 반대하지 않은 게 바로 그의 레이스 엔지니어였던 스팍이었다.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는 말이 그런대로 합리적이었던 까닭이다.

 

리처드 이후 자신과 짝을 이룰 레이서가 F1을 시작한 지 고작 일 년도 채 안 된 햇병아리 루키인 것은 그런대로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이 아까우니 잘 키워보라는 파이크 감독의 말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들보다 늦게 카트를 시작한 것 치고 F1 데뷔는 빨리 했지만 제임스 커크의 재능은 거기까지였다. 제임스 커크는 스타팅 그리드와 상관없이 경기 초반이면 하위권으로 순위가 떨어지곤 했다. 규정에 따라 만들어진 차량의 성능은 대동소이(大同小異)했다. 이미 정해진 트랙 위를 달리는 동안 날씨라는 변수가 없다면 숙련된 드라이버의 움직임은 대부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니 초반 순위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좋은 순위를 거두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도 좋았다. 게다가 제임스 커크는 차량 조작도 미숙해 보였다. 비도 오지 않는 날씨에 브레이크의 제동력을 감당 못하고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그러다 사고라도 낸다면 전체 레이스를 예측하기가 까다로워지기 때문이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더 빨리 분석하는 스팍이라도 경기 중 사고는 까다로운 변수였다. 우승후보인 리처드에게 백 마커를 도맡아하는 제임스 커크의 존재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다행히 운전 미숙으로 사고를 낸 적도 없고 경기 후반에는 어떻게든 순위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의 아버지인 조지 커크가 F1 데뷔 첫 해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졌다는 걸 감안하면 제임스 커크는 소박한 데뷔 시즌을 보낸 평범한 선수에 불과했다.

 

“대답이 없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석상처럼 무표정한 스팍을 보며 파이크는 사람 좋은 미소를 보냈다. 스팍은 파이크의 그런 미소를 볼 때마다 바보가 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처음 스팍이 파이크와 대화를 나눴을 때도 파이크는 대답 없이 저런 표정만 지었다. VSA 소속 드라이버였던 스팍이 파이크를 만난 건 세컨드 드라이버로서는 나름대로 인정을 받지만, 한편으로 그 이상을 꿈꿀 수 없음에 고민하던 5년 전이었다. 시상식을 겸한 연말 파티에서 우연히 그 해의 감독상을 받은 엔터프라이즈 팀의 크리스토퍼 파이크 감독과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축하의 말과 함께 가볍게 근황을 나누던 중 파이크 감독이 더 오래, 더 깊게 레이싱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있냐고 물었다. 처음엔 이적과 은퇴를 놓고 저울질하던 제 마음을 읽기라도 했나 싶어 놀라던 스팍은 곧 그 뒤에 숨은 ‘드라이버보다’라는 말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랐다. 현역으로 활동하며 기량이 떨어지지 않은 선수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파이크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웃고 자리를 떠났었다. 실제로 스팍은 지금 파이크 밑에서 선수 시절보다 더 즐겁게 레이싱을 하고 있었다. 리처드의 은퇴 이후 수많은 러브콜이 있었지만 스팍은 파이크 밑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제임스 커크라니.

 

“자네, 짐의 경기를 제대로 본 적은 있나?”

 

이제 원로 취급을 받을 정도로 오랫동안 F1에 몸담고 있는 파이크의 목소리는 어쩐지 자신을 놀리는 듯 했다.

“없습니다.”

“일단 짐의 경기를 보고, 그러고도 도저히 납득이 안 되면 그때 거절해도 늦지 않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말에 스팍은 파이크가 건넨 자료가 담긴 마이크로 칩을 받아들고 조용히 사무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 * *

 

