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덕질 근황

+ 카드캡터 사쿠라 클리어카드 2편에 이어 3편에서도 수상한 인물 유나 D. 카이토가 등장했다. 선한 인물들로 가득한 사쿠라 월드에서 이 친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활약할지 기대된다. 특히 시노모토 아키호가 마음을 주는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계기를 통해 변할지 기대가 된다. 집사와 고용인의 사랑 좋지요. 크~
사쿠라는 카드캡터로의 성장이 눈부시다. 과거에는 카드를 알아보고, 그 정체를 밝히고, 포획(?)할 때 주변 인물들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카드 앞에서 ‘역시 카드캡터의 조상님’ 느낌이 난다. 특히 카드캡터 사쿠라의 상징인 ‘날개’를 담당하는 카드인 ‘Flight’ 앞에서 샤오란을 제지시키고 담담히 부탁하는 그 모습이 역시 조상님!!!
샤오란은 무엇보다 사쿠라를 바라보는 시선이… 크… 남자가 되었구나. 이 녀석은 초딩 때도 어른스럽더니, 중딩 주제에 무게감이 달라!!!! 극장판 ‘사라진 카드’ 편에서 연극하는 사쿠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선 같은 곳에서 이미 시작됐던 그 묵직함이 클리어카드 편에서는 분명히 드러난다. 초등학생이던 사쿠라가 자라서 샤오랑이랑 데이트를 하는 모습을 보니 이 언니 눈물이 ㅠㅠㅠㅠ
클리어카드 편은 볼 때마다 현실감은 없고 감회가 새롭다. 사쿠라와 샤오란 커플이 성장한 뒤를 그려낸 팬픽을 읽은 것이 내 팬픽 독서 역사의 시작이었는데 이게 오피셜이라니!!! 혹시 이게 꿈이라면~♬

 

ii
+ 역시 케로쨩. 먹을 거 주는 사람, 좋은 사람.

 

hen
+ “괜찮아! 우리가 곤약을 싫어해도 좋아하는 사람이 우리 몫까지 먹어 줄 거야!”
그럴싸한데? ㅋㅋㅋㅋㅋ

 

+ 이번에 책을 구매하며 알라딘 고객 서비스팀을 조금 귀찮게 하고 말았다. 정가로 구매할 경우 6만원 가까이 되는 전자책과, 2만원 상당의 종이책을 더해 8만원 정도의 책을 5만원 정도에 구매해 놓고도 쿠폰 안 썼다고 주문 변경하는 바람에 몇 번이고 1:1 문의에 답해주느라 귀찮긴 했을 거다. 그건 좀 직원에게 미안하다. (사은품만 안 받았어도 덜 복잡했을 일이다.) 다행히 주문 내역이 변경된 것도 아니고 해서 사은품 문제도 잘 해결됐다. 귀찮긴 했지만, 어쨌든 쿠폰의 혜택을 전혀 안 본 것은 아니니 되었다(…) 앞으로는 할인 쿠폰도 잘 챙겨서 구매하는 걸로;;;
도서 정가제 전에는 훨씬 단순했던 것 같은데, 요즘엔 꼼꼼해야 해서 귀찮다. 금액이 적지 않으니 무시할 수도 없고.

 

+ 저번에 고민했던 동서 미스테리북스 130권이 얼마 전에 50년 대여로 풀렸더랬다.  심지어 썸딜 쿠폰까지 붙어 나왔으니 뭐, 긴 고민 없이 겟!

 

+ 오랜만에 유럽산 로코 하나를 봤는데 꽤 재밌게 봤다. 팬픽으로 컨버전하고 싶을 정도로 재밌었는데 톰포드 립스틱에 미니 컨버터블, 거기에 아름다운 풍경까지, 눈호강 제대로 했다. 의상도 예쁘던데 옷의 디자인을 보고 디자이너를 알아보는 그런 수준은 아니라서;;;

 

+ 날이 추워짐에 따라 우리집 고양이가 자꾸 무릎 위로 올라온다. 다른 식구들에겐 안 가고 내 무릎에만 올라올 정도로 집사를 좋아해 주는 것은 참 좋은데 선물로 쥐는 고만 물어왔음 좋겠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선물도 항상 같은 자리, 내 의자 옆에 뙇… 누가 봐도 나 준 거… orz 쥐 물어와놓고 나 잘했지? 하고 울면 진짜 때릴 수도 없고 ㅠㅠㅠㅠ 길바닥 출신이라 사냥을 참 잘해. 하하하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스팍/커크 영픽 번역] So Here We Are (5장: 스팍의 이야기 -1-)

예상대로 캠퍼스에는 소문이 파다했다.

 

짐은 생도들이나 강사들 사이에서 무엇이든 뛰어나고 카리스마 넘치며 사회적인 학생으로 약간 유명했다. 강사들 사이에서는 우수한 학생으로 통했다. 어린 생도들 사이에서는 다가가기 쉬운 상급생으로,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는 모두의 친구이면서 잘생긴 외모 덕에 ‘심장 파괴자’로도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현재 짐과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친구가 친구 이상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어째서 그런 소문이 퍼졌는지 스팍은 알지도 못했고 의아해하지도 않았다. 실제 증거가 있어서라기보다 인간관계 속에서 흥밋거리를 만들어내려는 가벼운 말들이 그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문이 났다고? 무슨 소문? 어쩌다?”

 

짐은 대수롭지 않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내색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스팍은 뒷짐을 지고 짐과 나란히 걸었다.

 

“소문이 난 지는 벌써 몇 달이나 됐어, 짐. 다른 사람은 다 알아. 멍청한 너희 둘만 여태 몰랐지.”

 

짐과 나란히 걷던 또 다른 인물인 맥코이가 눈을 부라렸다. 짐은 스팍에게 둘의 변한 관계를 맥코이가 눈치 챘다고 전달해 두었다. 맥코이의 눈치가 귀신같다는 걸 짐이 간과한 덕분이었다. 어쨌든 짐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맥코이였다. 둘은 이들의 관계가 업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오해를 막기 위해 맥코이 외의 사람에게는 둘의 관계를 알리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스팍이 그런 사적인 문제를 드러내기 꺼린다는 건 두말 하면 잔소리였다.

 

스팍이 짐과의 관계를 공개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맥코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당연히 말 안 했지. 말해서 뭐하게?”

 

맥코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으르렁댔다.

 

“뭘 바란 거야? 맨날 둘이 붙어 다니는데, 그럼 소문이 안 나냐?”

 

스팍도 다른 생도들이 그들 곁에서 소곤거리고 흥미로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등 이상하게 행동하는 것을 느끼긴 했다. 하지만 스팍은 그런 행동들이 그저 스타플릿의 영재인 저 유명한 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를 보고 하는 행동일 거라고 생각해 왔다. 지금 이 순간 신체검사를 위해 체육관으로 향하는 그들을 보고 사람들이 실제로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지 알고 나니 전보다 더욱 편치 않았다.

 

짐은 걷는 내내 물병을 공중에 던지고 받았고, 맥코이는 평소처럼 현 상황이 얼마나 마음에 안 드는지 떠들었다. 짐은 맥코이를 달래기 위해 “음”이나 “어” 등의 단답형 질문으로 대답하며 가끔 스팍을 향해 지친 듯한 미소를 지었고, 스팍은 그저 눈썹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일 단계 신체검사는 세 가지 종목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는 장애물 코스를 최대한 빠르고 효과적으로 통과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10킬로미터 달리기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백병전이었다. 다음 날 진행되는 이 단계 신체검사는 생도 각자가 개인의 성과를 확인하게 되어 있었다.

 

짐은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지만 특히 신체적 능력은 그가 유독 뛰어난 부분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을 더욱 몰아붙이고 경쟁하며 육탄전에서 승리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그 속에 무척이나 인간적이고 어쩌면 인간 본연의 즐거움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고 보았다.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스팍은 일 단계 신체검사가 조금 시시하다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차였다.

 

그래도 참여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생도들과 함께 나란히 서서 그들과 똑같이 운동복으로 지급된 회색 티셔츠와 운동복 바지를 입고 장애물 코스 앞에 섰다. (그런 것을 보면 지구의 군사 훈련이라는 것은 거의 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스팍은 지휘관의 지시를 건성으로 들으며 굳은 자세로 선 다른 생도들을 따라했다.

 

곁에 선 짐에게서 강렬할 정도의 흥분감이 느껴졌다. 출발을 앞둔 그로서는 당연히 예상되는 반응이었다.

 

“그럼 반대쪽에서 봐.”

 

짐은 벌칸인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짐이 장난꾸러기처럼 씩 웃었다. 스팍은 볼에 피어오르는 열기를 감추려 애썼다.

 

무엇이든 경쟁하려고 드는 짐은 매력적인 데가 있다고 생각했다.

 

출발 명령이 떨어지자 스팍도 신체검사에 온전히 집중했다. 해야 할 일을 앞둔 그는 늘 그랬다. 스팍은 주변은 신경 쓰지 않고 눈앞에 나타나는 장애물을 통과해 나갔다. 벽도 손쉽게 넘었고 (당연히 코스 진행을 방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이 찬 커다란 해자도 마치 가젤과 같은 스피드로 남들보다 우아하게 뛰어넘었다.

 

(하지만 맥코이는 뒤에 처져 있었다. 진흙탕에 빠진 신발은 발에서 벗겨져 나갔다. “빌어먹을, 내가 이러려고 들어온 게 아니라고.”)

 

예상대로 결승점에 제일 먼저 도착한 것은 진흙을 뒤집어쓰긴 했어도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스팍이었다.

 

아니,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에 흠뻑 젖고 진흙 범벅이 된 짐이 승기에 찬 얼굴로 스팍을 향해 씩 웃었다. 하얀 이빨과 파란 눈동자는 얼굴을 뒤덮은 시커먼 진흙과 대비되었다. 짐은 가쁜 숨을 쉬며 가슴팍에 팔짱을 꼈다.