제임스 커크는 엔터프라이즈의 세컨드 팀인 패러것에서 데뷔한 루키였다. 데뷔라고는 하지만 시즌 초부터 합류한 선수는 아니었다. 패러것의 선수였던 올슨이 시즌 중 사고를 당해 대신 출전한 선수가 제임스 커크였다. 올슨은 부진한 성적임에도 경기에 임하는 태도가 좋지 않아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올슨이 은퇴하는 계기가 된 그 사고 역시도 시즌 중 한 달여의 휴가 기간 동안 다음 경기가 열리던 근처 휴양 행성에 놀러갔다 당한 사고였다. 팀 운영 측면에서도 발전 없는 선수보다야 화려한 배경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실력이 검증 안 된 루키 쪽이 훨씬 나은 탓에 선수 교체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파이크가 건넨 건 제임스 커크의 데뷔전인 2251년 델타 베가 레이스의 자료였다. 델타 베가 프로즌 서킷에서 치러지는 경기는 수시로 눈보라가 이는 행성의 날씨 탓에 거의 빙상전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충분한 차량 세팅 변경 시간이 필요하다는 각 팀의 요구에 따라 델타 베가 레이스는 언제나 여름휴가 다음이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사고가 속출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로 유명한 델타 베가 레이스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그 유명한 조지 커크의 아들이 데뷔전을 치른다고 하니 그 관심은 더욱 치솟았다. 수많은 언론 관계자들이 참석했고, 커크 가와 친분이 있던 파이크 감독은 경기 전부터 인터뷰를 하느라 바빴다.

 

제임스 커크가 데뷔하던 해인 2251년에는 유독 엄청난 눈보라로 퀄리파잉이 몇 시간이고 미뤄졌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치러진 퀄리파잉은 예상대로 난장판이었다. 24명의 선수 중 6명이 사고로 퀄리파잉 기록을 세우는데 실패했고, 패러것의 게일라 선수는 차량 이상으로 퀄리파잉에 실패했다. 같은 팀 선수였던 제임스 커크는 루키답게 초반 몇 바퀴 동안은 휘청거리며 위험한 주행을 했지만 몇 바퀴를 돌면서 감을 잡은 모양인지 무려 9번 그리드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퀄리파잉을 마친 제임스 커크는 볼이 상기된 채 아직 소년의 얼굴을 하고 활짝 웃었다. 인터뷰 내내 빙하처럼 푸른 제임스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고작 9번 그리드에도 만족할 수 있는 건 아직 어린 선수이기 때문일까. 열여덟 살. 10년 전 스팍이 데뷔할 때와 같은 나이였다. 스팍은 자신의 선수 시절을 떠올렸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스팍은 웃음커녕 미소 한 번 지은 기억이 없었다. 한 번도 자신의 주행에 만족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선수였던 리처드는 첫 번째 코스가 좌측 커브인 델타 베가 프로즌 서킷에서는 폴포지션보다 유리할 수도 있는 위치인 2번 그리드였다.

 

다행히 본 경기 때는 눈보라가 내리지 않았다. 날씨의 영향이 사라지자 선수들은 제 실력을 뽐냈다. 9번 그리드에서 출발한 제임스 커크는 출발부터 순위를 잃더니 서킷을 몇 바퀴 돌지도 않았는데 벌써 백 마커가 되어 있었다. 부모의 후광을 입고 제 실력 이상의 평가를 받는 선수라면 스톤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실망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스팍은 자신이 무엇에 실망했는지 알지 못했다. 당시 리처드의 순위 싸움이 치열해 제임스 커크의 레이싱에 관심을 줄 여유는 없었지만, 경기 종료 후 최종 순위를 확인하고 다시 한 번 놀랐던 기억이 났다. 제임스 커크가 백 마커였던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위를 회복해 비록 출발 그리드보다 한 계단 떨어지긴 했어도, 포인트 득점이 가능한 10위로 경주를 마쳤기 때문이다.

 