 

스팍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스팍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짐이 웃었다.

 

“조금 늦은 것 같다, 스팍?”

“너보다는 조금 늦은 것 같군.”

 

스팍이 고개를 돌려 거의 도착한 생도들을 쳐다보았다.

 

“다음 코스로 가 볼까. 거기서도 내가 이겨줄게.”

 

짐이 웃더니 다음 코스로 흥겹게 폴짝거리며 뛰어갔다.

 

스팍은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낯선 감각에 사로잡혔지만 가까스로 미소를 참아냈다.

 

“그건 두고 봐야지.”

 

짐이 강렬한 푸른 눈을 반짝이며 스팍을 쳐다보더니 짓궂게 웃었다. 스팍에게 자각이 있었더라면 둘이 서로 애정 놀음을 하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짐은 마지못해 끙끙대며 벽을 넘는 맥코이를 쳐다보았다. 짐이 웃다가 기운이 빠지는 듯 고개를 뒤로 제꼈다.

 

“기다려줘야 할 거야. 쟤를 저러고 진흙탕에 둔 채로 먼저 가면 죽이려고 들 걸.”

 

말을 마치며 짐은 운동 능력이 부족한 맥코이가 재미있는 듯 또 다시 아이처럼 웃었다.

 

스팍은 맥코이가 짐의 건강에 보이는 관심과 현재 진흙에 뒤덮인 짐의 상태를 고려해 봤다. 맥코이는 이런 상황에서 결론을 속단하는 경향이 있었다. 저렇게 진흙에 뒤덮인 짐을 보면 파상풍에 걸릴 거라고 고래고래 화를 낼 것이 빤했다. 맥코이를 기다리는 게 논리적인 선택이 아닐 수 있었다.

 

“짐, 지적할 필요는 없겠지만 넌 정말 놀라울 정도로 더러워.”

 

짐은 눈에 익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짐이 스팍을 보더니 눈썹을 씰룩거렸다.

 

“어, 아마 상상 이상일 거야, 스팍.”

 

스팍이 그 말에 눈썹을 들어 올렸다.

 

“오해한 것 같은데…”

 

짐이 입술을 깨물더니 다음 코스로 뛰어갔다.

 

“나도 알아, 스팍. 안다고.”

 

어쩔 수 없이 스팍도 짐의 뒤를 쫓았다.

 

두 번째 코스에서 둘은 자연스레 남들을 훨씬 앞질러 달렸다. 스팍은 더 빨리 달릴 수 있으면서도 짐과 나란히 달렸다. 둘은 벌칸인인 스팍으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찬바람이 부는 해변을 나란히 달렸다.

 

해변에는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거의 아무도 없었다.

 

“굳이 나한테 발맞출 필요 없어.”

 

짐은 중간 중간 숨을 내쉬며 말했다. 짐이 뛰는 속도와 거센 바람에 모래 빛깔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나도 알아. 하지만 지구력 테스트에선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논리적이잖아.”

 

짐이 꾸준히 달리고 있다는 모욕적 언사에 씩 웃었다. 스팍은 그런 말이 짐을 더욱 몰아붙일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짐의 볼이 달아올랐다. 스팍은 짐이 지금처럼 얼굴을 붉힌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이 짐에게 입을 맞추고 짐의 긴장이 풀렸을 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짐은 항상 스팍을 놀라게 하는 방법을 아는 듯 했다. 마치 스팍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듯 짐이 헐떡이며 말했다.

 

“너 얼굴이 녹색빛을 띠는 걸.”

“내 피는 녹색이야, 짐.”

“알아. 그냥 보기 좋다고.”

 

짐이 일부러 속도를 높인 스팍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더 빨리 달리며 대답했다.

 

“네가 녹색빛을 띠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 우린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지만.”

 

스팍은 갑자기 짐이 자신의 손에 입을 맞췄던 그날 밤 기억이 떠올라 헉하고 숨을 내쉬었다. 스팍은 마치 지쳐가기라도 하는 듯 거친 숨을 몇 번 더 내쉬며 자신의 행동을 감추었다.

 

짐은 그 접촉이 얼마나 은밀한 행위인지 모를 것이다.

 

짐이 미소 지었다.

 

“지쳤어?”

“아니.”

 

스팍은 짐의 경쟁심을 자극할 것을 알면서도 솔직히 대답했다.

 

“그럼 마지막 1킬로미터도 힘내자고.”

 

짐이 헉헉거리면서 급격히 속도를 높였다. 인간치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실력을 보여줘.”

 

하지만 스팍은 벌칸 혼혈이었다. 스팍이 빠르게 튀어나갔다. 둘은 단거리 달리기를 하듯 내달렸다. 짐은 간격을 벌리는 스팍을 보며 활짝 웃었다.

 

“자랑하는 거야?”

 

짐이 소리쳤다.

 

스팍이 속도를 늦추고 정말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짐을 돌아보았다.

 

“보여 달라고 했잖아.”

 

짐이 헉헉대며 웃었다. 티셔츠는 땀과 바닷물에 젖어 버렸고 가슴은 빠르게 오르락내리락 했다.

 

“넌 항상 뽐내는 경향이 있어.”

“그럴 의도는 없었어.”

 

스팍도 이제는 호흡이 조금 가빴다. 짐의 곁을 떠나지 않아도 충분히 운동에 힘쓸 수 있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

 

교관이 전력질주를 하며 들어오는 둘의 시간을 쟀다. 스팍은 쉽게 속도를 줄이며 걸었지만 짐은 모래밭에 벌러덩 드러누워 헐떡였다.

 

“장시간 운동한 뒤에도 계속 움직여 주는 게 좋아.”

 

스팍은 천사 모양을 만들 듯 팔을 휘적거리는 짐을 내려다보았다. 숨이 가빠 말하기 힘든 짐은 손사래로 대답을 대신했다.

 

짐이 겨우 몸을 일으켰다. 다른 생도들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스팍은 형체를 키우며 결승선으로 다가오는 생도들을 바라보았다. 스팍이 짐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당연히 곁에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짐은 이미 바다를 향해 이동한 상태였다. 짐은 이미 바닷물로 축축해진 운동복을 무의미하게 걷어 올린 채였다. 짐은 마치 도시와 바다를 품에 안 듯 고개를 재끼고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아직도 가쁜 숨을 내쉬느라 어깨가 들썩거렸다. 짐의 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짐은 열기를 식히려 몸을 굽혀 바닷물을 떠 얼굴에 끼얹었다.

 

스팍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

 


 

If Spock knew better, he’d say they were flirting.
스팍에게 자각이 있었더라면 둘이 서로 애정 놀음을 하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처음에 짐이 스팍에게 추파를 던진다고 해 놨는데 옮겨놓은 걸 읽다가 스팍이 자각하는 것과 짐이 추파를 던지는 게 무슨 관계인가 싶어서 원문을 보니 주어가 they였다. 역시… 번역문이 논리적으로 이상하면 오역이라니까;;

내 감각으로 flirt는 우리말의 ‘추파를 던지다’보다 일상적인 느낌인데 ‘추파를 던지다’보다 일상적인 표현을 잘 모르겠다. ‘꽁냥거리다’라는 표현이 떠올랐지만, 이런 표현은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말이기도 하지만 스팍이 쓸 리도 없는 표현이고, ‘연애질’이라는 표현 역시 본즈라면 모를까 스팍이 쓸 법한 표현은 아니다. 고민하며 여러 사전을 뒤지다 옥스포드 사전의 어원 설명에 ‘원래는 까불거리는 행동을 나타냈지만 나중에는 애정을 담은 장난기 섞인 행위를 가리킴’이라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애정 놀음’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제일 좋아하는 챕터라 중간에 끊고 싶진 않았지만, 다 옮기길 기다리다간 언제 올릴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끊었다. 일단 음양사를 끊어야…;;;

 

(이전편 링크)

 

아싸!

미쳐 돌아가던 스케줄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근데 컨디션이 정상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들과 제주도로 놀러 갔는데 쪄죽을 것 같은 날씨에 에어컨 빵빵한 차를 타고 돌아다녀서 그런가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된통 걸렸다. 콧물이 줄줄 흐르고 숨을 못 쉬겠어서 병원에 갔더니 내가 늘 가던 병원은 마침 휴가 기간;;; 건물 앞에 서자마자 예감이 안 좋더라니. 가까운 다른 병원에 갔는데 약 처방을 받아보니 일단 항생제부터 때려 넣고요… 콧물약에 항생제까지 먹으니 약만 먹으면 비실비실;; 일상생활이 안 될 것 같아서 주사도 맞았는데 며칠이 지나도록 차도가 없어서 가던 병원에 다시 갈 예정. 그래도 스케줄이 정상인 게 어디야 ㅠㅠㅠㅠ 바쁠 때 안 아팠던 게 천만다행이랄까…

 

댓글에 연연하지 않지만 예전 블로그에 댓글이 달려서 굉장히 반가웠다. 도대체 얼마만에 받는 댓글이냐며. 답글을 달고 보니 반가워서 너무 오도방정을 떨었나 싶고.

 

한 번 누워 읽기에 맛들이니 컴퓨터로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기사를 읽는 게 불편해서 킨들로 신문 구독을 시작했다. 아직 커스터마이징 할 정도는 안 돼서 Calibre에 이미 있는 것을 이용 중. 해 보고 괜찮으면 커스터마이징에 나설지도 모르겠다.

 

최근 이것저것

+ 마지막 팬픽 번역 날짜가 2017년 5월 2일인데 “헉, 그럼 1년하고도 2개월이나 지난 거야?”하고 놀라서 컴퓨터를 켰으나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니 2개월 전이었다. 갑자기 덥네.