제임스 커크가 초반에 순위를 상실한 건 놀랍게도 제대로 가속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제임스가 본격적으로 가속을 시작한 타이밍은 백 마커가 되어 선두권이 자신을 앞지르기 시작할 때였다. 레이스 페이스를 높이기 위해 순위가 앞서는 차량을 뒤따라가는 전략은 흔한 전략이지만, 그것을 자신의 주요 전략으로 사용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었다. 게다가 차량마다 성능과 특성이 다른 만큼 남을 따라가기만 해서는 제대로 된 레이스를 할 수 없었다. 제임스의 전략은 비논리적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 제임스 커크의 퀄리파잉 기록을 살피던 스팍이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커브가 이어지다 직선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코너를 빠져나오면서 가속 시 제임스의 차량은 기어 변속 딜레이를 일으켰다. 기어 변속에 딜레이가 생기면 코너를 빠져나오는 속도가 부족해 코너에서 순위 싸움에 휘말릴 경우 반드시 지고 만다. 다수의 차량과 자리싸움을 벌이는 경우 후속 차량과 충돌 위험도 있었다. 제임스 커크는 퀄리파잉 초반에 이를 인지한 듯 퀄리파잉 내내 커브 진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보통 커브 진입 시 속도를 줄이고 커브 탈출 시 속도를 높이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제임스는 커브 진입 시 속도를 높이고 커브 탈출 이후 서서히 속도를 높이는 이상한 방식의 주행으로 안정적인 랩타임을 내고 있었다. 당시 서킷에 쌓인 눈 때문에 대부분의 선수는 코너 진입 시 스핀을 줄이려 과도하게 속도를 줄이는 경향이 있었고, 상대적으로 코너 진입 속도가 높은 제임스는 최고 속도가 높지 않음에도 비교적 괜찮은 랩타임을 낼 수 있었다. 짚이는 게 있어 제임스의 팀원인 게일라의 퀄리파잉 기록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게일라의 리타이어 원인은 기어박스 이상이었다. 기어 변속 딜레이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변속을 하다 기어가 고정되어 버렸던 것이다. 올슨은 차량을 험하게 다루는 편이었고, 제임스가 투입된 시즌 하반기에는 이미 기어박스 교체 횟수 초과로 차량의 기어박스를 교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경우 최하위 그리드가 되는 것을 감수하고 정상적인 차량으로 주행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제임스 커크는 퀄리파잉을 통해 익힌 자신의 레이스 전략을 믿고 이상이 있는 기어박스를 교체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 레이스 초반에 가속을 하지 않은 이유도 초반부터 순위싸움으로 치열하게 몸싸움을 하다 충돌이 발생할 위험을 인지하고 이를 피했다고 보는 게 적절했다. 차량 상태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주행을 하다 리타이어를 당하느니 안전하게 포인트를 획득하는 편을 택한 것이다. 순위 회복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서야 선택할 수 없는 전략이었다.

 

“흥미롭군.”

 


오랜만에 읽으니 재미있어서 예전에 썼던 F1 AU의 뒤를 조금 이어 보았다. F1은 잘 모르지만 어차피 가상의 경주니 대충 그럴싸하게만 쓰자는 생각이다. 이제 보니 스팍과 커크가 10살 차이였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 그래도 클리셰 범벅인데, 나이차도 흐뭇하구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했다, 과거의 나. 완결만 내면 참 좋은데 ㅋㅋㅋㅋㅋㅋㅋ

[스팍/커크] D-Day (1)

술에 취해 함장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하기 전에 짐을 숙소에 데려다 주려던 것뿐인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뜨거운 혓바닥이 스팍의 입술을 건드렸다. 버튼이라도 눌린 것처럼 입술이 벌어졌다. 그 혓바닥은 살짝 벌어진 입술을 비틀어 열고 얌전히 놓여 있던 혓바닥을 휘감았다. 스팍이 삼켜야 할 침을 대신 삼키느라 맞닿은 입술이 우물거렸다. 어쩐지 목이 말라 스팍도 똑같이 했다. 그래도 목이 말라 빨아들이듯 삼켰다.

“으응…”

짐의 신음 소리와 함께 미세한 진동이 전기처럼 온 몸을 타고 흘렀다. 짐이 허우적대듯 스팍의 몸을 감아올 때마다 깨끗하게 정돈된 침대 시트가 바스락거렸다.

“으응… 더워.”

방금까지 스팍을 감싸던 짐이 갑자기 스팍을 밀쳐냈다. 뺨이라도 맞은 듯 민망해진 스팍이 입술을 떼고 입을 맞추느라 미처 벗기지 못했던 짐의 겉옷을 마저 벗겨 주었다.

“헤헤, 스파악.”

갑갑함이 사라졌는지 짐이 손을 뻗어 스팍의 얼굴을 더듬으며 웃었다. 쳐낼 수도 있는데 쳐내지 않았다. 얼굴을 더듬는 손길에 스팍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크기에 비하면 섬세한 손길이었다.

“네 귀…”
“읏…!”

짐의 손가락이 닿는 곳이 데일 듯 뜨거웠다. 숨이 가빠졌다. 스팍이 짐의 손목을 잡아챘다.

“함장님.”