+ 블로그를 옮긴 뒤로 포스팅이 현저하게 줄었다. 포스팅이라기 보다 트위터에나 어울릴 짤막한 말들만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가장 최근에는 외래어 표기법 중 일본어 표기법 때문에 화가 났다. 金の星社를 긴노호시샤라고 적으면 銀の星社(이것도 우리나라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긴노호시샤)와의 차이가 없잖아!!! 라고 생각하며 포스팅을 하려다, 이 이상 살을 붙여 하나의 포스팅으로 만들면 큰일이 되어 말았다. (최근은 대체로 이런 식;) 게다가 덕질과 일상 블로그를 나누긴 했는데, 덕질로 점철된 삶이라 화젯거리를 어느 곳으로 보내야 할지 고민이 될 때가 많았다. 블로그 이원화 대 실패;;; (덕질 블로그가 생활 블로그가 되고 있음)

+ 효도 관광은 성공했으나, 나 혼자 스파르타. 피로 회복이 안 되어 계속 힘들어하고 있다. 일이라도 숨 돌리면서 하면 좋은데 이번 달도 숨 돌리긴 글러먹었다. 다음 달은 좀 나으려나. 아니, 에어컨이 오면 나으려나.

사소한 고민

리디북스에서 10년 대여로 풀린 동서 미스테리 컬렉션 130권을 지를까?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연식 있는(?) 장르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동서 미스테리 컬렉션 세트가 탐이 나긴 한다. 그런데 고민하는 이유가 있다.

장점
1) 리디북스앱은 사운드의 물리 버튼이 먹는다: 나는 터치보다 물리 버튼으로 책장 넘기는 게 훨씬 편해서 전자책 리더의 기준이라는 킨들(페이퍼화이트)조차 답답하다.
2) 리디북스의 정보에 따르면 제공되는 형식은 epub: 이미 몇 권은 소장 중이긴 한데, 전자책 진영 중에서는 겨우 구색만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는 교보에서 아주 먼 옛날에 구매한 거라 무려 PDF 형식의 책도 있다. epub으로 전환도 안 된다고;; 교보의 전자책 앱은 사용성이 매우 좋지 않은 데다 PDF 형식은 휴대 전화로 보기에도 결코 편한 형식이 아니다. (재미로 보는 책을 컴퓨터 앞에 앉아서 보고 싶지 않다;;)

단점
1) 대여라는 점: 나는 마음에 드는 책은 몇 번이고 다시 읽는 편이고, 동시에 여러 권을 번갈아가며 읽기 때문에 책을 대여하는 경우는 자료 조사나 구매 전 탐색 목적 외에는 거의 없다. 130권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기 위해 일단 10년 대여로 읽어 보는 거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그렇다면야 전자 도서관에서 무료로 빌려 본다는 선택지가 있다. (* 다만 교보 전자 도서관 앱은 교보의 전자책 앱 이상으로 사용성이 좋지 않으니 10년간 편하게 유료 대여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2) 읽을 책은 많고 읽을 시간은 없다: 크레마 사운드는 전원도 못 켜고 있고, 케이스 뚜껑만 열면 되는 킨들은 몇 장 읽다가 잠이 든다. 게다가 킨들에 있는 책은 전부 원서라 읽는 속도마저 빠르지 않다. 전자책 뿐이랴. 책꽂이가 없어 쌓여가는 종이책도 많은데, 일도 쌓이고 있고;;; 여기에 130권을 굳이 더 쌓을 필요가;;; 검색을 해 보니 앞으로도 이 세트는 행사 상품으로 또 나올 확률이 있으니, 굳이 일에 치이는 지금 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일단 8월까지이기도 하고)

 

Tarsus

(요즘엔 거의 못 읽지만) 팬픽을 읽다 Tarsus Ⅳ를 가끔 보는데, 이게 극 중에서 새롭게 만든 말이 아니라 타르수스라는 실제 존재하는 도시 이름에서 온 모양이다. 성경에서는 사도 바울의 고향으로 ‘다소’라고 되어 있는데, 검색해 보니 ‘기쁨’이라는 뜻이라고. 내가 팬픽으로만 Tarsus를 접해서 정확하게는 몰라도, 아이러니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확실히 기독교가 서양 문명에 끼친 영향은 놀랍구나. 아무 때나 훅 들어오네.

덕질 블로그도 만들었는데, 덕질을 못해서 포스팅을 못하니 이런 거라도;;;
스타트렉 4편 나왔으면 좋겠드아….

요즘 덕질 근황

책을 살 때마다 원서 한 권을 꼭 넣어서 5만원 이상 추가 마일리지를 꼭 챙기는데 저번에는 카드캡터 사쿠라 클리어카드편 2권을 넣었다. 완결되면 신장판 세트로 들여야지. 2권까지의 흐름을 보면 카드에 있던 마력을 회수하고 지팡이를 유코에게 주려나. 어떤 식으로든 츠바사 크로니클과 이어질 것만 같다. 클램프 세계에서 따뜻함을 담당하는 사쿠라가 그 세계랑 이어지면 내가 괴로워지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 멘탈 괜찮을까. 지레 걱정 중.

그나저나 사쿠라 클리어카드편이 백만 권이나 팔렸다는 띠지가 있더라. 죽지 않았구나, 카드캡터 사쿠라. 전혀 예상도 못했지만 나의 첫 팬픽 주인공들이었던 사쿠라X샤오랑이 중딩이 되었고 이러다가 공식적으로 애 낳는 것도 볼 판이다. 클램프 여사님들은 그럴 수 있는 분들이니까. 내년은 애니가 나온다고 한다. 성우진도 그대로지만 제작도 예전 시리즈처럼 매드하우스. 예전에 워낙 퀄리티가 훌륭했어서 이번에는 어떨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어쩌다가 BBC 라디오 드라마라는 것의 존재를 알게 되어 요즘은 유투브에서 그것을 듣고 있다. 오디오북은 그냥 책을 읽어주는 것이라 길이도 상당히 길고 일단 지루한데, 라디오 드라마는 말 그대로 드라마라서 재미있다. 길이도 적당하고. 나의 경우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포와로 역을 한 배우 둘 중에서 존 모팻이 취향이라 다른 배우가 연기한 시리즈는 잘 안 듣게 된다. ITV의 마플에서도 제랄딘 매큐언이 취향이라 시즌 4이후는 잘 안 보는 것처럼. ITV의 포와로는 데이비드 서쳇(스셰라고 발음하던데)이 처음부터 끝까지 연기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주로 일하면서 BGM처럼 틀어두거나 자기 전에 누워서 한 편씩 듣는데, 이것 때문에 오더블 유료 결제를 할까 말까 매우 고민 중이다. 반지의 제왕도 있고, 찾아보면 더욱 폭넓은 목록이 있을 텐데 유투브에서는 한계가 있다. 영국 아마존에 많으려나, 아무튼 아무튼. 그런 고민 중.

 

+ 이건 덕질이라고 하긴 그렇고, 예전에 번역한 스팍커크 팬픽에 소네트 얘기가 나온 적이 있어서 파블로 네루다의 소네트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시를 안 배워서 그런가 오랜만에 스페인어 공부도 할 겸 파블로 네루다의 소네트를 봐도 운율은 잘 모르겠는 걸… 이런 느낌이다. 입으로 여러 번 읽어 봐야 하나. 아무튼 시(詩)알못인 내가 운이 아주 딱딱 맞는다고 감탄한 건 샤키라의 Te aviso, te anuncio(Tango).  (내 수준은 고작 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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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커크 끄적끄적] Caught in Storm 01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서류로 파트너십 신고만 한 건데 그런 말까지 들으니 민망하네. 아무튼 고마워.”

 

정말로 끝이었다. 여러 사건 사고를 겪으며 원숙미를 갖춘 제임스 T. 커크 함장은 여전히 소년처럼 웃었다. 함장이 결혼 특별 휴가로 자리를 비우는 며칠 간 엔터프라이즈호는 요크타운 행성 기지에서 보급 겸 점검을 하기로 했다. 일등 항해사인 스팍은 제임스와 상륙 허가 계획을 논의하고 함장실을 나왔다. 엔터프라이즈호의 인공 중력이 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스팍 중령님.”

“마커스 대위.”

 

몸을 돌리자마자 마커스 대위와 마주쳤다. 고위 장교들의 선실이 위치한 갑판의 복도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 조용했다. 엔터프라이즈호의 하얀 선체 덕에 마커스 대위의 금발 머리가 더욱 돋보였다. 스팍이 한 발짝 비켜섰다. 마커스 대위가 함장실의 출입 허가 버튼을 눌렀다.

 

“안 그래도 바쁘실 텐데 저희 때문에 일이 늘어서 죄송해요.”

 

함장을 곁에서 보좌하며 원활한 임무 수행을 돕는 것은 일등 항해사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임신 중인 과학부 소속 장교의 근무 시간을 조정하고 인력배치를 하는 것도 수석 연구 장교의 일이었다. 스팍은 캐롤 마커스 대위가 사과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스팍이 눈썹을 들어올렸다. 마커스 대위가 살짝 미소를 짓는 사이에 함장실 문이 열렸다. 마커스 대위가 들어가고 다시 함장실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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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하고 싶은 것

이북 리더를 사고 나서 내가 번역한 걸 전자책 형태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오삼에 올리면 전자책 파일 형태로 받을 수 있긴 한데 보기 편하진 않더라. 특히 작가의 말이 본문과 구분이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좀 더 깔끔하게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또한 개인적인 일로 어도비 CC 전체 구독 중이라 (어도비는 진짜 선택지를 너무 조금 준다;) 인디자인을 배워 보고도 싶다. 책은 좋으니까. 인디자인을 배워두면 지라시라도 만들 때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 잘은 모르지만 전자책은 프로그래밍에 가깝고 인’디자인’ 작업과는 또 다른 거라고는 하더라만은…;;

물론 내가 번역한 건 전부 원저작자가 있는 컨텐츠이므로 내가 함부로 형태를 가공해서 배포할 순 없다. (일부 그런 걸 허락한 작가도 있는지는 확인해 봐야 한다.) 그럼… 내가 글을 써야 하나?;;; 아, 그게 책이 될 만큼 쓰려면 너무 까마득한 미랜데?;;;

어쨌든, 이 블로그에서 앞으로 뭘 할지, 나도 궁금해지는구나.