급히 내뱉은 목소리가 떨렸다. 이 방에 계속 있으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돌아가지 않는 것이 좋은 선택 같기도 했다.

“…괜찮아.”

짐이 괜찮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스팍의 귀에 닿는 짐의 입술은 괜찮았다. 만지면 부서지기라도 할 것처럼 조심스럽기만 하던 우후라와는 달리 거칠고 낯선 손길에 자꾸만 일어나면 안 될 반응이 일어났다. 덥석 스팍의 것을 덮고 지그시 누르는 짐의 손바닥은 무례하지만 정확했다.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괜찮아, 스팍. 괜찮아.”

잔뜩 갈라진 짐의 목소리가 자꾸만 스팍을 유혹했다. 술에 취한 사람의 괜찮다는 말을 믿을 수 있는 걸까. 입도 맞춘 주제에 이제 와서 연인이 아닌 다른 이와의 육체관계가 거리낄 이유는 없는 게 아닐까. 상관과 부하의 관계이긴 하지만 관계를 주도하는 게 부하인 자신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알코올에 취한 것도 아니면서 판단력이 흐렸다. 머뭇거리는 새 짐의 손이 스팍의 바지 속을 파고들었다.

“함장… 님…!”
“괜찮다고 했잖아. 생각하지 마. 머리 아파.”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리가 아팠다. 생각하기도 싫었다. 스팍이 단정한 손으로 짐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던 짐이 재빨리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스팍은 거칠어진 숨소리를 감추지도 않고 부딪치듯 짐과 입을 맞췄다. 짐이 아야 하며 웃었다. 제대로 된 애무를 하지도 않고 몰아 붙여도 받아내는 짐이 놀랍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했다. 신음을 뱉지 않고 삼키는 짐은 온 몸을 떨었다. 스팍도 함께 떨었다. 스팍의 몸에 답삭 붙어오는 몸이 아름다웠다.

– – –

함장의 깜짝 생일파티에는 엔터프라이즈호 선원 대부분이 참석했다. 수리를 마치고 곧 출항을 앞둔 엔터프라이즈호의 출항 기념 파티이기도 했다. 반가운 얼굴들을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평소보다 큰 선원들의 목소리가 예민한 스팍의 청각을 자극했다. 원치 않아도 들려오는 선원들의 대화를 애써 무시하며 파티를 즐기는 우후라를 바라보았다. 온 몸으로 웃느라 파란 보카야 목걸이가 달랑거렸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스팍을 배려하느라 그 일부를 애써 자제하는 것뿐, 할 줄 아는 언어만큼 표현이 풍부한 우후라였다. 우후라는 분명 좋은 동반자였다. 하지만 스팍도 우후라의 좋은 동반자인지는 의문이 들었다. 선원들과 시선을 맞춰 눈인사를 하고 되도록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섰다. 엔터프라이즈호에 남기로 한 것이 옳은 선택인지 아직도 확신이 없었다. 논리를 떠나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라고 말해 주던 사람이 사라졌을 뿐인데 갑자기 모든 게 막막했다. 다가서는 짐을 흘끔 쳐다보고 다시 창밖에 펼쳐진 요크타운의 인공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지구를 닮은 하늘이 낯익은 듯 낯설었다.

“스팍 대사님의 소식은 들었어.”

스팍 대사가 있던 새로운 벌칸이 궁금했다.

“그때 터보리프트에서 하려던 말이 그거였어?”
“대강 비슷합니다.”

애매한 대답을 남기고 다시 시선을 피했다. 확실한 건 아직 새로운 벌칸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패리스 준장님과의 이야기는 잘 끝내셨군요.”
“대강 비슷해.”

묻지는 않았지만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리는 짐도 같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는 정말 저길 또 가고 싶냐?”

한심하다는 듯 묻는 레너드의 말에 짐은 가볍게 웃었고 스팍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언젠가 우리 모두의 항해는 끝날 것이다. 다만 스팍은 아직 항해를 끝내는 법을 알지 못했다.

– – –

“좀 잤어?”

버석거리는 목소리에 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짐을 바라보고 있던 스팍이 정신을 차렸다. 한숨도 못 잤다고 솔직하게 말해도 될지 고민스러웠다. 아직 잠에 취해 눈도 뜨지 못하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몇 년이나 보아 오던 사람인데 생각해 보니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인 것도 처음이었다.