[스팍/커크 영픽 추천] I Just Met You and This is Crazy

I Just Met You and This is Crazy by luck_and_miracles
29,490 words

스팍은 트프링과의 본딩을 피하기 위해 전 여자 친구인 우후라를 통해 알게 된 게일라의 생일파티에서 만난 짜증나는 남자, 짐을 남편이라고 부모님께 소개한다. 황당함을 금치 못하던 짐은 절박해하는 스팍을 돕기로 하고 부부 흉내를 내면서 점점 서로에게 끌리는데…

 

이렇게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도 오랜만인 듯? 게다가 이렇게 완벽하게 전형만 밟으며 미끄러지지 않는 소설도 흔치 않은데 읽으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짐이랑 스팍이 드디어 만났나보네.”

 

주방에 울려 퍼지는 게일라의 목소리에 짐과 스팍이 노려보기를 멈췄다.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를 피해 주방 아일랜드에 기대 피식 웃는 게일라를 향했다.

 

“둘이 만나면 서로 원수가 되든가 아주 친한 친구가 될 줄 알았어. 보아하니 첫 번째 경우잖아!”

“게일라, 생일 축하해!”

 

짐이 웃자 게일라가 눈을 흘겼다.

 

“깜짝 생일 파티에 늦게 나타나서는 바로 음식을 먹으러 가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 지미.”

 

짐이 차가운 눈으로 스팍을 노려보았다.

 

“저 뾰족 귀 녀석이 여기서 막지만 않았어도 그랬겠지.”

“뾰족 귀? 그건 비하의 표현입…”

“아, 미안, 저 벌칸인 좀비 녀석이 여기서 막지만 않았어도 그랬을 거야.”

“좀비라는 건 벌칸에도 다른 종족에도 없습니다.”

“이봐요…”

“알았어, 알았어, 둘 다 그만해. 생일 주인공의 명령이야.”

 

짐이 제대로 꾸중을 들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데 반해 스팍은 고개를 쳐들며 짐을 무시했다. 게일라가 한숨을 쉬었다.

 

“스팍은 거실로 가줘, 지미가 베이컨 좀 먹게.”

 

게일라의 말대로 주방을 나서면서 스팍이 곧장 음식에 고개를 쳐박는 못 견디게 싫은 남자를 마지막으로 일별했다.

 

“재밌었어.”

 

스팍이 눈썹을 찌푸렸다.

 

“나라면 그렇게 말 안 할 겁니다.”

“음, 짐 커크에 대해 너무 일찍 결론을 내리지 마. 좋은 사람인데 오늘은 초과 근무를 해서 짜증이 났을 거야. 오지도 못 할 뻔했다고.”

“참 안타까운 일이군요.”

 

게일라가 팔짱을 꼈다.

 

“자기도 오늘따라 유난히 투덜거리는 것 같네. 내일 벌칸에 가는 것 때문에 그래?”

– – –

모든 로맨틱 코미디는 이렇게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안 좋은 첫인상을 갖고 시작하더라.

 

 

 

어머니가 자신을 발견하고 웃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 늦기 전에 행동해야했다. 해답을 찾으려 셔틀 플랫폼을 둘러보다가 짐에게 시선이 멈췄다. 짐은 전송대에서 고작 몇 피트 떨어진 곳에서 집중하느라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 순간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그때도, 수년이 지난 지금 돌아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계획을 생각해 낸 건 니요타와 게일라가 보여주었던 수많은 지구의 영화 때문이거나, 그저 자신의 직감 때문이었으리라. 다만 팔을 뻗어 짐 커크를 끌어당기고 입을 맞출 땐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만은 확실했다.

 

제 입술에 스팍의 입술이 맞닿은 느낌에 짐이 푸른 눈을 크게 떴고 스팍은 짐에게서 전달되는 생각을 막으려 정신막을 최대한 높였다. 두 사람의 입맞춤은 그저 입술 두 개가 맞닿은 것에 불과했지만 두 사람의 전신을 휘감는 은근한 간질거림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스팍이 먼저 몸을 떼자 짐은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음… 이건 뭐죠?”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기보다 그저 황당해하는 말투였다. 스팍은 그 사실에 감사했다.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앞으로 5분간은 내가 지시에 따라 내 말대로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요?”