“이런 건 처음이야?”

마치 자기 속을 읽기라도 한 것 같은 질문에 숨을 멈췄다. 짐이 이미 헝클어진 머리를 북북 긁었다.

“다 큰 성인끼리 이런 일도 있는 거지. 오랜만에 했더니 좀 뻐근하긴 한데 개운하고 나른하고 기분 좋네.”

짐이 시원스레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덮고 있던 이불이 흘러내려 맨가슴이 드러났다.

“넌 별로였어?”
“아닙니다.”
“그럼 됐어. 보아하니 넌 이미 씻은 것 같은데 괜한 오해 사기 싫으면 이만 가 봐. 난 천천히 씻고 알아서 움직일 테니까.”
“함장님.”

할 말도 없었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짐을 불렀다. 짐이 스팍을 빤히 쳐다보다 눈꼬리를 접으며 웃었다.

“스팍, 설마 날 성희롱으로 고발할 건 아니지?”
“절대 아닙니다.”
“나도 그럴 마음 없어. 됐지?”

침대를 벗어나며 짐이 손사래를 쳤다. 귀찮다는 듯 뒤돌아서는 짐의 허리춤에 점점이 새겨진 멍이 보였다. 스팍이 제 손을 내려다보다 하릴없이 일어섰다.

– – –

스팍은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잠시 명상을 했다. 좀처럼 안정을 찾을 수 없어 차라리 걷기로 했다. 뒷짐을 지고 스타플릿 지부 뒤에 있는 공원의 트랙을 천천히 걸었다. 인공 태양이 완전히 뜨지 않은 요크타운은 아직 어스름했다. 야행성이라 해가 진 뒤에야 활동하는 종족들이 피곤한 발을 터벅터벅 디뎠다. 일찍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사박사박했다. 바람이 앞머리를 가볍게 스쳤다.

“일찍 일어났네요? 좀 잤어요?”
‘좀 잤어?’

목소리처럼 그의 모습도 겹치는 것 같아 눈을 깜박였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신체 밀착형 운동복을 입은 우후라가 눈앞에 서 있었다.

“아니오. 한숨도 못 잤군요.”

아까는 할 수 없었던 말이 쉽게도 나왔다.

“저런.”

우후라가 스팍의 얼굴을 감싸며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익히 알고 있는 입술이 닿자 조금은 긴장이 풀어졌다.

“아, 하긴. 짐 때문에 긴장을 놓을 수도 없었겠네요. 안 봐도 훤해요. 레너드도 스콧도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니 짐을 누가 말렸겠어요. 술루는 일찌감치 벤이랑 사라졌을 거고, 보니까 제일라도 주량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렇더군요.”
“하여간 당신 책임감은 알아 줘야 해요.”

스팍은 가만히 팔을 잡아오는 우후라와 속도를 맞춰 걸었다.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사실을 말할 수도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스팍의 상황을 좋게만 해석하는 우후라의 말에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나도 어제 오랜만에 동료들을 만나니까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당신이랑 내가 헤어졌다는 소문이 언제 돌았는지 만나 보지 않겠냐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화해했다는 소문은 안 돌았나? 당신이랑 연애한 뒤로 대시 받은 건 오랜만이라 적당히 장단을 맞춰 줬는데, 괜찮죠?”

우후라가 풋 하고 웃었다.

“나 너무 부었죠?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봐요.”
“아니오. 평소와 똑같습니다.”
“거짓말.”

얼굴을 만지작거리는 우후라의 손을 잡아 가만히 내렸다. 아무리 봐도 부족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사람을 앞에 두고 귀찮은 듯 손사래를 치던 짐의 뒷모습만 떠오르는 걸까.

“다들 별 일은 없습니까?”
“그렇죠. 아, 사라만 빼고요. 파견 임무 중에 부상을 당해서 최소 3주는 쉬어야 한대요.”
“안됐군요.”
“그래서 프랭크가 위로할 겸 행성 피렌체 여행을 준비했대요. 멋지지 않아요?”
“그렇네요.”

우후라가 스팍을 새치름하게 쳐다보았다. 우후라가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라서 스팍이 얼른 정신을 차렸다.