“당신이 못 견디게 싫은 사람인 건 사실이지만 동정심이란 게 있는 사람이란 것도 압니다. 게다가 두 시간이나 내 어깨에 기대서 침을 흘리고 잤으니까 인간 식으로 말하자면 나한테 빚이 있는 셈이죠.”

 

짐이 눈을 흘겼다.

 

“좋아요. 근데 입은 맞추지 말죠. 어젯밤에 이빨 닦고 그 뒤론 한 번도 안 닦았으니까.”

“그거야 나도 아주 잘 알죠.”

“이봐요!”

– – –

이 둘의 대화가 너무 웃겨서 참을 수가 없다. 그나저나 못 견디게 싫은 사람이 두 시간이나 제 어깨에 기대서 침까지 흘리며 자게 두는 게 정상인가? ‘-’?

 

 

 

짐이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었다.

 

“잘 모르겠어요, 스팍. 저 여자랑 결혼하기 싫은 이유는 알겠어요. 성격 한 번 끝내줄 것 같은 여자네. 근데 나도 당신 이제 막 만났어요. 이제 막 당신을 만난 사람더러 당신 남편이 되어 달라니요. 정말 정신 나간 소리 아닙니까, 더욱이 벌칸인이 할 말 치고는.”

“그래도 인간 혼혈이니까요.”

 

그 말투에서 미처 하지 않은 ‘안타깝게도’란 말을 알아듣는 건 벌칸인의 텔레파시가 없어도 가능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짐도 상대에게 미쳤다고 말하며 떠났으리라. 하지만 짐은 스팍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두 사람이 제아무리 다르다 해도, 스팍이 제아무리 부정한다 해도 짐은 두 사람이 비슷한 면에서 어긋난 데가 있다고 느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그래서 스팍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좋아요. 기가 막히고 말도 안 되는데다 정신 나간 짓이지만 날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그런 짓에 환장하는 걸 알거든요. 당신 남편을 찾은 것 같네요, 스팍 씨.”

 

스팍이 온전한 인간이었다면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리라.

 

“고맙습니다, 커크 씨. 불편하게 한 데에 대해서는 다 보상하겠습니다.”

“신경 쓰지 말아요, 돈은 필요 없으니까. 그리고 짐이라고 해요, 우린 결혼한 사이잖아요, 여보.”

 

짐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스팍이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후회할 일을 저질렀네요, 아닙니까?”

“잘 아시네요.”

– – –

아, 진짜 이 두 사람 대화 너무 재밌어. 짐은 팬픽에서 흔히 보이는 캐릭터인데, 묘하게 허둥지둥 제정신을 못 차리는 스팍을 보는 게 진짜 꿀잼이다.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팍을 향한 감정이 커져가고 있었다. 연애 감정이. 매일 아침 서로의 곁에서 깨며 사춘기 청소년처럼 굴어서일까. 말이 되는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벌칸인들은 배우자와 평생을 약속하기 때문에 스팍과 함께 한다는 건 모 아니면 도였다. 짐은 전혀 그런 남자가 아니었지만 스팍과 함께라면 혹시 아는가, 그럴 가치가 있는지. 하지만 한편으로 짐이 정신이 나간 건지도 몰랐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스팍과 거리를 두는 게 논리적이었다.

 

“젠장, 이젠 생각도 그 사람처럼 하네. 게다가 이젠 혼잣말까지 하고.”

– – –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과 평생을 생각한다는 것, 놀라운 일이긴 한데 의외로 없는 일도 아니니까.

 

 

“지금 무슨 말인지 생각하고 한 거예요?”

 

짐이 악을 썼다.

 

“기가 막히네, 내가 이런 사람을… 아니, 됐고. 당신 지금 선을 심하게 넘었어요. 우린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그러니까 난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면 누구와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고요.”

“그럼 당신을 막아서 미안하게 됐군요.”

 

스팍이 비아냥거렸다.

 

“다시 미첼 씨에게 돌아가서 아무 의미도 없는 성관계를 하시죠. 전 어머니께 내 남편이 지금 바쁘다고 전할 테니까.”

“죄책감 들게 하지 말아요, 이 나쁜 벌칸 놈아! 그리고 난 개리든 누구든 마음에 드는 사람이랑 섹스해야겠거든요!”

“막지 않겠습니다.”

“좋아요!”

“좋습니다.”

 

두 사람이 말싸움을 멈췄을 때 둘은 얼굴을 바짝 맞대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씩씩대는 스팍이 화가 나서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스팍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짐이 다른 사람, 특히 개리 미첼과 함께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가 짐에게 손을 대는 모습을 보니 가짜 남편에게 다가가 잡아끌지 않을 수 없었다. 논리적이지도 않고 벌칸인답지도 않았지만 짐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길 원했다. 그의 아름다운 미소도, 빛나는 눈도, 풍부한 지식과 마음 씀씀이까지. 스팍은 제멋대로 짐의 모든 부분을, 다른 사람도 아닌 오직 짐만을 원했다.

– – –

아, 이런 클리셰. 진짜 좋아.