“아, 당신도 행성 피렌체에 가고 싶어요?”
“그런 말은 안 했는데요. 그냥 요즘은 같이 보내는 시간이 적잖아요.”
“어제도 함께 함장님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잖아요.”
“그런 거 말고 커플끼리만 보내는 시간이 적다고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우후라를 만나면서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한 기억이 없었다. 분별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공적인 자리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 어쩌다 시간이 맞아 함께 식사할 때를 제외하면 둘만의 시간이랄 것이 거의 없어서였다. 특히 엔터프라이즈호 승선 이후에 오롯이 두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은 잠자리를 할 때 외에는 전무하다고 봐도 좋았다. 새삼스러운 비난에 며칠 정도는 수면을 취하지 않아도 거뜬한 스팍조차 피곤함을 느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우후라 앞에서 스팍은 늘 미안했다. 애정을 담아 선물한 보카야 목걸이의 푸른색이 보기만 해도 서늘한 델타 베가의 빙하처럼 시렸다.

‘다 큰 성인끼리 이런 일도 있는 거지.’

그래. 꼭 그 말처럼 시리고 추웠다.

“결혼이란 걸 하면… 달라질까요?”

나도. 당신도. 바라건대 그 사람도.

“그야 달라지겠죠. 당장 부부 선실을 쓰니까 아무래도 둘이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잠깐만. 지금 그거 청혼한 거예요?”

우후라가 소리 내어 웃으며 스팍을 끌어안았다.

“와, 사실 당신이 청혼하리라고는 기대도 못했는데, 막상 청혼을 받으니까 기분이 좋긴 하네요. 내가 먼저 얘기해야 마지못해 끌려오는 것 같더니, 웬일이죠? 무슨 심경의 변화예요?”

무엇부터 반박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스팍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오해를 풀 시간은 아직 많았다. 그렇게 자신을 설득했다. 스팍은 우후라를 마주 안으며 짐의 몸에 자신의 흔적이 남은 것처럼 자신의 몸에도 짐의 흔적이 남아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스팍커크로 쓰고 싶다고 했던 유럽 로맨틱 코미디 영화(정확하게는 프랑스 영화)를 이야기로 풀어 보았다. 썰은 푼 적이 있는데 다시 봐도 스팍커크랑 찰떡 같아서 ‘무엇이든 쓰게 된다’의 효력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 끼적여 보았다.

겸사겸사 오랜만에 그동안 쓰다 덮어 둔 팬픽을 들여다 보았다. 오랜만에 읽으니 내가 이런 것도 썼었나 싶고 무척 재미있었다. 전부 미완이었지만…

  1. 보급 지원 임무 나갔다가 스팍의 아내와 스팍의 아이를 태우게 된 엔터프라이즈호. 모두가 이 가족을 흥미있게 지켜보는 가운데 함장인 제임스 커크만은 이 가족을 대수롭지 않게 대한다. 과연 이 가족에겐 무슨 사연이? 이런 상황에 스팍커크는 어떤 연애를?

  2. 속도위반으로 캐롤 마커스와 결혼한 제임스 커크. 이들을 지켜보는 스팍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그걸 지켜보는 제임스 커크! 과연 이 스팍커크는 연애를 할 수 있는 건가.

  3. 술에 취한 제임스 커크와 얼떨결에 원나잇을 하고 만 스팍. 하지만 말 그대로 원나잇은 원나잇일 뿐, 쏘 쿨한 함장의 태도에 흔들리던 스팍은 우후라와 결혼을 진행시키는 사고를 치고 만다. 엔터프라이즈호 함교 선원 간의 결혼인 만큼 함장인 제임스 커크가 중심이 되어 결혼식을 준비하는데…

  4. F1 AU로 레이엔 스팍과 신인 드라이버 커크. 안전 지향 레이싱을 추구하는 스팍과 도박 같은 모험도 불사하는 커크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인정하며 우승을 향해 달려가는 스포츠 로맨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팀 엔터프라이즈의 우승 도전기!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니 삼각관계가 취향이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배배 꼬인 것이 전부 흥미진진해. 게다가 전부 단편으로는 소화가 안 될 스케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디서 본 건 많아서 꿈은 크다. 사람이 주제를 알아야 하는데… 이게 다 나 같은 애도 팬픽을 써 볼까 생각하게 만드는 스팍커크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